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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VY Magazine x SFCS Article 02. Generation Next — MOON LEE

 

 

Text & Photography  Hong Sukwoo

© Collection and Campaign Photography Courtesy of MOON LEE ARTWEAR

    매년 3월과 10월이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는 화려한 옷을 입은 수많은 인파로 들썩인다. 익숙한 서울패션위크 Seoul Fashion Week의 풍경이다. 일반적으로 ‘패션위크’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두 차례씩 나누어 새로운 패션의 흐름을 보기 위해 온 기자와 에디터 등 매체 관계자부터 실제로 옷을 주문하거나 구매하기 위해 모인 세계 각지 구매자 buyer들이 다음 시즌을 논하는 성격을 띤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터전을 옮긴 후 서울패션위크의 모습은 조금 독특해졌다. 거대한 현대 건축물을 둘러싼 넓은 야외에는 스스로 가장 멋진 옷을 걸친 수많은 젊은이가 거리를 서성인다. 거리 패션 사진 street fashion photography을 찍는 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그들을 피사체로 렌즈를 겨누고 소셜 미디어 social media와 블로그에 이미지를 올린다. 다양한 패션과 뷰티, 라이프스타일 기업이 참여하는 행사와 설치 부스가 탁 트인 곳곳에 배치되고, 서울패션위크에 멘토 mentor와 평가 위원으로 참여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토크 세션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메인이벤트가 서울패션위크 안에 있다. 

    한국과 서울에 기반을 둔 기성 패션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서울 컬렉션 Seoul Collection’은 수 년부터 수십 년 동안 기반을 다진 패션 디자이너들이 이번 시즌을 위해 생각한 주제를 모델과 무대, 그리고 옷으로 선보인다. 젊은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서울패션위크만의 독특한 인큐베이팅 시스템, ‘제너레이션 넥스트 Generation Next’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서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이곳을 거쳐서 세계로 나아갔다. 규모의 축소라든지, 타이틀 스폰서의 부재 같은 명암 또한 존재하는 것이 지금 서울패션위크이지만, 명실상부하게 이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패션 축제가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서울패션위크는 최근 4년 간 세계 각지에서 훌륭한 편집매장과 백화점 등의 구매자와 전문가를 초대하고, 영국패션협회 British Fashion Council과 양해 각서 MOU를 체결하여 서울과 런던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각자 도시에서 교류 패션쇼를 열며, 다양한 나라에서 온 구매자들이 서울패션위크 기간 중 마련한 수주회와 쇼룸 showroom을 통하여 한국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구매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직 서울은 세계 패션의 중심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방문한 모두가 아주 역동적인 도시이며, 누구보다 발 빠르게 패션 유행을 따르는 이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서울의 패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동시대에 이곳에서 패션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이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자 중요한 기회가 된다. 

© Preparation of MOON LEE Autumn/Wint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Hong Sukwoo.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컬렉션 collection’과 ‘런웨이 runway’를 동경하며 자랐을 것이다.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매 시즌 ‘주제 theme’를 정하고, 옷으로 제작한 후, 모델을 선정하고, 무대 장치와 조명과 배경 음악을 각 분야의 전문가와 논의한 다음, 컬렉션에 초대할 고객과 관계자의 목록을 정리한다. 

    무수한 시제품 sample 제작과 수정, 모델 피팅, 리허설을 거치고 컬렉션 시각이 다가오면 관객이 순서대로 입장한다. 동시에 세상 어디보다 분주한 백스테이지 backstage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완벽하게 옷을 입은 모델들이 콜 사인 call sign을 기다리며 찰나의 긴장에 빠진다. 패션 사진가와 영상 작가 videographer들이 ‘무대 뒤’ 기록을 담느라 가장 분주한 것 또한 이때다. 잠시 암전이 지나고 컬렉션 음악이 공간을 울리면, 10분에서 15분가량 ‘패션쇼 fashion show’가 펼쳐진다. 

    긴장, 환희, 기쁨, 아쉬움, 벅찬 감동과 모든 두근거리는 감정의 소모 끝에 무대 위를 거닐던 모델들이 피날레 걸음을 마치고 백스테이지에 들어오면, 반년 가까이 준비한 컬렉션에 참석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하여 디자이너는 무대 뒤에서 무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짧은 인사를 마치면, 조명은 서서히 꺼지고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을 품고 다음 컬렉션으로, 혹은 다른 장소로 발길을 옮긴다. 

