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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

COMME des GARÇONS.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COMME des GARÇONS

© Rei Kawakubo, early 1980’s. Image courtesy of COMME des GARÇONS.

    프랑스어로 ‘소년처럼’이란 뜻의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은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ReiKawakubo·川久保玲가 만든 일본 대표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다. 일본 도쿄에서 기성복 브랜드 꼼데가르송을 설립한 1969년은 아시아 출신 패션 디자이너가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1981년, 파리 컬렉션에 진출한 꼼데가르송은 ‘검정 black’에 관한 서구인들의 개념을 흔들었다. 일부러 거칠고 낡은 distressed 느낌을 낸 드레스와 테일러드 재킷은 서양 복식이 이룩한 아름다움을 전면 부정했다. 어느 패션 평론가가 ‘히로시마 쇼크’로 이름 붙인 이 충격적인 파리 데뷔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스트로이드 룩 destroyed look’이라 불리며 브랜드의 정체성이자 지향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레이 가와쿠보는 언론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村上春樹는 수필집 비밀에 싸인 양복 공장에서 꼼데가르송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여기서 레이 가와쿠보라고 하는 한 사람의 뛰어난 디자이너를 정점으로 똘똘 뭉친 꼼데가르송이라는 집합체의 ‘부드럽고 내추럴한 자폐성’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지만, 이러한 표현도 어쩌면 그들과 그녀들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겠다.”

    꼼데가르송의 옷은 특별한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최신 컬렉션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면서도, 복잡한 절개의 재킷이나 변치 않는 줄무늬와 물방울 무늬 polka dots에 관한 애정이 옷 속에 녹아 있다. 2000년대 들어 시작한 캐주얼 라인 꼼데가르송 플레이 PLAY COMME des GARÇONS는 더 많은 사람이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 한남동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매장 COMME des GARÇONS Seoul store 개점과 함께 진행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레이 가와쿠보는 플레이 라인을 아래처럼 설명한다.

    “‘플레이’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꼼데가르송 비즈니스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상품을 만들면서 매출을 달성해 가고 있다. 돋보이는 옷도 있고, 평상시에 입을 수 있는 쉬운 옷도 있고, 젊은이들이 입는 조금 특이한 옷도 있다. 전부 꼼데가르송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는, 하나의 꼼데가르송이다.”

© Six Magazine Vol. 1-8, published in 1989-1991. Images courtesy of Art and Smoke.

2017년의 추신.

    올해 가장 중요한 패션 전시 중 하나임이 분명한 레이 가와쿠보/꼼데가르송: 아트 오브 더 인 비트윈(중간 지대의 예술)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 Costume Institute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가 선정한 꼼데가르송과 그 설립자 레이 가와쿠보가 만든 컬렉션 중 약 150벌의 여성복 womenswear을 추려 선보이는 올 상반기 최대 패션 전시는 사실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패션계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인물의 회고전이자 헌정이다.

© Spring/Summer 1997 collection by COMME des GARÇONS. Photographed by Paolo Roversi for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2017.

    1981년 파리 패션계에 데뷔한 이래, ‘소년처럼’이라는, 이제는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다소 생뚱맞았던 브랜드 명칭을 붙인 이 전위적인 패션 하우스는 항상 패션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며 호사가들 사이에서 논란과 경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패션은 예술인가?’, ‘예술과 패션의 경계는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관습인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기준이 의복에도 이어지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 레이 가와쿠보에게 혹시라도 인터뷰 기회가 생겨 물으면, 그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단언할 것만 같다. 그가 꼼데가르송으로 평생을 도전한 패션은 결국 ‘관습을 향한 반대’, 즉 저항 정신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길거리 젊은이들에게서 보는 무표정하고 기괴한 의상의 원류 역시 대체로 레이 가와쿠보가 만든 우산 아래 있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게, 여전히 동시대 패션계와 유행을 이끄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경이롭다. 2017년 현재 꼼데가르송카녜 웨스트 Kanye West에이셉 라키 A$AP Rocky를 위시한 온갖 슈퍼스타 래퍼부터 다소 진지한 패션 키즈들, 초로의 유명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일정 부분 아이러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Spring/Summer 2018 for Maps magazine November 2017 issue. Model is Bong Keem, directed by Hong Sukwoo, photographed by Kang Inki.

