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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nsa Brand Index Nº 01 — CRITIC 크리틱

   Musinsa Brand Index

무신사 브랜드 인덱스 MUSINSA Brand Index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대중과 소통하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더네이비매거진 The NAVY Magazine무신사 Musinsa의 새로운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무신사에 입점한 4,000 개의 브랜드 , 국내외를 막론하고 알려진 같지만 사실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심층 소개합니다.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브랜드 디렉터, 무신사 그리고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의 관점으로 이야기합니다.

무신사 브랜드 인덱스는 파편처럼 흩어진 브랜드 정보를 한데 모읍니다. 브랜드의 시작과 처음, 현재, 미래 그리고 크리에이티브와 동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번째 브랜드는 굿네이션 GOODNATION 수장, 이대웅 Lee Daewoong 디렉터가 만드는크리틱 CRITIC입니다.

글과 사진  홍석우

아카이브 이미지  크리틱 · 굿네이션 

© CRITIC · GOODNATION

   Brand Information

— 1. 브랜드 이름과 의미

— 2. 설립 연도

— 3. 무신사 입점 연도

   브랜드 이름과 의미

© CRITIC Archive — CRITIC Original Logo.

     무신사 브랜드 인덱스, 첫 번째 브랜드는 크리틱 CRITIC이다. 2020년 현재 크리틱은 한국 스트리트웨어를 논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 되었다. 크리틱을 소유한 레이블이자 디자인 에이전시, 굿네이션 GOODNATION이대웅 Lee Daewoong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는 크리틱의 출발이 지금은 없어진 이태원의 전설적인 스트리트웨어 streetwear 편집매장, ‘리믹스 REMIX’에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자폐증 등의 기능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의사소통, 언어, 지능적 측면에서는 비장애인과 다를 없으며, 비장애인과는 다른 천재성을 동시에 갖는 현상이나 사람편집자 )이라는 브랜드로 시작했어요. 독특한 이름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미 유사 상표가 있어서 상표권 등록이 되는 거예요. 그때가 2006 이전, 아직 정식 출시 전이었죠.”

© CRITIC Archive — SAVANT SYNDROME Prototype Logo (Above) / Main Logo (Below), 2005.

© CRITIC Archive — SAVANT SYNDROME ‘Melt Brain’ Logo, 2005.

     이대웅은 이미 서번트 신드롬의 이름으로 옷을 만들고 있었다. 이름에 관한 고민이 브랜드를 준비하는 동시에 발생한 셈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상표권 등록 개념이 희박했던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스트리트웨어 신 scene이었음에도 착실하게 알아보았다는 점이다.

     리믹스 사장님은 정말로 앞서가신 분이에요. 패션편집매장개념이 스트리트웨어 시장에 희미할 때였어요. 직접 고른 브랜드를 판매하면서편집매장이 자기 브랜드를 운영한다 개념 자체가 말도 되는 것이었어요. 이미 리믹스는후킹 HOOKING이라는 자체 브랜드가 있었어요. 브랜드 운영 경험이 있으니까, 상표 등록에 관해서도 먼저 얘기해주셨어요. 원했던 이름을 쓰지 못하니까, 그때부터멘붕 빠졌죠.” 이러한 경험은 오히려 브랜드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때 이대웅은 기존 주류 브랜드를 향한 반발심이 깔려 있었다. 당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공통 특징이었을 수도 있다. 메시지를 줘야 하고, 약간 반항적인 이미지가 있는, 당시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에도 전반적으로 깔린 정서였죠. ‘비평 하자. 이것에 대해서, 모든 현상에 대해서. 그래서크리틱으로 지었어요. 이건 등록되었어요.” 상표권 등록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일반 명사가 등록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크리틱’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설립 연도

    크리틱의 공식적인 설립연도는 2006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계속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이대웅에게 ‘크리틱’ 프로젝트는 일종의 부업 side job이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좋아해서 만들고는 있는데, 직업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무신사 입점 연도

   크리틱은 패션 커뮤니티로 출발한 무신사 MUSINSA가 온라인 매장 기능을 추가하며 거의 최초로 입점한 브랜드 중 하나였다. 이대웅은 ‘2008년’으로 처음 무신사와의 인연을 기억하고 있다.

   Brand Creative

— 1. 컬렉션 아카이브

— 2. 대표 아이템

— 3. 주요 협업

— 4. 10주년

   컬렉션 아카이브

© CRITIC Archive — Spring and Summer 2015 to Autumn and Winter 2020 Collection.

   대표 아이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크리틱’의 대표 요소들을 한 번 집고 넘어가 보자. 이를테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creative에 관한 얘기다. 크리틱은 2021년이면 출범 15주년을 맞이한다. 그 안에 수많은 시즌과 프로젝트, 협업과 주제가 있다. 단 하나만 고르기는 까다롭다.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크리틱’을 대표하는 요소, 일종의 브랜드 시그니처 signature가 있을 법하였다.

© CRITIC Archive — ‘Parody’ Graphic Design T-shirts.

     처음부터그래픽 패러디 시작했어요. 그래서 기존 그래픽 디자인의 패러디 디자인을 크리틱의 대표 아이템으로 있죠. 티셔츠나 스웨트셔츠, 후드 파카처럼 스트리트웨어 초창기부터 이어온 기본 아이템에 우리 정체성을 녹여낸 그래픽을 얹는 거예요. 맥도날드 McDonald’s KFC 할아버지를 패러디하는 것처럼, 패러디에서 탄생한 것들이 메인 캐릭터로 쓰였어요. 이제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아서 매년 다른 형태로 생산하는 거죠. 외에도 항상 여러 패러디 그래픽이 존재해요.” 