    아주 짧게 썼지만, 아주 긴 노력과 품, 지난한 과정과 공이 담긴 하나의 ‘종합 예술과 기술’이 바로 지금 시대의 패션쇼에 담겨 있다. 컬렉션을 동경하는 이들과 런웨이로 자신의 패션 브랜드의 철학과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모든 고급 기성복 high-end ready-to-wear 디자이너들이 이 무대에 서기를 열망한다. 컬렉션은 냉정한 비즈니스의 장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꿈의 무대가 된다. 패션이란 단어는 그 순간 가장 빛이 난다.

© Preparation of MOON LEE Autumn/Wint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Hong Sukwoo.

문 리 아트웨어 MOON LEE ART WEAR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Seoul Fashion Creative Studio·SFCS 15기로 입주한 디자이너 이인주 Lee Injoo는 2015년, 영국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 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학사 BA와 석사 MA 학위를 받은 후, 졸업 컬렉션에 이어서 바로 자신의 기성복 브랜드 ‘문 리 Moon Lee‘를 설립했다. 브랜드의 지향점은 공식 웹사이트 이름 ‘문 리 아트웨어 Moon Lee Artwear’에서부터 알 수 있다. 웹사이트 소개 글은 ‘문 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2015년 설립한 현대 여성복 레이블, 문 리는 전통적인 의상의 의미를 초월하고자 한다. 디자이너 이인주는 지금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에 관하여,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브랜드를 마주한다. 원단은 하나의 캔버스가 되며, 현대적인 패턴 재단 기술과 전통 한국 직물에 관한 그의 유산이 결합한다. Founded in 2015 contemporary Womenswear label Moon Lee seeks to transcend the traditional connotations of dress. Starting with art designer Injoo Lee uses the brand as a vehicle to express her own emotions and reaction to current affairs. Using cloth as her canvas she fuses with modern pattern cutting techniques and a nod to the traditional Korean textiles of her heritage.

    어떤 사람들은 패션으로 무언가 창조하는 사람들을 가끔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패션은 상업이고, 또 산업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무언가 창조하는 예술가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도 한다. 일부는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창작 creation’이란 항상 경계를 허물고 자신이 믿는 바를 꾸준히 실천하는 이에게 항상 관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이인주는 ‘문 리’를 통하여 예술과 패션, 전통과 현대, 동시대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만나길 바란다. 서로 대비하는 요소가 모여,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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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8일, 월요일 Monday, March 18, 2019

문 리 스튜디오 Moon Lee Studio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이인주는 이제 막 세 번째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을 앞두고 있었다. 아직 쌀쌀한 봄날이었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는 서울패션위크와 연계하여 제너레이션 넥스트에 참가할 디자이너를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서울패션위크의 정구호 총감독이 총괄하는 심사를 거쳐서 참여 브랜드를 선정한다. 문 리는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저녁 7시 15분,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의 유일한 제너레이션 넥스트 선정 브랜드이자, 그의 세 번째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이다.

    그는 두 곳의 사무실을 스튜디오로 쓴다. 컬렉션을 구상하고 집중할 때는 대부분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마련한 공간에 있다. 컬렉션 준비 과정을 무수하게 적고 붙인 무드 보드 mood board와 디자인 작업은 대부분 그곳에 놓여 있다. 내가 방문한 스튜디오는 장충체육관이 멀지 않게 보이는 어느 빌딩 2층이었다. 그는 이곳을 다른 디자이너와 함께 쓰는데, 컬렉션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것처럼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속으로 조금 놀랐다.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오래된 동네의 크고 작은 가정집이 눈에 들어오는 전망이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스튜디오 곳곳에 놓인 컬렉션 준비 흔적을 눈으로 따라갔다. 착장에 번호를 매긴 디자인 스케치가 넓은 벽 위에 몇 장의 A4 용지로 붙어 있다. 책상 위에는 무대를 둘러싼 좌석 번호, 배치를 그린 종이 뭉치와 초대장이 놓였다. 한 번의 컬렉션을 위하여 ‘옷’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부분을 디자이너가 신경 쓰고 정해야 하는지, 단번에 느꼈다. 

