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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마르지엘라 이야기 N° 02

Martin Margiela Talk, Part Two.

 

Text  Hong Sukwoo

In associates with  Magazine B CAST Episode 7 Maison Margiela

 

    메종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의 설립자, 마르탱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1989년 브랜드를 설립 후 은퇴를 선언한 2009년까지,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패션계를 넘어 문화예술계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유지를 따르던 충실한 디자인팀에 이어서 현재는 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가 이끄는 어엿한 패션 하우스가 되었습니다만(이름을 빼고 성만 남겼습니다), 존 갈리아노 시대 이전,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남긴 유산에 여러 일화와 생각이 있습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토크’를 부제로 단 이번 글에서는 말 그대로 마르지엘라 이야기를 다룹니다. 2017년 3월 매거진 비 Magazine B의 팟캐스트 podcasts, 비 캐스트 B CAST ‘메종 마르지엘라’편 대화를 위해 준비한 질문과 답변으로 실제 방송에 들어가지 않은 내용을 전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앞서 전해드린 1부 Part One에 이은 글입니다.

© Angelo Spadaro‘s first collaboration with Maison Martin Margiela: music for show Autumn/Winter 2003-2004. Image from A Magazine #1 Curated by Maison Martin Margiela. Photographed by The NAVY Magazine.

마르지엘라는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디자이너인 만큼 흔히 20세기 복식사에 주요 디자이너로 등장하는 코코 샤넬 Coco Chanel이나 크리스챤 디올 Christian Dior, 발렌시아가 Balenciaga만큼의 디자인 유산을 남겼다는 말도 듣는데요. 철저히 디자인 측면에서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마르지엘라가 아직 브랜드를 이끌던 시절에도, 수많은 평론가나 패션지들이 그의 컬렉션을 보며 ‘해체주의’ 디자이너의 대가로 추켜세웠어요. 하지만 저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가장 큰 업적이 기성 패션 하우스들의 비교할 수 없는 ‘아카이브 archive’에 맞서, 젊은 동시대 디자이너로서 자기만의 색을 만들어낸 ‘과정 work in progress’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길거리나 지하철역에서 패션쇼를 열고, 아틀리에를 흰색 페인트 white paint로 칠하고, 90년대 득세한 슈퍼 모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얼굴을 가려버린 런웨이 무대 등은 결과적으로 ‘자본’이 그만큼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깎아내리지 않죠. 생존을 위해 행한 방식이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는 건 아이러니지만, 그만큼 후대 디자이너들이 마르지엘라의 작업 비슷한 뭔가라도 하면, 그 우산 아래 가려질 수밖에 없는 발자취가 되었습니다.

마르지엘라 디자인을 요약하는 요소로 여러 단어가 등장하죠. 해체주의, 재생주의, 유니섹스, 순백색, 트롱프뢰유 trompe-l’oeil. 단어로 들으면 다소 어려운 용어일 수 있어요. 마르지엘라가 여러 시즌에 걸쳐 선보인 구체적인 룩을 통해 이런 것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르지엘라의 컬렉션을 함축해서 보여준 협업 collaboration으로 패스트 패션 브랜드 에이치앤엠 H&M과의 2012년도 가을/겨울 Autumn/Winter 2012 캡슐 컬렉션 capsule collection을 꼽습니다. 혹자는 패스트 패션과 협업한 메종에 실망하기도 했고, 저도 처음 컬렉션을 직접 보기 전에는 좀 실망했는데, 실제로 컬렉션을 찬찬히 뜯어보면 전과 후의 협업들과는 분명히 달랐어요.

    마르지엘라는 이 협업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지 않고, 브랜드 초기부터 2012년까지 선보인 컬렉션 중 남성복과 여성복, 장신구와 오브제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컬렉션을 ‘재해석’하여 선보였습니다. 컬렉션 부제는 ‘Re-edition of Maison Martin Margiela Garments from Various Season’, 즉 여러 시즌의 마르지엘라 의복과 장신구를 개정 re-edtion했다는 문장이었어요.

    ‘아카이브’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다름’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메종 마르지엘라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협업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고급 맞춤복의 작업 방식과 유사하게 옷을 만드는 0번(여성복)과 0-10번(남성복)부터 기성복 컬렉션 라인인 1번(여성복)과 10번(남성복), 기존 컬렉션에서 선보인 옷을 꾸준히 재해석하는 4번(여성복)과 14번(남성복) 그리고 액세서리와 신발 라인인 11번과 22번까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거의 모든 라인에서 고른 옷들을 바탕으로 다시 만든 ‘아카이브 컬렉션’의 성격이 강했어요.