     태초에 거리 문화 street culture와 맞물린 패러디 그래픽을 엄숙한 갤러리 대신, ‘티셔츠’라는 캔버스에 담기 시작하면서 스트리트웨어가 출발했다. 이는 거리 창작자들의 발명이었다. 크리틱의 정체성도 여기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거의 최초로 한국에 정립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크리틱이었다. 이대웅이 2000년대 초반, 직접 겪은 스투시 STÜSSY와 슈프림 SUPREME 같은 브랜드도 패러디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이런 우리나라만의 방식으로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리틱의 출발이자,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주요 협업

     지금까지 크리틱은 많은 협업 collaboration을 선보였다. 이대웅 디렉터에게 특히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작업도 물론 있다. 그는 리복 REEBOK타미야 TAMIYA 그리고 가장 최근의 KFC 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혹은 오랫동안 즐겨온 문화와 협업했기 때문이다. 이대웅은 오랜 팬이었던 리복과 캡슐 컬렉션을 만들고, 컬렉션 디자인을 했다. 패러디 그래픽으로 출발한 KFC는 결국 크리틱의 공식 협업으로 이어졌다. 사륜구동 4WD 미니카 브랜드 타미야 프로젝트는 사심을 듬뿍 담은 노력의 결정체였다.

© CRITIC Archive — Collaboration Works, Spring and Summer 2015 to Autumn and Winter 2020 Collection.

   REEBOK x CRITIC

     그가 오랜 스니커즈 팬이란 점은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리복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지는 않았다. 크리틱 10주년 이후 이대웅은 꾸준히 90년대 문화를 재해석하는 데 방점을 둔다. 룩북을 찍을 때도 리복 스니커즈를 자주 사용했다. 이후 리복 코리아마케팅팀에서 연락이 왔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며 리복과 크리틱의 협업 제품을 만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타이밍과 운이 좋았어요. 리복 코리아는 자체 상품을 생산할 없는 시스템인데, 협업 상품만 특별히 한국 제작을 허용한 시기였거든요. 열심히 했죠.”

     리복을 대표하는 벡터 로고를 큼지막하게 사용한 크리틱과 리복 협업은 스트리트웨어와 스포츠웨어 팬덤 양쪽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안에는 크리틱을 대표하는 오리지널 그래픽도 함께 있다.

     사실 (리복과 협업에서) 크리틱의 정체성을 녹여내는 가장 마지막 문제였어요. 리복의 독창성 originality 복각하고 싶었거든요. ‘ 리복이 이런 작업을 하지 않을까?’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어요. 그동안 모은 빈티지 아카이브를 활용해서 요즘 느낌으로 만들어낸 거죠. 크리틱은 90년대 문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으니까, 안에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녹이고 끌어낸 거죠. 리복 황금기 시절 복식과 문화를 보여주는 식으로리복은 이런 멋있다 제안하고 싶었어요.” 

© CRITIC Archive — REEBOK x CRITIC Capsule Collection, Spring and Summer 2018.

     크리틱의 90년대와 리복 아카이브에서 끌어낸 리트로 retro는 잘 맞아떨어졌다. 그는 이 협업에 크리틱의 색을 조금 넣었다고 했지만, ‘한국어’와 ‘한자’로 된 서체 디자인을 컬렉션 곳곳에 부여하여 두 브랜드의 균형을 재치 있게 맞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업은 단기 프로젝트였지만, 그다음 시즌에는 리복 아시아 지역에 출시한 의류 디자인을 크리틱이 맡아서 진행할 정도였다. 도전이었죠. 협업이라고 해서 우리 브랜드를 알린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리복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있게끔 했으니까요.”

     거리에서 리복과 크리틱의 셋업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 이대웅은 ‘드디어 길에서 빈티지가 아닌 리복을 패션으로 입는구나’ 느꼈다. 리복을 향한 젊은 세대의 주의를 환기했다는 점이 이 협업의 ‘진정한 피드백’이라고 했다.

   TAMIYA x CRITIC

     사륜구동 미니카로 한 시대를 풍미한 ‘타미야’는 특히 80년대생 남자들에게 저마다 추억이 있다. 같은 세대의 남자로서, 처음 둘의 협업을 접하고는 ‘와, 이건 좀 미쳤다’고 생각했다. 패션 브랜드가 늘 하는 협업은 더욱더 아니었다.

     크리틱 컬렉션에도 개인 취향을 많이 담아요. 어떻게 보면 가장 극대화한 타미야 협업인데, 성사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타미야는 매년 4WD 미니카 대회를 연다. 하지만 정식 협업은 본사의 확답이 어렵다고 했다. 이대웅은 협업이 아닌 커스텀 전시회를 먼저 기획하자고 제안했다. 주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이 미니카를 매개체로 작품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식으로요. 원래 하던 것이니까 재미있었어요. 근남이 옥근남 a.k.a. OKEH 했고, 디스이즈네버댓 THISISNEVERTHAT® 참여했고. 좋아할 만한 친구들에게 찾아갔죠. 우리 나이대에는 추억이 있으니까.”

     약 3년이 지난 후 다시 연락했을 때, 타미야는 의류와 굿즈 라이센스 일부를 허용해주었고 실제 협업이 이어졌다. 워낙 우리가 적극적이었고, 크리틱 협업뿐만 아니라 타미야 굿즈도 기획해주었기 때문에 여전히 관계가 좋아요. 내년 15주년에도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같습니다.” 