    친절하게 아이스 커피를 들고 온 이인주는 차분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이 스며든 여성이었다. 이메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처음 만난 자리였다. 고작 나흘(!) 앞으로 다가온 컬렉션을 앞두고,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쓰기 위하여 그가 일하는 공간을 따라다니다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겠다는 것이 나의 요지였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 창가 소파에 앉은 그는 브랜드의 출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15년 졸업 작품부터 지금까지 보이는 요소는 모두 한국적이에요. 특히 한복 Hanbok에서 나왔지요. 큰어머니부터 할머니의 할머니까지 대대로 집안이 전부 한복을 직업으로 삼으셨어요. 아버지는 조각가이시고요.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요소를 자연스럽게 보고 자랐어요.” 그는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될 마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원래는 MD merchandiser나 패션 구매자 fashion buyer가 꿈이었어요. 유학을 떠나서 패션을 공부하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에도 ‘한복을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일부러 마음 먹은 것은 아니에요. 그저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지요. 브랜드를 설립한 후 3년에서 4년 정도가 지나는 동안 ‘문 리’에서 보여준 일관적인 정체성은 뿌리부터 한국적인 요소가 묻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굳이 전면에 내세운 적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민화 Minhwa·民畵·Korean folk painting라는 주제를 잡았습니다. 민화의 먹 색깔과 나타난 그림들을 컬렉션에 표현하기로 했어요. 호랑이 tiger들이 하늘과 바다에서 헤엄치고, 날아다니는 모습 같은 것을 말이지요.어떻게 현재 패션 흐름 trend과 전통 이미지가 결합하는지,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사실 지금의 고요함은 폭풍 전야와 닮았다. 컬렉션을 앞두고,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스타일링 styling 작업이 아직 남았다고 했다. “옷을 실제로 보여주기 때문에 스타일링이 큰 비중을 차지해요. 런던에 있을 때는 함께 작업하던 스타일리스트와 사진가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처음 작업하는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협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착장을 완성할까 고민하고, 완성하는 과정이죠. 귀걸이와 모자 등의 액세서리를 함께 배치하고, 이번 시즌 협업한 구두 디자이너의 구두 종류를 어떤 모델에게 신게 할까, 의논하고 있어요. 컬렉션은 금요일인데, 신발은 수요일에 나와요. (웃음) 이러한 것을 모두 조율하는 작업이 남은 셈이죠.” 

© Preparation of MOON LEE Autumn/Wint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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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눈 대화는 5분 남짓이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그에게는 아직 결정하고 논의할 무수한 일이 있다. 무대 배치와 모델 동선, 리허설 시간 등을 분주하게 전화로 조율하는 디자이너를 두고, 작업실 한쪽 방에 걸린 아카이브 archive를 보았다. 수많은 옷걸이에 걸린 옷은 모두 이번 시즌을 위해 만든 것이다. 웬만한 옷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문 리는 서울패션위크보다 먼저 열린 파리패션위크 Paris Fashion Week 기간 중, 이미 쇼룸을 통하여 주문을 받는 수주회를 진행했다. 켜켜이 쌓인 옷가지 가장 앞에는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에서 선보일 옷이 차곡차곡 포개졌다. 그가 말한 전통 민화에서 따온 ‘호랑이’ 몇 마리가 검정과 하얀 스웨트셔츠 위에 고운 자수로 새겨져 있다. 능률은 높지만 천편일률적인 기계 자수가 아니라, 한땀 한땀 정성 들여 수놓은 한복 전문 자수 전문 장인들의 작품이다. 지난 여러 차례 컬렉션을 포함하여, 문 리의 옷과 장신구에 들어간 자수는 모두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 새로운 해석을 더한 창작의 결과다. 호랑이들의 모습이 기존 민화를 고스란히 답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호랑이가 하늘과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는 민화는 적어도 제가 아는 선에서 본 적은 없어요. 민화란 대대로 일반 백성이 사물을 그들의 언어로 쉽게 해석해서 풀어내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분들의 해석을 그대로 가져오면, 제 것은 아니잖아요. 민화는 효 孝·filial duty나 충 忠·fidelity 사상의 이야기를 풀어 넣은 것부터 일상에 관한 소재까지 아주 다양한게 존재합니다. 동시대의 패션 흐름과 개인적으로 요즘 관심 있는 것들, 기존에 관심 있는 민화 그림을 함께 생각하고, 하나로 합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호랑이도 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민화 중 하나였고요. 이야기를 재구성한 셈이죠. 하지만 표현 방법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미지를 보고 ‘어, 민화인 것 같은데?’라고 알 수 있도록 살렸습니다.”

