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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VY Magazine x SFCS Article 05. Pop Up Sale

 

Text & Photography  Hong Sukwoo

목차 INDEX

소개 Introduction

대화 Talks 팝업 세일에서 만난 디자이너들

르이엘, 이혜연 Lee Hyeyeon, Le yiel

스톨른 가먼트, 박정우 Park Jungwoo, The Stolen Garment

영오, 서영호 Suh Youngho, 00000

포저, 곽준서 Kwak Junseo Poszer

에취, 최지훈 Choi Jihoon, Etch

소개 Introduction

    매년 여름과 겨울 시즌이 끝날 즈음이 되면,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은 분주해진다. 시즌 성수기와 비수기가 맞물린 시점, 한 계절을 마무리하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Seoul Fashion Creative Studio·SFCS가 1년에 두 번 개최하는 ‘팝업 세일 Pop-up Sale’도 이맘때 열린다. 작년에 이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살림터 4층, 히노스레시피 Hino’s Recipe가 공간을 내주었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상반기 시즌 오프 팝업 세일 SFCS 19 S/S Season Off Pop-up Sale’이 정식 명칭인 이 팝업 세일은 2019년 상반기로 4년째를 맞이했다. 꼭 지금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디자이너들이 아니어도, 과거 이곳을 거친 패션 브랜드라면 어디든지 참여할 수 있다. 지금 서울에서 패션을 만드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옷과 장신구를 마음껏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 서울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서울패션위크 Seoul Fashion Week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거점을 옮긴 이래 선보인 다양한 패션 프로그램 중 유독 일반 고객 참여 비중이 높은 행사이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팝업 세일은 지난 6월 26일 목요일 저녁의 오프닝 파티를 포함하여 6월 30일 일요일까지, 총 나흘에 걸쳐 열렸다. 국내외 방문객 유동인구가 유독 높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내부를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우연히 들어온 이들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신진 패션 디자이너의 최신 컬렉션과 한 장씩 준비한 시제품 sample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려는 팬들까지, 다양한 이들의 발길이 이곳에 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으로 차려 입은 날렵한 실루엣의 젊은 남성부터 우아한 리넨 소재 재킷을 걸친 나이 지긋한 여성까지,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들이 팝업 세일에 방문했다. 

    여성복과 남성복은 물론 유니섹스 의류와 스트리트웨어, 주얼리와 구두 등 장신구 브랜드까지 종류 또한 풍성했다. 서울패션위크 런웨이 무대에 컬렉션을 올리는 이성동 디자이너의 얼킨 Ul:kin부터 신진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지원 프로그램 ‘제너레이션 넥스트 Generation Next’와 트레이드 쇼 ‘제너레이션 넥스트_서울 GN_S’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인주 디자이너의 문리 Moon Lee와 박정우의 더 스톨른 가먼트 The Stolen Garment, 박은우와 박근우의 누팍 Nu Parcc, 이성훈의 스튜디오 성 Studio Seong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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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yiel Spring/Summ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Le Yiel.

대화 Talks 팝업 세일에서 만난 디자이너들

르이엘, 이혜연 Lee Hyeyeon, Le yiel

    르이엘 Le yiel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7년,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 무대였다. 처음 본 컬렉션은 공교롭게도 그의 데뷔 시즌이었다. 온갖 스트리트웨어가 득세하던 시절, 청초하고 간결하게 더한 소재와 실루엣의 조화가 유행을 좇기에 급급한 여느 패션 브랜드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르이엘은 ‘공존’이라는 콘셉트로 컬렉션을 만든다. 이혜연 Lee Hyeyeon은 자기 고집이 느껴지는 디자이너이지만, 고운 감색의 테일러드 재킷부터 뚝 떨어지는 실루엣의 청바지까지, 처음 컬렉션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다양한 옷을 선보이고 있었다. 

    비대칭과 중첩의 느낌을 살리는 디자인을 풀어내는 편이에요. 선과 면을 중심에 두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여성복 브랜드입니다.” 

    그는 이미 서울창작스튜디오를 졸업하고 이제 다른 공간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에 두 번씩, 6개월마다 팝업 세일에 참여한다. “작년 12월에도 참여했어요. 디자이너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는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된 온라인 유통 규칙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옷은 직접 만져 보고, 입어 보고, 옷매무새를 이곳저곳 살핀 후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온라인 유통은 어디서든 쉽게 옷을 주문하고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팝업 세일은 아직 오프라인 매장 전개를 하기 어려운 작은 패션 브랜드의 고객이 직접 옷을 입어보고, 구매할 수 있는 장소라는 장점이 있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팝업 세일은 (일반적인 팝업 행사와 달리)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아요. 다양한 고객이 오는 만큼 특정 브랜드를 모르고 오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 분들도 오셨다가 입어보신 , 마음에 들면 바로 구매하세요. 그렇게 인지도가 올라가면, 실질적으로 판매가 되고 다음 구매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이혜연은 처음 브랜드를 시작한 이래, 2017년도 여름 시즌 오프 팝업 세일에 처음 참가했다. 그때 방문한 중국 고객 중 한 명은 지금도 쇼룸에 와서 옷을 구매하는 단골이 되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죠.” 