    마르지엘라 팬이라면 익히 접했을 법한 유명한 컬렉션들에서 대표적인 조각들만 쏙 빼서 가지런히 정리한 느낌이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 개 꼽자면 앞서 언급한 ‘인형의 옷장 doll’s wardrobe‘ 컬렉션에서 가져온 커다란 단추의 카디건 cardigan, 1998~1999년도 가을/겨울 시즌에서 선보인 ‘가죽 장갑으로 만든 목걸이형 지갑’ 그리고 메종의 초창기 작업 중 가장 유명한 ‘양말로 만든 스웨터’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협업의 모든 아이템에는 어느 컬렉션에서 어느 아이템을 가져왔는지 설명서가 붙어 있고요.

    실험적인 여성복에 비해 일상복에 가까운 남성복 또한 안감과 겉감의 위치를 바꾼 낙타색 코트 camel coat, 안감을 겉으로 드러낸 후 수차례 가공을 더한 데님 재킷 denim jacket과 청바지 jeans, 손잡이 부분이 바닥을 향하는 가죽 가방 leather bag 등은 실제로도 무척 유용하게 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컬렉션은 메종 마르지엘라가 직접 고른 패션 아이템들을 하나의 기록 저장소처럼 컬렉션으로 정리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메인 컬렉션보다 더 ‘민주적인’ 가격대로 나름대로 합리적인 가격대와 품질의 제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아방가르드 avant-garde라는 키워드로 가장 많이 비교되는 브랜드가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 꼼데가르송과 마르지엘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1980년대 세계 패션계에 데뷔한 디자이너 두 명이 현재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를 만들었다는 점, 둘 다 주류 패션계가 가지 않은 길과 방식으로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에서 꼼데가르송과 메종 마르지엘라는 교집합이 있습니다. 외부인이 보기에 둘 다 주류에 저항하는 이미지를 새겼다는 점, 그리고 충실하고 오래된 고객들이 세계 곳곳에 깔렸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가령 패션 캠페인이나 사진 작업을 만들 때도, 둘은 슈퍼 모델과 유명인사처럼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과 작업하고 협업한 점도 비슷하고요. 둘 다 ‘은둔’이라는 이미지가 있을 정도로 매체 노출을 극도로 피한다는 점도 비슷한 점입니다.

꼼데가르송 역시 마르지엘라처럼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브랜드인가요? 그 정신을 이어받은 브랜드엔 어떤 게 있을까요?

    둘을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꼼데가르송 하면 떠오르는 ‘블랙 black’과 메종 마르지엘라의 ‘화이트 white’처럼 마치 거울의 양면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둘 다 이론의 여지 없이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가 되었고요.

    다만, 꼼데가르송은 전무후무할 정도로 하나의 브랜드 아래서 ‘차세대 디자이너’들을 키워낸 점이 다르죠. 준야 와타나베 Junya Watanabe는 꼼데가르송의 패턴사였고, 트리코 Tricot 라인을 만들던 타오 쿠리하라 Tao Kurihara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타오 꼼데가르송 Tao COMME des GARÇONS 라인을 선보였죠. 가장 최근에는 준야 와타나베 꼼데가르송의 패턴사였던 1981년생 후미토 간류 Fumito Ganryu가 자신의 브랜드 간류 GANRYU를 꼼데가르송 안에서 선보이고 있고요.

    정정하게 살아 있는데도,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영광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나눠주는 디자이너는 꼼데가르송의 설립자 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를 제외하면 패션계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가장 동시대적인 일본 패션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 사카이 Sacai의 치토세 아베 Chitose Abe나 언더커버 Undercover의 준 다카하시 Jun Takahashi가 파리 패션위크에 데뷔할 때도 레이 카와쿠보가 큰 도움을 주고, 꼼데가르송이 만든 패션 편집매장 도버 스트리트 마켓 Dover Street Market에 입점한 일은 유명합니다.

    고샤 루브친스키 Gosha Rubchinskiy 역시, 그 재능을 알아본 레이 가와쿠보가 투자하여 꼼데가르송의 생산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하게 했죠. 지금 언급한 이들이 모두 레이 가와쿠보, 즉 꼼데가르송의 정신을 이어받았을 겁니다.