    컬렉션에 나올 옷을 미리 보고, 구매자들에게 줄 라인시트 linesheet에 실린 룩북을 한 번 훑어본 후,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촬영하는 동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이인주의 전화도 쉴새없이 이어졌다. 실제로 문 리의 옷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실크가 아니라 비단으로 표현해야 옳은 원단부터 일상복에 쓰이는 면 소재까지, 다양한 옷감이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결합하여 조용한 스튜디오 한쪽에 걸려 있었다. 흰색과 검정, 회색으로 지은 꽃무늬 모노그램 원단 위에는 가죽을 펼친 듯한 호랑이 무늬가 섬세하게 새겨져 한 벌의 지퍼형 후드 파카 zip-up hood parka가 되었다. 

    그의 고객 중에는 30대와 40대 여성이 많다고 했다. 어쩐지 이번 시즌은 그보다 조금 더 어리고 젊은 고객을 위한 ‘장치’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옷걸이 안쪽에는 시제품을 만들기 위한 가봉 상태 옷감이 여러 벌 걸려 있었다. 연필부터 파란색 마카와 실핀과 실 부스러기, 바늘땀이 송송 들어간 몇 벌의 가봉 위에는 수정해야 할 부분을 꼼꼼하게 적은 메모가 고스란히 남았다. 호수 아래 백조의 헤엄을 모르는 이들에게, 거대한 컬렉션 무대를 설치하고 유명인사들이 앞자리에 앉는 컬렉션이란 그저 화려한 나날의 연속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처럼 매일 조금씩 하나의 컬렉션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자취가 한 걸음씩 쌓여 있는 것이다.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Monday, March 18, 2019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동대문 종합시장 Dongdaemun Design Plaza (ddp) Dongdaemun Shopping Complex and Shopping Town

    스튜디오에서 할 일을 마친 이인주는 내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ongdaemun Design Plaza’와 ‘동대문 종합시장 Dongdaemun Shopping Complex and Shopping Town’으로 가는데 동행하겠느냐고 물었다. 한걸음에 달려 도착한 무대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저기 먼지와 공사 자재가 돌아다녔다. 동선을 파악하는 쇼 디렉터는 바쁜 구상 중이었다. 이인주는 인사를 나눈 후 몇 가지 사항을 논의했다. 동대문 종합시장으로 걸어가면서, 그는 한복의 ‘수’를 업으로 삼은 선생님들과 작금의 한복 업계 현황에 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지금 한복 시장은 가히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침체되어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광화문이나 경복궁 등지에서 한복을 많이 입고 다니는 문화가 정착되어서, 개인적으로는 한복이 부흥기를 맞이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군요?”

    “지금 범람하는 한복은 전부 외국에서 저렴하게 생산한 제품이거든요. 실제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한복집과 브랜드들은 물론이고, 한복에 전통 방식으로 수를 놓은 장인 선생님들 역시 앞날이 막막해지셨어요. 그나마 브랜드들은 버틸 체력이 있다고 해도, 선생님들은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빌딩 청소처럼 궂은일로 생계를 꾸리는 분이 많이 계세요. 아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죠.”

    굳이 자수의 정의를 설명하면, ‘옷감이나 헝겊 등에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과 글자, 무늬 등을 수놓아 나타내는 일’을 뜻한다. 한복 위에 들어간 섬세한 자수는 고운 문양과 빛깔만큼 옷의 정체성과 가치를 상징하는 가늠자가 된다. 문 리의 컬렉션에 들어가는 모든 자수는 지금까지 이러한 자수 刺繡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대량 생산하는 자수와 달리, 이러한 수 작업은 손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다. 공임 또한 높다. 하지만 이인주는 단지 사람들이 입는 옷 위의 예쁜 모양 자체보다, 자신의 뿌리이자 브랜드 정체성 중 하나로 이어지는 전통 한복 유산을 동시대 기성복을 입은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란다.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절대 쉬운 과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장인의 자수 작업을 ‘문 리’에 녹이는 과정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모두 지닌 듯하였다. 역설적으로 지금 한복 업계 장인들의 실상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세게 부는 바람이 어쩐지 더욱 찼다. 