© CRITIC Archive — TAMIYA x CRITIC Capsule Collection, Spring and Summer 2019.

     ‘타미야’는 패션과 상관없는 제품을 만든다. 의류에 기반을 둔 브랜드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이대웅은 ‘비주류’를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이 많이 개입되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오타쿠 기질이 강했어요. 애니메이션과 헤비메탈 같은 꽂혀 있었죠. 패션을 하기 전까지 그림만 그렸거든요. 대학 진학도 하지 않으려고 정도로요. 대학교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게임 개발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했어요. 졸업 이후에도 오래 일했어요. 일반적인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디렉터의 히스토리는 아니죠. 이쪽에 없는 지점에서 셈인데, 그런 취향이 타미야에서 폭발한 거죠.”

     이대웅은 당시 크리틱 내부에도 ‘왜 자꾸 타미야와 협업을 하려고 하는지’ 갸우뚱한 분위기가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결합하여 ‘긱 geek’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타미야의 팬이든, 패션을 좋아하는데 타미야를 아는 사람이든, 그걸 노린 거죠.”

   KFC x CRITIC

     소송에 걸리지 않은 다행인데, KFC한테 고맙죠.” 가장 최근의 KFC 협업은 ‘패러디’가 실제 협업으로 이어진 사례였다. 중간 다리 역할은 무신사가 했다. “KFC 마케팅 굿즈를 만들고 싶다고 무신사에 제안했어요. 무신사가 우리를 추천해주었고, 회의를 하게 되었죠. 계속 패러디만 해온 입장이라서 약간 불안한 감정도 있었거든요. 정식 사용이 아니라 교묘하게 피해간 셈이었으니까요. 어쨌든크리틱 거니까.”

© CRITIC Archive — KFC x CRITIC Capsule Collection, Spring and Summer 2020.

     처음 만난 자리에서 KFC 담당자들은 크리틱의 ‘센’ 패러디를 좋아했다. 하지만 막상 협업을 준비하면서 문신이나 폭력적인 면을 지양했으면 좋겠다는 제약도 있었다. 역시 글로벌 기업은, 하고 준비하며 이대웅은 KFC 미국 공식 트위터와 유튜브 계정을 봤다. 완전히 약을 마케팅이에요. 본사는 있는 거죠, 완전히.” 이렇게 용기(?)를 얻은 그는 샌더스 대령 Colonel Sanders의 얼굴에 문신을 넣는 등 기존 제약보다 선을 넘은 디자인을 완성했다. 디자인과 콘텐츠 모두 만족하셨어요. 재밌는 작업이었습니다.”

   10주년

     2016년 4월, 크리틱은 설립 10주년 이벤트를 개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1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패션 브랜드를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10주년 결과물은 지금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디렉터로서의 소회가 궁금했다.

     그때 협업 전시한 브랜드와 아티스트 중에는 오래 알고 지내며 친한 사람도 있고, 10주년을 기념하고 싶어서 새롭게 연락한 경우도 있어요.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계도 중요하잖아요. 멋진 디자인을 떠나서 말이죠. 이런 부탁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어설프고 사람 관리를 하는 스타일이에요. 평소에 살가운 사람이 아닌데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작업에 참여해 주셔서 정말로 고마웠죠.” 

     이대웅은 지금도 영업과 사람을 대하는 능력은 엄청나게 부족하다고 했다. 알게 모르게 10주년 행사 때는 여러 사람과 브랜드와 해내기 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를 해냈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크리틱 10주년을 의미 있는 이정표로 받아들였다. 이후에도 10주년을 맞이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종의 출발선을 끊은 역할을 크리틱이 했다.

   Brand Story

— 1. 과거

— 2. 현재

— 3. 서울과 지역성

— 4. 개인

— 5. 미래

     무신사 브랜드 인덱스는브랜드 다루지만, ‘만든 사람 이야기를 함께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브랜드의 중요한 순간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크리틱은 2016 브랜드 론칭 10주년을 맞이한 국내 스트리트웨어 신의 산증인입니다. 이대웅은 디자인 에이전시 굿네이션의 대표이자 크리틱을 비롯한 산하 브랜드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로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한 다양한 하위문화 서브컬처 subculture 팬이자 조력자로서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과거

     이대웅이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하지만 그 전부터 유독 시각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어렸을 오락실은음지 있었잖아요. 게임을 하러 간다기보다는 하는 모습을 보러 많이 갔어요. 그래픽이나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거든요.” 4학년 때 그가 접한 만화책은 <드래곤볼>이었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이 전설적인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운명 같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림만 그렸어요. 동기 부여가 무엇이었는지 도대체 모르겠는데, 창작하는 열정을 그때 같을 정도로요.” 

     그는 학창 시절 반에 한두 명씩 있는 ‘그림 그리는 아이’였다. 1교시 때 그린 공책을 친구에게 주면, 다음 장에 다른 친구가 그리고, 다른 반 친구가 다시 덧붙이는 식으로 그림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어릴 때의 자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 같다고 했다.흔히 말하는 오타쿠 같은 애들일 수도 있었거든요. 저는 춤추는 애들이나 노는 애들과 친하게 지내고, 듀스 DEUX 캐릭터를 그려주면서 친분을 쌓았어요. 여러 문화가 섞이는 그때부터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이죠.” 

