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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글 14 — 초여름

The Night Article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은 온라인 잡지를 표방하지만, 사람이 만듭니다. 기사로 하는 이야기들과 다른, 밤과 새벽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글들은 대체로 다음날 아침에 보면 지워버리고 싶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밤 Night” 메뉴는 비정기적으로, 매일 밤 자정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 나타납니다. 낮과는 조금 다른 밤의 생각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Sun, June 24, 2018

    계절이 바뀌는 건 항상 순식간이다. 잎은 녹색으로 물들고, 노을 사이 뜬 작은 달은 어쩐지 더 흐릿하고, 그래도 밤에는 쾌적하다고 말했던 게 엊그제인데 끈끈한 습기가 피부와 면 손수건을 흠뻑 적신다. 러시아 월드컵 열기는 집안 내 방과 조용한 스튜디오와 사람 없는 거리 위에 잠시 안착하였다가 사라졌다. 곧 장마가 올 테고, 얼음 없이 마시는 커피를 상상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매년 당연하게 돌아오는 여름이 바뀌었다고 느낀 이유는 이제 곁에 사라진 것들 때문이다. 예전 일한 곳 주변에 생경한 가게들이 터를 잡고, 오래 만난 이가 산 빌라는 하얗고 높은 가림막을 치고 분주한 공사에 들어갔다. 겨우내 상자에 있던 새 스니커즈를 꺼내 신고, 봄에 산 새 카메라를 손목에 감아 들고, 뻔한 거리에 그나마 마주친 풍경을 몇 장 담아내었다.

    계절이 사람이라면 초여름은 조용하게 다가온 흑발의 고운 처녀 같다. 홀로 응시하듯이 마주하여 슬며시 옆자리에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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