매거진 Magazine B에 실린 기사에 보면 이런 말도 있어요. “마르지엘라는 소재를 발견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소재가 갖는 역할에 대한 관점을 전환시키는데 관심을 가져왔다”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개인적으로 마르지엘라가 패션사적으로 영향을 끼친 가장 큰 업적은 주류 패션계가 관심 두지 않았던 ‘빈티지 vintage’를 패션의 한 장르로 당당히 편입했다는 점입니다. 단지 희귀한 패션 아이템을 사들여서 대충 작업한 다음 비싼 가격을 붙인 게 아니라, 1940년대 군용 재킷 military jacket이나 60년대 스웨트셔츠 sweatshirt처럼 시간과 역사를 담은 옷을 발견하고, 그 옷의 기존 특징과 소재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마르지엘라 특유의 ‘익명성 anonymity’을 담아낸 컬렉션을 꾸준히 발매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리에디션’ 작업은 사실 호불호가 갈립니다. 혹자는 마르지엘라 옷을 두고 ‘소재가 너무 안 좋다’고도 하거든요. 하지만 보세요. 이제 고급 기성복 high-end ready-to-wear을 말할 때, 좋은 실크 silk나 모피 fur만을 하이패션으로 부르진 않잖아요? 마르지엘라가 이룩한 업적 중 하나 아닐까요.

마르지엘라의 디자인적 캐릭터를 두고, 그가 선보인 패션이 기술적 노하우의 일종인 공예 crafts, 혹은 예술 art이라는 견해 차이도 보이는 듯해요. 패션은 예술이어야 할까요?

    현대 예술 modern art과 패션 모두 커다란 ‘시스템 system’ 안에 속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다만 예술은 비교적 소수의 수집가 collector와 소비자들이 존재하고, 패션은 그보다는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일반 소비자가 존재하죠.

    마르지엘라의 과거 컬렉션을 다룬 책을 보면, 우리가 매일 입는 의복을 어떤 방식으로든 비틀어 생각하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찌그러진 음료수 캔의 모양처럼 ‘평평한’ 옷을 사실은 입체적인 사람이 직접 입을 수 있는 실험을 메종 마르지엘라는 했죠. 공예적인 요소와 예술적인 요소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예술이다 아니라, 재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말하면, 전 세계 메종 마르지엘라 매장이 예술품을 다루는 갤러리 gallery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후대에 예술품과 동등한 취급을 받을 수는 있어도 지금은 그저 이 브랜드를 소비하는 개인으로서 소비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지금 이 시대의 패션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요즘, 동시대 패션 contemporary fashion은 어느 때보다 ‘상업적’ 패션으로 생각합니다. 상업적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드러낼 이유도 없어요. 패스트 패션처럼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려도 아쉽지 않은 패션이 지금처럼 득세한 시절도 없었고, 어제 열린 컬렉션의 수많은 리뷰와 영상, 세부 사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절 또한 지금이 최초입니다.

    상업적이란 말은 곧 ‘즉각적 instant·인스턴트’이란 단어와 맞닿아 있겠네요.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단지 쇼윈도를 위한 패션을 만들지 않고 자기 생각을 옷에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런 창조성이 어떻게 비즈니스와 연결되는가, 관찰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요.

슬로 패션 slow fashion이라는 키워드도 등장해요. 마르지엘라는 여성들이 자신의 옷을 시즌마다 갈아치우길 원하지 않았고, 그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옷장은 가장 기본이 되는 옷가지에 시즌마다 아이템 한두 개를 더해서 서서히 진화하는 옷장이었다고 하는데요. 동의하시나요? 패션에 관심 두는 이들이라면 쉽게 동의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패션이란 결국 집을 꾸미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에는 눈에 띄고, 커다랗고, 뭔가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요소에 눈이 갑니다. 그러다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더 정갈하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에 관심이 가죠. 화려함을 패션의 본질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신 질문에 동의하고요. 마르지엘라 매장에 걸린 컬렉션 역시 화려한 옷과 그렇지 않고 심심한 보통 옷들의 비중이 엇비슷하거나 후자가 더 많아요.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오히려 딜레마이기도 하죠. 더 정갈하고, 간결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도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다시 화려한 옷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좀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슬로 푸드 slow food나 슬로 패션의 붐이 일면서 사람들이 윤리적 비즈니스나 건강한 삶에 관심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자라나 H&M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기세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것 같아요. 패스트 패션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처음 H&M이나 유니클로 UNIQLO가 한국에 정식 진출했을 때 ‘절대로 사지 않겠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상복 관점에서 둘의 소재나 디자인, 가격에 대응할 대안을 찾기도 사실 쉽지 않았어요. 유니클로의 ‘에어리즘’ 브리프 같은 건, 얼마 전 낮 기온 35도까지 오르는 방콕에 잠깐 다녀왔는데 정말 혁신이었거든요. 그걸 그 가격에 판매한다는 게 말이죠.

    또한, 직업적으로 패션을 다루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보통 사람들에게 어떠한 시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모두 그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고, 그 가치를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업계의 관찰자나 비평가들이 이러한 대기업들이 좀 더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꾸준히 관찰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후원하고, 옷을 실제로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더 합당한 처우를 취하고, 환경 문제를 가장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등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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