     10대 시절 이대웅은 대학 진학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화가가 되어야 했다. 웹툰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출판 만화 시대였다.집에서 펜촉으로 선을 연습했어요. ‘등단해야 한다 다짐하면서.” 당연히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부모님에게 항상 혼이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그나마 ‘그림’과 비슷한 곳이 시각디자인학과와 산업디자인학과라고 생각했다. 미대를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난리가 났다. 성적은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어요. 부모님은 어느 수준까지 올리면 입시 미술학원을 보내주겠다고 하셨고요. 결국 학원은 3 처음 갔네요.” 하지만 평생 그림만 그린 그에게 적응은 쉬웠다. 포스터컬러 작업은 식은 먹기였어요. 데생은 연습이 필요하니까 연습했죠. 그렇게 대학에 갔어요.”

© Lee Daewoong, Creative Director of GOODNAVTION & CRITIC.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큰 기대를 품었다. 그림과 창작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인 집단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생은 반대로 흘렀다. 수업은 재미없었고, 얼차려는 존재했으며, 성향이 맞는 친구는 더욱더 없는, 인생에서 제일 재미 없던 시기로 남았다. 전환점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갑자기 찾아왔다. 

     통학 버스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멈춘 곳에서우리 학교에 있어서는 아이 탔어요. 제가 성균관대 98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상당히 보수적인 학교였거든요. 그런데 단발머리에 힙합 스타일로 입고, 스케이트보드를 친구가 거죠. ‘ 새끼 뭐지?’ 생각했는데, 신입생 환영회에 가니 우리 학과 1학년인 거예요.” 재수해서 이대웅과 동갑이었던 친구와 예술대학 특유의 엄격한 규칙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대학 생활이 재밌어졌죠. 학교는 거의 들르기만 하는 대신 압구정동이나 강남역에서 놀았어요. 원래 홍대에서 놀았는데, 친구가 원래 놀던 문화를 갑자기 흡수하는 식으로 계속 영향을 주고받았죠.” 지금 그 친구는 AOMG의 비디오 디렉터 ‘지누야 Jinooya’로 활동한다. 이대웅은 크리틱의 영상 다수를 그와 함께 작업했다.

     ‘리믹스’는 이대웅에게 큰 의미가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태원 투사 스케이트보드 TUSSA SKATEBOARD에 들렀다가 우연히 리믹스 매장에 들르게 되었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만 알고 있던 이대웅에게 리믹스와 ‘틴틴’은 신세계였다. 그가 좋아하는 모든 집합이 그곳에 있었다. 스케이트보드 문화도, 오타쿠 같은 부분도 있는 복합적인 무언가였다. 스투시와 슈프림을 처음 본 곳도 리믹스였다.이게 내가 원하는 거다, 원하는 스타일이라고 바로 느꼈어요. 그러다가 리믹스의 사장님과 알게 됐고, 이런 그림을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사장님이 브랜드 만드는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처음 브랜드를 시작하게 거죠. 그때만 해도 패션 업체가 아닌 이상은 생산 공정 같은 알기 어려웠거든요. 옷도 물론 처음 만들어봤죠.” 지금은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룩북 lookbook을 처음 본 것도 리믹스의 자체 브랜드 ‘후킹 HOOKING’이었다. 스트리트웨어를 아무도 스트리트웨어로 부르지 않았을 무렵, 일종의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물론 스트리트웨어를 좋아하던 청년들이 모두 자기 브랜드를 낸 것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직접 만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시각디자인학과를 다니며 병역특례로 복무했다. IT 기업에서 프로그램을 다루고 그래픽 디자이너를 겸했다. 일반 회사원이 졸업하고 5년은 겪을 일을 학생 때 시작했다. 시각디자인학과에서 더 배울 건 없겠다 싶어서 신청한 복수전공은 영상학과였다. 지누야라는 친구와 영상 공부를 많이 했어요. 디지털 캠코더가 없던 시절에 용돈을 모아서 소니 SONY DCR-VX2100 캠코더를 사고, 단편 영화도 만들었어요. 친구는 영상 쪽으로 올인하고, 저는 졸업 한동안 방송국 일을 했죠. 예전 포트폴리오 중에 <무한도전> 매주 나오는 로고 같은 것들을 만들었어요.”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 이대웅에게 영상은 돈 되는 일이었지만, 실시간으로 작업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때 처음 ‘뉴서울브라더스 NEW SEOUL BROTHERS, 이하 NSB’의 밑그림을 그렸다. 앞으로 ‘브랜드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만든 학교 졸업 작품이었다. 패션학과도 아닌데 모자랑 후드 파카를 만들고, 그래픽이 도드라지는 컬렉션을 제출했어요. 간접 경험으로 시작한 거죠. 하지만 막상 졸업하고 바로 뛰어들기는 시장도, 브랜드를 내는 분위기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요.” 

     이대웅은 1년간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크리틱’의 전신인 서번트 신드롬을 준비했지만, 아직 마음을 굳힌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회사를 그만둔 것도 반쯤 충동이었다. 어느 댄서 친구들과 홍대 빵집 같은 조그만 카페에 있었어요. 오후 시에서 시쯤, 커피를 마시는데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거예요. , 이거다. 자유로움. 일을 해야겠다는.” 아직 대기업 프렌차이즈 매장들이 홍대 거리를 점령하기 전, 그는 회사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옷을 만들기로 했다. 

© CRITIC Archive — SAVANT SYNDROME’s First Collection and Graphic Artworks, 2005 — 2006.

© CRITIC Archive — CRITIC’s First Collection and Graphic Artworks, 2006.

