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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무창 운동화들

Our Rubber Sole Sneakers.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The NAVY Magazine

    2009년 겨울, 도쿄 Tokyo에 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아오야마 青山·Aoyama를 걷다 들어간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다. 도쿄의 스니커즈 sneakers 문화를 집대성한 책이었는데, 서문 제목이 ‘스니커즈 문화는 죽었는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스니커즈. 어릴 적에는 운동화 혹은 농구화라고만 부르던 그것은 어느샌가 청년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새로 나온 스니커즈를 찾고, 용돈 모아 사던 기쁨은 어릴 적 패션의 커다란 부분이었다. 지금도 물론 다양한 신발을 산다. 하지만 스포츠 브랜드보다는 잘 만든 구두에 끌리고, 한정판 농구화보다는 달리기용 운동화를 산다. 스니커즈는 그 문화의 첫 번째 황금기였던 1990년대를 넘어선 하나의 거대한 청년문화 youth culture이자 정교한 산업으로 변모하였다.

© Nike, adidas Originals, and Dior Homme by Hedi Slimane’s sneakers. Photographed by The NAVY Magazine.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 온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압구정동에 살았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압구정동은 지금의 홍대와 가로수길을 섞은 느낌이었다. 아직 편집매장이란 단어보다 ‘멀티숍’이란 단어가 익숙한 시절이었다. 미국 브랜드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리복 Reebok아디다스 adidas뉴발란스 New Balance는 당시에도 존재했지만, 스니커즈 유행을 이끈 건 단연코 나이키 Nike의 힘이었다. 친구들처럼 수십만 원짜리 에어맥스 Air Max를 사진 못했다. 대신 ‘강남 촌놈’이던 필자에게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게 한 동력이 스니커즈였다.

    이대 앞, 강남구청 변두리에 있던 멀티숍과 나이키 매장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신발을 사고, 이태원 매장에선 드물게 들어온 풋스케이프 Air Footscape를 발견하곤 환호했다. 한때 에어목 Air Moc이라는 신발에 꽂혀서 서울 나이키 매장 수십 곳에 전화한 적도 있다. 결국, 재고 신발을 신당역 근처 매장에서 샀다. 훗날 신당동을 지나면서 그걸 사려고 휴대전화도 아닌 무선전화기로 열심히 다이얼을 누르던 기억에 혼자 피식 웃은 적도 있다.

    고백하면 진성 ‘스니커즈 키드 sneakers kid‘는 아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그저 또래 수준의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스니커즈에 충격받은 것은, 푸마 Puma질 샌더 Jil Sander, 그리고 아직 와이스리 Y-3가 생기기 전 아디다스와 요지 야마모토 Yohji Yamamoto의 만남이었다.

    동대문과 광장 시장 헌 옷더미 산책에서 막 벗어난 스무 살 무렵 ‘하이패션 high fashion’이란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폴 스미스 Paul Smith와 헬무트 랑Helmut Lang에서 마르탱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와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CONS까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무렵, 미스터 하이패션 MR. High Fashion이라는 일본 남성 패션지를 샀다. 이름만으로도 수려한 디자이너들의 옷 사이에 조금 생뚱맞은 조합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질 샌더와 푸마가 함께 스니커즈를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지금이야 ‘협업 collaboration’이라는 단어가 흔하지만, 그 무렵에는 정말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서울의 한 푸마 매장에서 질 샌더와 푸마가 만든 킹 King이란 모델을 보곤 ‘에이, 설마’했는데, 그 질 샌더가 이 질 샌더였구나 하고 얼마 지난 다음 알게 됐다. 그리곤 땅을 쳤다. 싸게 팔 때 살 걸, 하고.

    푸마와 질 샌더, 즉 거대한 스포츠 브랜드와 모드 mode 브랜드의 조합이라는 충격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다시 만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요지 야마모토의 서명을 새긴 아디다스 스니커즈들이었다. 당시 아디다스는 조금 딱딱한 느낌의 브랜드였다. 그러나 전위적 패션 대가 大家의 손길을 거친 아디다스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수려한 미모의 젊은 여성과 탐스러운 과실이 달린 열대 우림의 나무 한 그루를 섞은 느낌이었다. 이것은 내가 알던 스니커즈 문화에 없던 무엇이었다. 명동에 있던 편집매장 데얼스 There’s에서 실물로 그 둘의 합작 스니커즈를 처음 봤다.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서 이베이 eBay 경매로 그 당시 스니커즈를 하나 손에 넣었다. 사고 싶은 신발을 샀다는 마음 이상으로 기쁜 마음이었다.

    아오야마 서점에서 발견한 책의 질문은 아마도 스포츠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문화가 한풀 시들해졌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스니커즈 문화를 죽었다고 하지 않는다. 2009년에 막 이름을 알리던 고가 스니커즈 브랜드들이 여전히 잘 나가고, 유럽 패션 하우스들 또한 앞다투어 스니커즈를 전략 모델로 출시한다. 에어 조던 Air Jordan 시리즈를 앞세운 조던 브랜드 Jordan Brand는 침체기가 대체 언제였느냐고 묻는 것처럼 발매일 매장 앞 인산인해를 이룬다. 처음 이 독특한 청년 문화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기성 매체들도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 SNS가 우리 삶을 점령한 이래, 좀 더 어린 시절 우리와 친구들처럼 요즘도 또래 유명인의 신발을 추종하기도 한다(수많은 사례를 굳이 언급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새 기술은 더 발전했고,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발전한 첨단 기술을 장착한 신발을 신고 사람들은 거리를 누비고, 달리고, 어딘가에서 캠핑을 하고 밤의 뒷골목을 서성인다. 스니커즈 문화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성과 마니아 중심 문화를 넘어 여성과 패션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이제는 세계 패션 산업의 커다란 축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협업과 홍보 경쟁 속에 산다. 그리고 종종 예상치 못한 것들이 하나의 링 안에 격돌한다. 2000년대 초반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지만, 그때의 열정과 다른 형국으로 여전히 스니커즈는 존재한다. 사실 이제는 스니커즈도, 옷을 사들이는 것도 예전만큼 즐겁진 않다. 하지만 아직도 ‘협업’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신선하게 남은 이유는, 스무 살 언저리에 스포츠와 모드의 조합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리라. 더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시대라고 해도, 여태 보지 못한 스니커즈들이 아직 나오지 않은 곳으로 점점 이어질 것만 같다.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by Numéro Kore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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