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r Post

카테고리

마드모아젤의 순간들

A Few Moments of Gabrielle ‘Coco’ Chanel.

 

Text  Hong Sukwoo

Images  Willy Rizzo, Douglas Kirkland, Karl Lagerfeld

    샤넬 Chanel.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C’ 두 개를 겹친 로고, 마릴린 먼로가 잘 때 ‘입었다’는 N°5 향수, 수많은 패션 아이콘과 화려한 친구들, 그러나 알려진 사생활만큼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었던 여인.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시절 조력 활동으로 패션계에서 잠정 은퇴 후, 복귀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사람.

    깡봉 가 Rue Cambon의 아틀리에, 줄담배와 모델들, 모조 보석과 진짜 보석을 섞은 주얼리 컬렉션과 트위드 재킷으로 고급 패션을 재정립한 인물….

    수많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수많은 샤넬 중, 가브리엘 보뇌르 ‘코코’ 샤넬 Gabrielle Bonheur ‘Coco’ Chanel은 어떤 사람일까.

© Mademoiselle: Coco Chanel/Summer 62 by Douglas Kirkland and Karl Lagerfeld, 2009.

    샤넬은 프랑스 패션 하우스의 상징이다. 고급 기성복과 장신구로 역사와 유산을 쌓은 이름이기도 하다. 하나의 ‘브랜드 brand’로서 샤넬은 수십 년 이상 충성도 높은 고객들로도 알려져 있다. 이 전설적인 명칭이 사실 사람의 이름이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망각해가는 건 아닐까? 가방 이름이나 가죽의 소재가 아니라, 누군가 친숙하게 불렀던 여성이었다는 걸 말이다.

    여기 고급 백화점 가장 목 좋은 자리에 들어선 매장 대신,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있다. ‘코코’는 알려진 것처럼 그의 별명이자 애칭이었다. 이미 수없이 알려진 그의 ‘결정적 순간’ 대신, 좀 더 사적인 면모를 드러낸 몇 가지 일화와 감상을 풀어내고자 한다.

© Chanel par Willy Rizzo Chanel by Willy Rizzo, 2015.

1954년, 윌리 리조, 코코 샤넬, 트위드 재킷

    윌리 리조 Willy Rizzo, 1928-2013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사진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1930년대 이후, 당시 명성이 자자한 파리 매치 Paris Match의 사진가로 유명인사들을 촬영했다. 1940년대 사진은 지금처럼 독립적인 ‘예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서 보도 사진 photo journalism의 가치를 확실히 다진 첫 번째 ‘황금기’였다.

그는 할리우드의 중요성을 깨달은 비 미국인 사진가였다.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과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와 타계 직전의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가 그의 렌즈에 담겼다. 코코 샤넬과의 인연 또한 1940년대 후반 처음 이어졌다.

윌리 리조가 찍은 샤넬의 사진이 책과 전시로 공개된 것은 2015년이다. 타계 2년 후였다. 그의 렌즈는 오랜 시간 샤넬을 담았다. 1954년부터 1967년까지 기록한 사진집은 총 네 개의 시간대로 나뉜다. 전시 戰時 독일 협력자였던 샤넬이 제2차 세계대전 후 파리로 복귀하여 패션쇼를 준비하던 시절인 1954년, 재도약하던 1955년부터 1958년, 브랜드 정점을 찍은 1959년, 그리고 ‘스윙잉 60년대 the swinging Sixties‘ 시절의 노년기까지. 여기서 주목하는 순간은 1954년의 샤넬이다.

    파리로 복귀한 ‘마드모아젤 Mademoiselle(샤넬은 부인을 뜻하는 ‘마담’ 대신 숙녀를 부르는 ‘마드모아젤’ 호칭을 평생토록 좋아했다)’ 샤넬은 대중의 냉소를 받으며 컬렉션을 준비했다. 파리 매치의 디렉터 에르베 밀르 Hervé Mille는 샤넬의 복귀를 사진에 담도록 윌리 리조에게 주문했다. 그가 찍은 샤넬은 패션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커다란 스튜디오에는 재단사들과 보조 디자이너들, 직원들과 수없이 많은 모델이 오고 갔다. 69세의 ‘마드모아젤’은 여전히 당당했지만 걱정도 많았다. 타계 수년 전 저널리스트 데이나 토머스 Dana Thomas와 인터뷰한 윌리 리조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샤넬은 사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어요. 항상 친절하진 않았지만 수다스러운 편이었죠. 점심 후, 문 앞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서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첫 복귀 컬렉션을 준비하던 아틀리에는 북적이는 모델과 수없이 쌓인 원단, 프랑스 문화와 중국식 오리엔탈리즘이 섞인 실내 장식들로 뒤섞여 있었다. 샤넬의 작업 풍경부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면모가 남아 있다. 1954년, 복귀를 막 준비하는 마드모아젤의 초상 사진 portrait에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대표적 디자인 signature design으로 자리매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납작하고 둥근 챙의 모자, 짙고 삐죽 선 눈썹 화장, 보석 박힌 반지와 진주 목걸이 그리고 ‘실크 트위드 재킷 silk tweed jacket’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샤넬이 복귀한 1954년 선보인 트위드 재킷은 여성들에게 ‘드레스’가 아닌 의복 선택권을 준 혁명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샤넬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 Mademoiselle: Coco Chanel/Summer 62 by Douglas Kirkland and Karl Lagerfeld, 2009.