     크리틱의 전신인 ‘서번트 신드롬’은 당시 트로피컬 사운드 TROPICAL SOUND의 디렉터였던 김인수와 시작했다. 첫 번째 티셔츠는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장난감 ‘호피티 합 HOPPITY HOP’ 캐릭터를 메인 그래픽으로 넣었다. 특별한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지만, 한 가지 예술적인 부분에 천재성을 보이면서도 나머지는 자폐 수준에 가까운 ‘서번트 신드롬’의 뜻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호피티의 표정이 어딘가 취해 있는 같았거든요. ‘요소를 넣어서 탄생한 거죠.”

     서번트 신드롬은 이태원 리믹스에서 처음 판매했다. 당시 김인수는 트로피컬 사운드를, 이대웅은 NSB를 함께 전개하고 있었다. 이후 서번트 신드롬은 상표권 등의 이유로 이름을 ‘크리틱’으로 바꾸고 새로 출발하게 된다. 지금은 크리틱의 모회사가 된 굿네이션도 이 무렵 탄생했다.전개하던 브랜드를 모아서 번에 보여주고 판매할 있는 레이블, 온라인 편집매장 개념의 무언가를 만들자고 했죠. 당시에는 댄서였고 지금은 클럽 브라운 BROWN 사장인락킹   Locking Woong 크리틱과 굿네이션을 설립하는 합류했어요. 3 체제로 200 원씩 600 원으로 처음극한티셔츠를 만들었습니다.”

© CRITIC Archive — CRITIC’s ‘극한’ Collection and Graphic Artwork, 2007.

© CRITIC Archive — CRITIC’s ‘Gold Digger’ Collection and Graphic Artworks, 2007.

© CRITIC Archive — CRITIC’s ‘극한’ Collection and Graphic Artworks, 2008.

     2005년에서 2006년으로 넘어갈 무렵, 서울에는 21세기 스트리트웨어의 기틀을 다진 브랜드와 매장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소위 ‘스트리트웨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쓰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젊은이가 슈프림과 베이프 A BATHING APE®에 열광하기 시작하고, 스니커즈 문화가 마니아 중심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붐을 일으킨 시기와도 겹쳤다. 

    이미휴먼트리 HUMAN TREE같은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극한 아무것도 없던 개념에서 갑자기 시작한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패러디인데, ‘슈프림극한이라는 뜻이잖아요. 영어를 한국어로 써서너희들 이래도 거야?’라는 개념으로 만든 거죠.” 극한이라는 단어를 해체한 ‘ㄱㅡㄱㅎㅏㄴ’ 서체에 붉은 박스 로고를 넣은 티셔츠는 발매와 동시에 매진에 가까울 정도로 팔렸다. 당시 홍대 거리의 두 명 중 한 명이 ‘극한’ 티셔츠를 입은 진풍경을 이대웅은 그때 처음 경험했다. 새벽 다섯 시에 판매를 시작해도 전부 팔렸어요. 당시 굿네이션 웹사이트를 열면서 나름대로 특별하게 호일 프린팅 로고 티셔츠를 만들었거든요. 다른 곳에서 시도하지 않아서 제작했는데, 프린팅이 입으면 없어지는 거예요. 불량이었죠. 이러면 되는구나, 하고 품질의 중요성을 그때 배웠어요.”

     당시 사람들은 한국 스트리트웨어를 ‘도메스틱 domestic’ 브랜드로 불렀다. 누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선진 문물처럼 받아들인 외국 스트리트웨어와 선을 긋는 용어로 널리 퍼졌다. ‘극한’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와 현상을 비평하고자 출발한 크리틱이 선보인 첫 번째 인상적인 결과물이었다. 모든 티셔츠 위의 서체가 영어일 때, 그 모든 문화의 기원이 외국에 존재할 때, 서울에서 막 시작한 젊은 스트리트웨어 개척자들이 선보인 유머이자 패러디였고, 즐거운 발자취였다. 그때는 맹목적으로 외국 브랜드를 좋아하던 시기였어요. 뉴욕에 가보지도, 살아보지도 않고 뉴욕 시티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그게 멋진 걸까생각했습니다. 우리 지역 local 그대로 옮긴서울티셔츠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생소하게 받아들였어요. 내가 진짜로 사는 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혼란을 겪던 시기였어요.”

     크리틱 이전부터 전개한 뉴서울브라더스, NSB는 이러한 지점을 극대화했다. 호돌이, 남산타워, 남대문처럼 대한민국이 내세울 수 있는 걸 전부 끄집어냈다. 서울의 아카이브를 만들고, 이런 우리나라도 만들 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취지는 좋은데 입을 없다 분위기였어요. 이제는 호돌이가 그렇게 인기 있죠.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잖아요. 국가 위상이 달라졌으니까.” 이러한 변화가 한류와 케이팝 K-Pop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서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때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한 젊은 창작자들이 디딤돌을 하나씩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윗세대 어른들의 세련됨을 정의한 단어, ‘미제 Made in USA’는 지금 그 함의가 달라졌다. 서울을 비롯한 지역 문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대의 원형으로서 크리틱은 출발 지점에 있다.

   현재

     15년 가까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역경은 인간관계와 함께 사업 성장기에 왔다. 사람 관계에서 오는 오해와 브랜드가 단계 사업 측면으로 올라서기 위한 분쟁 같은 것들, 브랜드를 어느 정도 키웠는데 운영을 감당하기 어렵다든지 매출 같은 것들이 힘들었어요. 거기서 어떻게 버티는가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크리틱은볼륨 선택했어요. 유통 라이센스를 주고 생산을 맡겼는데, 매출이 100 가까이 커졌어요. 그러다가 유통사가 재정 문제로 부도가 거예요. 이제 떠오르며 모두 힘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없어진 거죠. 커진 규모를 혼자 감당할 재량은 되었어요. 초반에는 규모를 축소해서 시즌 정도 전개했어요. 담보 대출로 3억을 받아서, 압구정동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다시 시작했죠.”