    동대문 종합시장에 갔다. 3월,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봄옷을 만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시기, 좁은 골목에 수백, 수천 개의 매장이 모인 시장은 사람들과 상인들로 가득 찼다. 무수한 부자재와 원단 사이를 뚫고 그는 한 원단 거래처로 향했다. 여기서 고른 원단으로 짧은 시간 안에 새 코트를 만들 것이다. “이미 파리에서 수주회를 마무리했잖아요. 종종 구매자의 의견을 듣게 됩니다. 이번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을 마치고, 한국에서 수주회를 진행한 다음에는 바로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가요. 거기서 다시 컬렉션 수주회를 열죠. 구매자들에게 ‘코트’가 추가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어요. 그들의 의견을 항상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만들기로 했습니다.” 서두른 발걸음은 다음 도착지를 향했다. 다양한 깃털 장식을 전시한 종합시장 한 동 가장자리 가게였다. 스타일리스트는 깃털 장식 장신구를 장식의 한 부분으로 넣고 싶다고 했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을 고려하여, 이인주는 기성 제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 위해 가게사장님과 수십 분간 의견을 나누었다. 며칠 안에 염색이나 가공이 가능한지,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면 이미 거래를 튼 염색 업체에 보내도 되는지 같은 이야기가 짧은 시간 안에 밀도 높게 이어졌다.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이미 노을을 머금었다. 나는 다음 일정으로 다시 사무실에 복귀해야 했다. 아직도 준비할 것이 많이 남은 디자이너와는 종합시장 한복판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쇼장에서 뵙겠습니다.” 분주한 걸음으로 그는 갈 길을 갔다.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Friday, March 22, 2019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 리허설 Reheasal of Moon Lee at Generation Next Stage, Dongdaemun Design Plaza (ddp)

    오후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전야제부터 이제 막 나흘째에 접어든 2019년도 가을/겨울 시즌 서울패션위크가 충분히 달아올라 있음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졌다. 원래 이곳을 찾은 인파와 패션위크를 방문한 사람들이 뒤섞여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막 이전 컬렉션을 마친 – 제너레이션 넥스트 무대를 설치한 – 가설 텐트는 광장 안에 커다랗게 자리 잡았다. 텅 빈 객석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지만, 주위를 둘러싼 모든 스태프가 분주하게 일하느라 정신이 없다.

    곧바로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이전 기억으로 제너레이션 넥스트의 백스테이지는 공간 제약이 컸다. 서울 컬렉션의 그곳보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문 리의 옷을 건 이동식 옷걸이가 들어서고, 모델과 스태프들이 자리를 채우면서 각자 품평이 이어졌다.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은데?” 누군가 말했다. 

    패션학과 학생들로 구성한 도우미 helper들이 하나둘 준비를 시작하고, 이인주가 지난 번과 같은 코트를 입고 백스테이지에 도착했다. 스태프 여럿이 보조를 맞추어 각자 할 일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완연한 봄이 오지 않은 무대 뒤는 조금 쌀쌀했다. 얇은 드레스에 외투를 입은 모델들은 가느다란 손목으로 움츠린 어깨를 감쌌다. 모델들이 옷을 전부 갈아 입은 후에는 드디어 ‘최종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걸음걸이 walking가 마음에 들지 않자, 노련한 쇼 디렉터는 음악과 조명을 중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이인주는 모델들에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걸어달라는 주문을 추가했다. 

    어떤 모델 한 명이 그와 인연이 있는 것일까? 모두가 다시 백스테이지로 걸어가는 사이, 디자이너에게 말을 건네고 대화를 나누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마지막 리허설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 남고, 컬렉션이 시작하면 사진가들이 들어설 무대 앞에는 영상을 기록하는 카메라 몇 대가 각자 위치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모델 동선이 가장 잘 보이는 중앙에 앉은 이인주는 쇼 디렉터와 함께 리허설의 이곳저곳을 조율하고 있다. 그는 종종 속삭였다. 종종 누군가와 크게 대화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잠시 미소를 띤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몇 번인가 모델들이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한 후에야 리허설은 종료되었다. 활기찬 기운과 분주함이 동시에 섞인 ‘공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긴장감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Friday, March 22, 2019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제너레이션 넥스트 ‘문 리’ 컬렉션 Moon Lee Collection at Generation Next Stage, Dongdaemun Design Plaza (ddp)

