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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글 9 — 제주도

The Night Article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은 온라인 잡지를 표방하지만, 사람이 만듭니다. 기사로 하는 이야기들과 다른, 밤과 새벽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글들은 대체로 다음날 아침에 보면 지워버리고 싶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밤 Night” 메뉴는 비정기적으로, 매일 밤 자정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 나타납니다. 낮과는 조금 다른 밤의 생각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2018년 3월 14일, 목요일 Thu, March 14, 2018

    봄비가 내린 제주는 종일 흐렸다. 해가 난 모습은 아주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이십 대 중후반 오래전 제주에 왔을 때는 일을 중간에 끊지 못하고 왔다. 쫓기는 기분이었고 실제로 퍽 우울하였다. 오늘도 맥북을 가져왔다. 어딘가 콕 찍어서 둘러보기도 하겠지만, 차를 빌리는 선택지는 없었다. 짧은 거리와 먼 거리를 향하는 버스를 번갈아 타며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는 일한다. 사진을 정리하고, 인터뷰와 다른 기사를 쓴다(하나는 내일까지).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한 바람에 아직도 저녁 아홉 시 반이라는 건 나쁘지 않다. 50mm 렌즈와 새로 산 전자식 뷰파인더 비조플렉스 Leica Visoflex Typ 020를 낀 카메라를 들고, 잠시 동네의 가보지 않은 쪽을 가보려고 한다.

    머무는 동네는 서귀포시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바다가 옆에 있지만, 지금이 여름이라도 해수욕과 관광객이 북적일만한 곳은 아니다. 요즘 제주의 화려한 면모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멀리서 커다란 크레인의 간척 사업이 보이고, 산책하는 어르신과 빨래 하는 아주머니와 공사 하는 인부들을 빼고 젊은 사람들은 마트 근처를 지나다 본 몇 명뿐이었다.

    구름을 뚫고 선명한 해가 갑자기 나타났다면, 여행의 극적인 면모였겠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회색 뿌연 하늘과 축축하게 젖은 땅, 이곳이 서울이 아니라고 대번 느낀 현무암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텅 빈 동네. 버릴까 잠시 고민한 일회용 비닐우산을 웨이스트백 옆에 걸고 다닌 건 현명했다. 뒤덮은 구름이 숨을 내쉬다가 들이켜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찬 비와 여우비가 번갈아 땅을 쳤다. 물안개가 깔린 먼 섬 풍경 앞,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꽃이 핀 서귀포시의 작은 그러나 넓은 동네를 그렇게 오후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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