    그렇게 한 시즌은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 시즌, 브랜드로서 중요한 겨울 시즌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는 비슷한 위기를 극복한 브랜드 대표들에게 자문했다. 몇 가지 선택의 순간이 존재했다. 함께 손을 잡은 파트너는 무신사였다. 지금의 굿네이션은 이대웅과 무신사가 공동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크리틱이 예전처럼 50, 100억을 찍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콘텐츠 개발 능력이 있어요. 라이센스 브랜드를 디자인하고, 제품화하는 식의디자인 으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대웅은 지금도 발전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옛날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지 겨우 반응을 있는 시대입니다. 소모적인 부분도 있죠.” 상승과 부침을 모두 겪은 크리틱은 지금 어떤 식으로 가고 있을까? 크리에이티브 자체에 변화는 없어요. 기본적인, 전체적인 콘셉트와 방향은 비슷해요. 다만 시장 시스템에 계속 맞추어 나가는 부분이 달라졌어요. 무신사의 성장도 어찌 보면 일환이고, 사람들의 취향도 빨리 바뀌죠. 예전에는 우리 스타일대로만 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스타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만큼 바꾸고 있습니다.”

© CRITIC / GOODNATION Store.

     2020년 현재, 한국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를 – 외국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는 반대 의미로 – ‘도메스틱 브랜드’로 부르던 문화는 사라졌다. 또한,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자국의 크고 작은 패션 브랜드가 사랑받는다. 브랜드를 전개하고 굿네이션을 운영하면서, 이대웅은 당연히 시대와 세대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소비 형태가 바뀌면서 옷과 브랜드의 가치도 크리틱을 시작할 무렵보다 많이 떨어진 같아요. 옛날에는 사고 싶은 옷이 비싸도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사겠다는 일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없는 같거든요. 닳도록 입는 아니라, 일종의 환급 아이템처럼 사람들이 비싼 계속 사는 느낌이랄까요? 이득이나 재화가 없는 일상복이나 편안한 스트리트웨어에는 그렇게 많은 가치를 두지 않죠. 그게 조금 힘들어요. 옷의 평균 가격은 낮아졌지만, 사람들의 눈은 높아지고, 정보는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과감한 투자가 없는 느낌도 드네요. 입어보고 소비하면서 내공을 쌓는 아니라, 실패하지 않으려는 면도 느껴집니다. 옷을 만드는 입장에서 생각할 부분도 그만큼 늘어나고요.”

     오프라인을 지배하던 패션 문화가 온라인으로 거점을 옮기는 것과도 연결점이 있다. 이대웅은 ‘리셀 resell’ 문화가 이 흐름에 불을 지폈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로또’ 개념으로 스니커즈를 사는 문화처럼 말이다.꼰대 같을 수도 있는데, 스니커즈 문화도 조금 달라졌어요. 나이키 Nike SB 서서 때는 오히려 사람들의 눈이 냉정했거든요. 예쁘지 않으면 별로라고 생각하고 줄을 서지 않았어요. 직접 가서 기다려야 하고, 코디네이션을 고민하고, 어떤 색이 나왔는지 꼼꼼히 따졌으니까요. 지금은 엄청나게 난해한 디자인도 리셀을 위해서 온라인 래플에 참여하죠. 사람들이 신을 같지 않은 디자인도 금세 매진됩니다. 수집하는재화로서 가치를 창출하는 아이템이지, 만드는 사람도 패션 아이템의 개념으로 디자인하는 같지 않아요. 자극적인 한정판처럼 보여요. 이런 바뀐 같습니다.”

© CRITIC Autumn and Winter 2020 ‘City Scout’ Collection.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의 차이점을 굳이 찾자면, 항상 ‘청년문화 youth culture’의 상태를 유지하며 ‘나이를 먹지 않는’ 고객들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설립 20년이 넘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도 여전히 갓 10대 후반에 들어선 고객을 위한 옷을 만든다. 디렉터와 브랜드가 나이를 먹어도 항상 그들이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후드 파카와 티셔츠를 셔츠보다 자주 입은 요즘 – 스트리트웨어가 세계 패션의 주류로 올라선 이래 – 이 업계는 어느 정도 정형화한 측면이 있다. 브랜드로서 크리틱도 나이를 먹을 것이다. 계속 함께하는 팬도 있고, 새로운 고객도 유입한다. 이러한 변화 속, 지금의 크리틱을 이대웅은 ‘틈새를 공략하는 브랜드’로 정의한다. 브랜드 운영을 위하여 주류에 편승하는 면도 필요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가 이건 할 수 있다, 우리 스타일은 이런 거라고 보여주는 브랜드가 크리틱이라고 했다.

     지금 굿네이션에는 네 명의 디자이너, 세 명의 MD 그리고 두 명의 마케터가 이대웅과 함께 있다. 여전히 크리틱의 고객은 20대 초중반에서 많게는 30대 중반을 아우른다. 그는 이제 40대 중반을 향해 간다. 항상 안테나를 높게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다. 재밌는 점은 ‘크리틱’이라는 브랜드와 ‘이대웅’이라는 개인이 이제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와 브랜드 사이에 어떤거리감 있어요. 그래도 저의 라이프스타일을 녹이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설 있는 만드는 작업이에요.” 하지만 그는 굳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고민하거나 노력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어렸을 아주 좋아했던 것도 결국 많은 사람의 취향은 아니었거든요. 억지로 젊게 꾸미려는 노력은 좋지 않아요. 주위 친구들도 나이를 먹는데, 유행 아이템으로 꾸밀수록 늙어 보이는 현상이 있거든요. 요즘 정답이 없잖아요. 항상 중도를 유지하자고 생각해요. 디자인부터 웬만한 것들은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대부분 믿고 맡겨요. 보통 콘텐츠를 만들 때만 관여하고 있습니다.” 

