Popular Post

카테고리

서울의 스펙트럼

다양성과 지역성.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The NAVY Magazine

 

    이십 대 시절부터 어디에 소속되어 일한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일을 하는지 묻고 답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2015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은 어느 정도 답할 직장(?)이 생겼다. 스펙트럼 spectrum이라는 잡지를 만듭니다. 1년에 발행하고, 서울 Seoul 문화와 움직임을 주로 다루고 있어요.

© Work in progress of spectrum magazine, 2014. Photographed by Hong Sukwoo.

    2002년에 스무 살이었다. 이제 막 인터넷 문화가 꿈틀거렸고, 고등학교가 있던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던 내가 서울의 다양한 재미를 깨달은 시절이었다. 패션 fashion은 그 중심이었다. 다니던 고등학교 옆이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Galleria department store East이라 가격만 봐도 숨이 멎던 패션도 주변에 있었지만, 소위 외국 스트리트 패션 street fashion 브랜드를 그저 추종하던 흐름을 벗어나, 이제 막 자기 브랜드와 매장을 만들고, 좌충우돌하며 한 계단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역으로 외국 패션 박람회 trade show에 참여하고, 외국 브랜드 혹은 크루 crew들의 제안을 받아 협업한다. 꼭 ‘한류’라든지 케이팝 K-Pop 같은 엔터테인먼트 기반 문화만이 서울, 혹은 대한민국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깨닫고는 했다.

    2011년 3월 첫 호를 발행하고 2014년 겨울호까지 총 열여섯 권을 만든 스펙트럼 매거진 spectrum magazine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의 연장에서 출발했다. 거리에서 패션 사진을 찍어 온 시절부터 이런저런 잡지에 패션과 서울에 관한 글을 쓰던 시절에도, 애착을 지녔던 거리가 하나둘 기업 자본에 잠식당하는 모습을 눈 뜨고 지켜봐야 했던 시절까지도 결국 도시를 하나씩 채워나간 것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 spectrum magazine Issue No. 8, 9, 10, 11 in 2012 – 2013. Images courtesy of spectrum magazine.

    그들의 동기가 각자 어떻게 달랐든지 간에, 서울에서 특별한 종류의 문화를 만든 사람들에 항상 애정이 있다. 그들이 젊든지 연륜이 깊든지,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때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만큼 있습니다.’ 말해주고 싶었다. 스펙트럼은 항상 그런 사람들의 지금과 삶을 다뤘다. 때로는 그들이 지금 만드는 공간과 동네를 방문하여, 혹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의 대담으로 채워갔다. 우연한 만남과 막연한 생각이 결국 종이 잡지 위에 실렸을 때는 희열이 컸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직접 패션 브랜드 fashion brand와 디자인 스튜디오 design studio를 세우고, 독립 출판 independent publishing과 음악 indie music의 토대를 만들고, 향수와 디저트부터 생활용품과 가구를 섭렵하는 다양한 작은 가게 small shop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예술과 디자인, 여행과 여가를 즐기고자 크루를 만든 이들도 있었다.

    항상 스펙트럼을 만들 때 하나씩 주제를 정했다. 열여섯 권을 만들며 정한 열여섯 개의 단어 혹은 문장은 사실 모호한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들이 지금, 서울을 드러내는 키워드였다. 기술 Technology과 협업 Collaboration, 젊음 Youth과 탐험 Exploration, 공유 Shares와 아이콘 Icon처럼 멋진 것들 Something Cool, 삶 Life과 대안 Alternative 그리고 마지막 제16호에서 다룬 집 Home까지 말이다.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항상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 것이 ‘서울은 어떤 도시입니까?’ 하는 물음의 정답이었다. 너무 많은 것이 섞였고, 너무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보다 더 빠르게 소비하고는 흘려 보냈다. 그래서 서울시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라든지, 청계천처럼 장단점이 혼재한 인공물이 서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진 않았던 것 같다. 이 커다란 도시 말고 다른 메트로폴리탄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어느 정도 겹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필요한 어떤 ‘요소’들이 이 도시에 있기를 바랐다.

© spectrum magazine Issue No. 12, 13 in 2012 – 2013. Images courtesy of spectrum magazine.

    결국 다양성 diversity과 지역성 locality이었다. 한창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고민할 때 적었던 글로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

    좋아하는 제품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 MUJI·無印良品 아트 디렉터인 하라 켄야 Hara Kenya·原研哉 어느 인터뷰에서 말이 내가 고민하던 문제의 화두 자체였다. 그는 문화의 본질은지역성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패션만 놓고 봤을 , 세계의 패션을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히 파리 Paris, 밀라노 Milan, 뉴욕 New York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의 위치를 확립한 것은 그들이 단지 나가는 도시를 베껴서, 그들을 찬양하기만 해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꿈틀거린다. 모든 잡지와 매체가 젊은 피를 찾으려고 꿈틀댄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산, 아직 싹이 트지 않은 지역의 움직임, 지역의 사람들에 집중했다.

     그런 움직임이 반쪽짜리 가십 기사가 아니라 열 쪽짜리 심층 분석으로 이어지는 것이 저 도시들이다. 저들은 지역 문화가 잘 자라는 토대를 갖췄다. 지역성에 대한 탐구는 그들 자신이 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도시, 서울은? 저 잘 나가는 도시들의 누구도 우리를 대신하여 서울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은 우리가 직접 그 모험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구독과 기부 Donate to Subscription.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은 독립 모바일 매거진입니다. 독자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지역과 동시대 문화를 향한 적확한 비평과 따뜻한 시선, 좋은 취향과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기사를 작성하고 생산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는 시간과 재원이 필요합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더 네이비 매거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매달 커피 한 잔 금액으로, 구독 버튼을 눌러주세요.

2017-11-10
조금 다른 러시아
2017-11-24
로니 피그의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