    레이 가와쿠보는 알려졌다시피 브랜드 아래 자신의 창조와 영광을 독식하지 않는다. 그를 존경하는 무수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만큼 그 또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가능성에 꾸준한 관심과 지지를 보낸다. 고샤 루브친스키 Gosha Rubchinskiy꼼데가르송의 생산 시스템 지원을 받고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든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준야 와타나베 Junya Watanabe타오 쿠리하라 Tao Kurihara부터 가장 최근의 누아르 케이 니노미야 Noir Kei Ninomiya간류 Ganryu까지, 꼼데가르송 생태계 ecosystem 안에는 이미 그의 뒤를 이끌 수많은 인재가 포진해 있다. 꼼데가르송보다 매출이 높거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패션 하우스는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브랜드 설립자가 나이를 먹을수록 후진 양성에 이토록 적극적인 패션 하우스는 21세기인 지금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를 입으라 Wear Your Freedom’는 광고 캠페인 구호처럼, 이번 레이 가와쿠보 전시는 항상 그가 평생 몰두한 주제를 여성복 디자인에 집중하고 압축했다. ‘패션과 반 패션 Fashion/Anti-Fashion, 디자인과 비 디자인 Design/Not Design, 과거와 현재 Then/Now, 자아와 타인 Self/Other, 고급과 저급 High/Low, 의복과 비 의복 Clothes/Not Clothes’….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매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중세 시대 갑옷의 소재를 금속에서 면과 울 wool, 펠트 felt로 변형하여 만든 것만 같은 꽃무늬 드레스 시리즈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현재 판매 중인 옷이다. 물론 현대 기성복 관점의 실용성, 아름다움 혹은 대중적 기준을 담보하진 않는다. 하지만 꼼데가르송의 강력한 팬덤을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취향을 입는 거예요. 아니면 어떤 정신 같은 것들이죠.”

    영리한 상업 컬렉션 라인 플레이을 유지하고, 도버스트리트마켓 Dover Street Market으로 꼼데가르송이 아닌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며, 그 대척점에서 패션의 가장 사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무려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이어왔다. 물론 그 중심에 레이 가와쿠보가 있다. 꼼데가르송의 팬덤을 다소 전위적인 옷과 스타일을 향한 마니아들로만 부를 순 없다. 레이 가와쿠보는 말 그대로 서구 패션이 정의하고 수 세기 동안 유지한 아름다움을 재정립했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현대인의 기준을 아주 독자적으로 창조했다. 비단 성별이나 여성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특정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 그리고 자아를 향한 이야기일 것이다.

    2017년 5월 4일부터 9월 4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전시는 이미 막을 내렸지만, 전시 카탈로그이자 일반에 공개한 패션 서적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이 유산처럼 남았다. 최근 구찌 Gucci와 작업한 사진가이자 영화감독 아리 마르코플로스 Ari Marcopoulos와 동시대 최고의 패션 사진가 중 한 명인 크레이그 맥딘 Craig McDean, 패션계를 넘어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콜리어 쇼어 Collier Schorr 같은 사진가들이 레이 가와쿠보가 직접 고른 의상을 렌즈에 담아냈다.

    표지 속, 몽환적인 느낌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모델은 이탈리아 보그 VOGUE Italiy 등의 화보에서 친숙한 또 다른 전설적 사진가, 파울로 로베르시 Paolo Roversi가 맡았다. 이것만으로도 이 미화 50달러짜리 양장본 서적은 가치가 있다.

© The catalogue of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w. Cover photographed by Paolo Roversi,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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