    “컬렉션 보셔야죠!” 훌쩍 한 시간 반이 지나고 저녁 일곱 시가 넘은 시각, 서둘러 다시 ‘문 리’ 컬렉션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이인주는 말을 걸 틈이 없을 정도로 바빠 보였다. 옷을 갈아입던 간이 탈의 공간에는 텅 빈 옷걸이와 모델들이 입고 온 외투며 상의 같은 것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막바지 단계에 도달했다. 고운 자수가 들어간 모자를 쓴 소녀 같은 모델이 연신 머리카락을 만졌다.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무대 위에 서기 전, 번갈아 모델 사이를 누비며 조금씩 마지막 수정을 보탰다. 리허설 때 조금 춥게 느껴지던 무대 뒤는 가득 찬 사람들의 인열 人熱로 달궈졌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뒤에 있다가, 걸음을 옮겨 제너레이션 넥스트 텐트 바깥을 한 바퀴 돌았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구경 인파가 둥글게 텐트 주위 행렬을 이뤘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졌다. 컬렉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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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컬렉션을 본 후, ‘문 리’ 컬렉션 리뷰를 서울패션위크 <데일리 뉴스 Daily News>에 남겼다.

    ‘문 리’라는 이름에 ‘아트웨어 Artwear’라는 부제를 함께 쓰는 디자이너 이인주는 그 짧은 설명처럼, 예술이 깃든 옷을 짓는다. 처음 브랜드를 선보인 2015년 가을/겨울 시즌 이래, 수년이 지나는 동안 문 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가지였다. 디자이너가 원하는 실루엣과 디테일의 기성복을 가능한 한 그대로, 소비자와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컬렉션을 앞두고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기, 아직 작은 규모의 패션 하우스를 이끄는 디자이너는 홀로 챙길 수많은 준비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이미 그는 파리에서 판매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자 buyer들의 몇 가지 조언을 옮겨 런웨이 컬렉션을 위한 몇 가지 새 아이템을 준비했다. 터틀넥 니트 스웨터와 주름치마를 간결하게 한 벌로 짓고, 매끈한 와인색과 회색의 두 가지 가죽이 들어간 테일러드 가죽 코트를 어떤 옷에도 어울릴 만한 긴 가죽 부츠와 함께 스타일링하는 식이다.

    “민화”. 이인주는 2019년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 주제를 이 전통적이며 대중적인 실용 회화로 잡았다. 대중이 그려서 대중의 삶과 해학이 함께 녹아든 한국 민속 회화 요소들은 컬렉션 곳곳에 중요한 장치로 쓰였다. 상상 속 호랑이들이 하늘을 날고, 물가 위를 뛰어노는 자수 그림 스웨트셔츠를 보자. 우리는 어디선가 저 호랑이들을 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민화는 과거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상상한 오래된 과거들은 현대적인 실루엣의 디자인과 결합하여 박물관이 아닌 사람들의 옷과 일상에 파고든다. 마지막으로 몇몇 모델이 쓰고 나온 변형한 머리 장신구를 한 번 더 유심히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한복에 들어가는 모든 전통 방식 기법은 문 리의 컬렉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어머니도, 할머니와 할머니의 어머니께서도 한복을 지었다. 문 리의 컬렉션에 전통 한복의 요소가 녹아든 것은 ‘강제’도 ‘억지’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장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놓은 ‘자수’는 이제 과거 영광의 시절만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문 리처럼, 동시대의 감각과 전통의 요소가 세심하게 녹아든 컬렉션을 통하여 우리는 현재와 과거가 결합한 미래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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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주는 상하기로 떠나기 전, 내게 이메일을 남겼다. 짧은 시간 안에 브랜드를 이해하고 리뷰를 써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원래는 ‘컬렉션을 마친 후’ 소감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일정이 조금씩 눈에 그려지고 나니 – 상하이에서 수주회를 마친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라인시트를 정리하고, 새 시즌을 위한 생산과 준비 과정을 마무리한 후, 아마도 조금 휴식을 취할 것이다 – 굳이 그 ‘후일담’을 펼치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컬렉션을 보고 취재했지만, 사진과 기록으로 이토록 긴 문장의 기사를 쓴 적은 처음이다. 취재한 며칠을 복기하고 활자로 옮기면서, 리뷰에 썼던 마지막 문장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 리는 현재와 과거를 결합하여, 동시대 옷을 짓는다. 그것은 반 년 정도 앞선 실체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컬렉션’이자 ‘런웨이’의 정의가 된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무대’ 위에서 컬렉션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패션 디자이너에게는 거대한 반복이자 숙명 같은 일이다. 

    5년 후, 10년 후, 그리고 더 긴 시간이 지난 후 ‘문 리’가 런웨이와 다양한 협업 사이에 존재하기를 바란다.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과정을 거쳐,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컬렉션 과정을 담은 시간이 되었다. 내가 느낀 감정들이 글과 사진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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