© CRITIC / GOODNATION Store.

     크리틱과 굿네이션의 수장으로서, 그는 경영자의 관점으로 브랜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크리틱은 현재 30억에서 40억 정도 규모의 매출액을 유지한다. 가장 규모가 컸을 때보다는 제법 줄어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콘텐츠와 마케팅으로 고객들에게 보이는 부분을 가장 많이 신경 쓴다. 우상향을 지향하며 다른 비즈니스로 확장하고, 새로운 걸 인큐베이팅하고, 새 직원을 뽑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박을 터트리긴 쉽지만, 유지하는 어려운 거죠. 단발성 굿즈가 아닌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모든 브랜드의 공통된 고민일 거예요. 오랫동안 멋있게 브랜드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정말로 존경합니다.”

     여전히 크리틱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기발한 협업을 선보이고, 새로운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2020년의 이대웅은 확실한 ‘자기색’을 유지하는 걸 크리에이티브의 첫 번째 조건으로 삼는다. 누가 봐도 누구의 작품이고, 브랜드인지 한 번에 인지할 수 있는 포인트 같은 것들 말이다. 로고이든, 특정한 실루엣이 되었든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유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크리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른 것들과 조금 다른 포인트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비슷한 옷이 많은 세상,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사람들이 크리틱을 고른다. 이대웅은 자신의 정체성을 ‘괴짜 아저씨’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괴짜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서울과 지역성

     수많은 패션 장르 속에 스트리트웨어가 유독 뿌리 내린 ‘지역’에 애정을 표하는 점은 흥미롭다. ‘서울’이라는 지역색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대웅은 물론 크리틱과 굿네이션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어로 만든 그래픽 디자인은 크리틱의 정체성이다.

    과거 어느 인터뷰에서 이대웅 디렉터는 본인의 디자인 정체성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영어나 외국어가 멋지다고 할 때, 주요 협업이나 중요한 컬렉션에 한국어를 변주하여 넣은 시도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두가 ‘한글’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면, 그는 크리틱을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NSB’와 ‘극한’은 물론 크리틱의 여러 협업에 이르기까지, ‘왜 없나?’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 88 올림픽을 기념하는 세상, 이제 그는 이러한 당연함을 굳이 브랜드에 녹여내지 않는다.좋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공략 포인트로 삼았어요. 한국어 서체, 한글 사용도너희가 봐도, 멋지게 만들어 볼게하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 Seoul, The Republic of Korea, 2020.

     서울이라는 도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위상도 크리틱을 처음 시작할 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 우리 패션과 음악이 세계에서 인정 받지못한 시기를 실시간으로 거친 그는 기분이 조금 묘하다고 했다. 하위문화 subculture를 좋아해서 20대 초반부터 자주 들른 일본에 가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반응을 느낀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과거 NSB 때와는 또 다르게 갈 것 같다고 했다.조금 비틀 거예요. 국가의 높은 위상 같은 , 반대로 말이죠.” 

     이대웅은 한국과 서울의 스트리트웨어 문화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지금의 신은 일종의 ‘하이브리드 hybrid’처럼 보인다. 모두가 과거보다 더 적극적이고 유동적으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다. 이제 문화는 나누어져 있지 않다. 스포츠, 스트리트웨어, 하이엔드 패션은 경계 없이 섞여 있다. 서울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성은 선명할 정도로 늘었는데, 그는 오히려 재미가 없는 면도 보인다고 했다. 

     신선한 브랜드도 나오지만, ‘ 사람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오래 지속할까걱정도 있어요. 시장이 아이템 위주로 재편하고, 브랜드 충성도가 낮아지는 것도 한몫하죠. 요즘 흥미롭게 브랜드는아조바이아조 AJOBYAJO예요. 어찌 보면 옛날에는 있었을 법한데, 보자마자없던 카테고리가 튀어나왔다 생각했어요. 지금 로컬 패션은 대체로 상향 평준화되어 있잖아요. 고품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소비자들의 감흥은 점점 줄어들죠.” 

     사람들이 막 만든 ‘날 것’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옛날처럼 잡고 CG 넣은 이미지가 아니라 대충 찍은 멋지다고 하니까, 영상 감독과 사진가들도 혼란이 거예요. 아무리 공들여도 찰나의 순간, 눈에 들어온 것만 집중하니까. 인스타그램 피드 하나로 지나가죠. 요즘은 다른 거로 전환하지 않으면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변화조차도 소비되고, 끝나버리고는 하죠. 혼돈의 카오스예요.” 모두 더, 더, 더 빨리 가는 시대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았다.

   개인

     브랜드의 크리이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닌 ‘개인’ 이대웅은 요즘 가족, 여행, 캠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과거에는 일과 쉼의 경계가 없었다. 어딜 가도, 무얼 해도 ‘일’이 연결되었다. 지금은 반대로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7년 전 결혼을 하고, 다섯 살과 세 살의 아이가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그는 유행의 공간 대신 자연에서 주말을 보내는 삶을 산다. 아내와 그는 한옥 스테이를 자주 방문한다. 최근 들른 곳 중에는 경주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수학여행 이후 처음 갔는데 정말로 좋았어요. 도시 힙스터 문화에 찌든 분들이라면 또 하나의 힙스터 문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멀어서 문제지.” 대신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한 ‘디깅’은 인터넷으로 한다. 