1962년, 더글라스 커크랜드, 마드모아젤 샤넬, 여름

    미국 사진가 더글라스 커크랜드 Douglas Kirkland가 샤넬을 처음 찍었을 때 그는 스물일곱 살의 비쩍 마르고 키가 큰 앳된 금발 청년이었다. 1962년, 미국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Jacqueline Kennedy가 샤넬의 수트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한 잡지사의 촬영 의뢰가 들어왔다. 샤넬은커녕 프랑스어 한마디 모르던 청년은 찌는 듯한 더위의 파리로 향했다. 당시 샤넬은 이미 79세의 고령이었지만 복귀 후 대성공으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우리가 아는 트위드 재킷 치마 수트와 색을 맞춘 모자, 펌프스와 각진 가죽 가방은 ‘마드모아젤’의 유니폼이었다. 매장 겸 아틀리에와 두세 블록 거리에 살던 샤넬은 항상 아침 일찍 걸어서 출근했다.

    커크랜드의 사진 속 샤넬은 10여 년 전의 사진보다 나이가 들었지만 누구도 그를 79세로 생각하지 않았다. 모델들은 항상 아틀리에에 상주했고, 샤넬이 필요할 때 필요한 도구를 제때 갖다 바치는 직원들은 노련하게 움직였다. 샤넬 주변에는 항상 켄트 KENT 상표 담배와 옷을 고정하는 핀 그리고 재단 가위가 있었다. 화려한 금장 거울과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놓은 수많은 장식품은 사치스러움 그 자체였지만, 그 앞에 자세를 취한 블랙 미니 드레스의 모델은 누구보다도 우아했다. 아틀리에 유니폼인 하얀 가운을 입지 않은 사람은 샤넬 자신과 말쑥한 정장 차림의 사진가 뿐이었다.

    1962년 여름 컬렉션을 마친 후, 샤넬은 조금 더 사적인 공간으로 커크랜드를 초대했다. 수많은 장서 藏書로 둘러싸인 집이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도 샤넬은 결코 모자를 벗지 않았다. 사실 커크랜드는 파리에 머문 3주 동안 한 번도 모자를 벗은 마드모아젤을 본 적이 없었다. 샤넬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이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구두를 신은 채 기다란 소파에 누워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마드모아젤’의 까다로운 성격을 익히 들었던 젊은 사진가는 조금 걱정했었다. 하지만 샤넬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젊은 더글라스 커크랜드가 ‘대가’의 반열에 오른 건 이로부터 수십 년 후였다.

© The Little Black Jacket: Chanel’s Classic Revisited by Karl Lagerfeld and Carine Roitfeld, 2012.

2012년, 칼 라거펠트, 더 리틀 블랙 재킷

    마드모아젤 사후, 샤넬은 하나의 브랜드로서 영속하고 있다. 2012년은 코코 샤넬이 작고한 지 40년이 흐른 뒤였다. 샤넬 사후 유일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유명한 칼 라거펠트 Karl Lagerfeld는 1983년부터 지금까지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과거 샤넬이 했던 것처럼 새로움에 도전하는 한편, 마드모아젤이 남긴 유산을 새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창조한다. 2012년의 더 리틀 블랙 재킷 The Little Black Jacket: Chanel’s Classic Revisited 프로젝트는 내게 ‘샤넬 이후의 이후 post of post chanel’를 상징하는 변곡점이었다.

    당시 샤넬은 여느 고급 기성복 패션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높은 콧대를 유지한다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2010년 전후로 더 젊은 창작자들과 유명인사들에게 손짓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성이 풀리지 않았던 마드모아젤처럼, 칼 라거펠트 역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피사체는 다양했다. 유명한 배우부터 전혀 유명하지 않은 음악가가 커다란 흑백 사진 속에서 샤넬의 옷과 장신구를 걸쳤다.

    ‘작은 검정 재킷’이란 샤넬을 상징하는 의복의 종류이기도 했지만, 샤넬이 만든 고유한 스타일이기도 했다. 세계 주요 도시의 공간을 빌려 며칠씩 돌아가며 연 전시는 곧 두꺼운 장정판 사진집으로 출시했다. 이 책이 ‘마드모아젤’ 시대를 담은 두 권과 완벽하게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칼 라거펠트는 피사체로 존재하지 않고, 그가 직접 고른 유명인사들을 렌즈 속에 담아냈기 때문이며, 기록 사진이라기보단 패션 포트레이트에 가깝다. 하지만 눈여겨 본 건 바로 옷과 장신구들이다.

    장난스럽게 뛰며 렌즈를 바라보는 뉴욕 출신 래퍼 ‘테오필루스 런던 Theophilus London’을 50년대와 60년대 마드모아젤과는 연결할 순 없다. 하지만 그가 걸친 검정 트위드 재킷과 금속 장신구들은 그 시절에 이미 존재했던 샤넬 그 자체다. 달라진 점이라면 두 개의 C 로고를 겹친 야구 모자 정도였다. 지금의 샤넬이 과거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이 글에서는 샤넬이 처음 만든 매장이라든지, 1920년대식 향수 작명 방법과 달랐던 ‘N°5’ 이야기는 배제하고자 했다. 대신 코코 샤넬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 몇 명의 사진가들과 사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러분도 수십 년의 차이를 둔 ‘순간’들을 묘사한 글을 읽고 나면, 너무 높은 곳에 있는 듯한 마드모아젤의 면모가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This article has been contributed to AROUND Magazine, 2017.

Follow on Facebook & instagram.

Comments

2017-11-30
마르탱 마르지엘라 이야기 N° 01
2017-12-21
2017년 한국, 롱 패딩 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