© ‘Camp Site with Fire’ by PLAYMOBILE, Lee Daewoong’s Personal Collection.

© Graphic Works for CAPITAL RADIO TUNES, 2020.

     2020년 여름부터 처음 선보인 굿네이션 레이블의 신규 브랜드, 캐피탈 라디오 튠즈 CAPITAL RADIO TUNES는 ‘CRT by CRITIC’이라는 크리틱 하위 라인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충분히 옷값이 내려간 상황에서 저가 경쟁으로 승부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이대웅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이라는 콘셉트가 자연스럽게 추가되었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물고, 가장 즐기는 공간에 둘 물건과 옷이 새로운 브랜드 안에 있다. 캠핑 때 유용하게 쓸 폴딩 체어부터 애플 로고를 담은 쿠션, 미군용 멜라민 소재 컵과 물론 집에 카세트테이프를 담는 수납 상자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 나와 주변 사람이 부담 없이 입고 싶은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음악이라는 주제로 다양하게 풀어내는 소소한 컬렉션이에요. 입점 매장도 최소한으로 줄여서 새로 시작하는 느낌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래

     코로나19 COVID-19로 촉발한 상황이 끼친 영향은 분명했지만, 모두에게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이대웅은 미래를 궁리한다.다들 비슷하게 느끼겠죠. 매출이 줄고 소비 패턴이 바뀌니까요. 모두 공통으로 처한 상황이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상황을 활용할 아는 사람은 헤쳐나갈 것이고요. 하나 다른 점은, 사람들의 삶이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지금 상황에 맞춘 패션이든, 비즈니스를 해야겠죠. CRT 라인에 변화를 것도 어찌 보면 요즘 세태에 맞게 기획한 것이죠.”

     자기 색을 유지하면서도 유행을 빠르게 캐치해야 하는 브랜드의 디렉터로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의 수장으로서 이대웅은 ‘원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되, 보여주는 방식만 발전하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이게 멋지다고 전달할 수 있을까, 예전보다 훨씬 많이 고민하고 공부한다. 이를테면 ‘브랜딩’의 관점이다. 

     컬렉션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던 방식을 따르되,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나 문물을 진짜로 빠르게 받아들이려는 편입니다. 인스타그램 Instagram 필터와 GIF 스티커 같은 바로바로 받아들여야 하는 매체라고 생각하거든요. 틱톡 TikTok 활용한 마케팅도 마찬가지겠죠. 닫혀 있다면 없으니까요. 항상 소통하는 방법을 열린 사고로 열어두는 거죠. 디자인을 떠나서.”

© CRITIC’s Printed Matters and Objects, Autumn and Winter 2014 to Autumn and Winter 2020 Collection.

     미래는 곧 다음 세대와 연결된다. 10년 전의 나처럼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때,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 이 글을 볼 수 있다. ‘조언이란 모두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이며, 백만장자의 조언이 담긴 책도 엄청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이대웅은 ‘지구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옷과 패션 브랜드만이 아니라, 어떠한 분야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얼마나 지구력을 유지하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흥미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중요해요. 아무리 일이 잘된다고 해도, 흥미가 떨어지면 것이 아니게 되거든요. 사업을 하든, 요식업을 하든, 패션을 업으로 삼더라도 반드시 어려운 상황은 옵니다. 지구력은 그걸 이겨내는 중요한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0년도 가을/겨울 시즌, 크리틱은 ‘시티 스카우트 City Scout’라는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인다. 도시의 보이스카우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크리틱의 유니폼은 코로나19로 타의의 격리 상태를 겪은 지금 시대를 반영한다. 실제로 ‘시티 스카우트’ 컬렉션의 메인 영상은 모두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른 상황과 관점으로 기록한다. 실내에서 아웃도어 활동을 하거나, 음악을 만들고, 취미와 생활과 휴식을 이어가는 내용이다.보이 스카우트라면 기본적으로 야외 활동을 하지만, 밖이 아닌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있는 옷으로 (격리 상황을) 해소해보자는 관점으로 시작한 거죠. 콘셉트는 내년에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 Lee Daewoong, Creative Director of GOODNAVTION & CRITIC.

     이대웅은 앞으로 두 개 정도 새 브랜드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완전히아웃도어 초점을 맞춘 굿즈를 기획하고 있어요. 상표 등록까지 모두 마쳤고,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되는데 지금 어떻게 여유를 가져야 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마치 크리틱 초창기처럼 오롯이 ‘그래픽 티셔츠’만 나오는 브랜드라고 했다. 진짜로 키치하거나, 가벼운 브랜드로요.” 크리틱의 세컨드 브랜드가 돌고 돌아서 이대웅의 지금 라이프스타일을 슬며시 반영하는 것처럼, 아직 실제로 보지는 않았으나 그가 준비한다는 두 가지 새로운 계획 또한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핵심을 전면에 조금 더 내세우는 느낌이다.하나의 우리 색깔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거죠.”

     2021년에 크리틱은 15주년을 맞이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는 ‘준비’하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 열다섯 살의 크리틱을 보여줄지 말이다. 

     사실 흘러가는 대로 하고 있어요. 여태 그랬지만, 계획을 엄청나게 세워서 여기까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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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2-11
FASHION ANGEL x The NAVY Magazine Article 02. 패션엔젤: 패션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법률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