    보통 팝업 세일이 열리는 기간은 패션 주기상 시즌 오프 기간과 겹친다. 6월 말에 열린 이번 팝업 세일에는 주로 2019년도 봄/여름 제품이 할인 가격으로 걸려 있었다.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은 시제품 sample 역시 함께 파는데, 단 한 벌밖에 없기 때문에 보통 매장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기회이다. 팝업 세일과는 별개로 이혜연은 요즘은 2019년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 제품 생산으로 분주하다. “수주회도 있고, 2020년도 봄/여름 시즌 준비도 해야 하죠. 머릿속에 계산한 진도보다 조금씩 늦어질 때도 있지만, 항상 서두르려고 하죠.”

    르이엘은 이제 2년을 넘어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시작과 거의 동시에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후 이제는 졸업했기 때문에 브랜드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브랜드가 되지 않도록 말이죠. 무엇보다도 ‘옷’을 계속 만들고 싶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더라도 말이죠. 함께 작업하는 직원도 늘어나면 좋겠어요.”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가지런히 걸려 있는 옷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새 컬렉션 또한 궁금해졌다. 그는 혼자서 컬렉션의 디자인과 생산 관리를 도맡고 있지만, 옷걸이에는 꽤 풍부한 스타일이 걸려 있었다. 

    아직 상품 계획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도 있어요. look 먼저 그리고 디자인을 완성한 다음 컬렉션을 만들고 있거든요. 이번 가을에는 지금껏 풀어낸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쉽게 입을 있는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일환으로 이번 /여름 시즌에는 처음 티셔츠와 데님 제품을 만들었죠. 다가오는 시즌에는 니트 스웨터 아이템을 처음 선보일 예정이고요.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설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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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tolen Garment Spring/Summ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The Stolen Garment.

스톨른 가먼트, 박정우 Park Jungwoo, The Stolen Garment

    스톨른 가먼트 The Stolen Garment를 의역하면 ‘도난당한 옷’이라는 뜻이다. 박정우 Park Jungwoo가 브랜드를 시작한 계기는 누군가 훔쳐 간 옷 대신 받은 보험금이었다. 

    “영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열두 명의 작품을 다시 선정하여 전시를 열었어요. 전시 이튿날 컬렉션이 전부 도난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죠. 옷을 찾으려고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는데, 어떤 노숙자 같은 분이 그 옷을 입고 다닌다는 제보를 여럿에게 받았어요.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뮤지엄 앞쪽에 출몰하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받은 사진은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사실 박정우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서울에 돌아오면, 바로 패션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건 보험금 – London Police Crime #65497381/17 – 으로 그는 ‘서바이벌패션K Survival Fashion K’에 참여했다. 이는 곧 프로젝트 형식으로 만드는 브랜드의 시발점이 되었다. 너무 억울한 거예요. 벌밖에 없는 옷이니까요. 조금씩 옷을 만들다보니 브랜드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랜드를 만들면, 여러 벌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 조금억울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번 팝업 세일에는 이번 시즌 컬렉션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이 섞여 있다. 그 모든 옷에는 더 스톨른 가먼트의 이야기가 있고, 디자이너의 애착이 담겨 있다. “반소매 티셔츠는 이번 팝업 매장을 위해서 일부러 만들었어요. 판매하지 못할 듯한 시제품과 예전 졸업 작품도 몇 벌 걸려 있고요.” 인터뷰를 위하여 옷걸이 뒤 의자에 앉았을 때, 그가 만든 가방 아래 옷 두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판매 상품으로 걸려 있던 옷이라면서, 걸어 두었던 졸업 작품 중 크롭탑 시리즈라고 했다. “막상 팔리니까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요.” 상품 이전에 하나의 작업으로 옷을 대하는 디자이너의 태도가 느껴졌다.

    더 스톨른 가먼트의 ‘시작’을 복기하면, 마치 행위예술가의 퍼포먼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난당한 작품의 보험금으로 옷을 만들어 선보이기 시작했다니, 흔한 이야기는 아니다. 머릿속 개념을 끄집어내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 물성을 지닌 – 옷과 장신구로 컬렉션을 만드는 방식은 ‘창작’ 측면에서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와 조금 다른 노선이기 때문이다. “2019년도 /여름 컬렉션은 직접 써서, 시에서 영감 얻은 이야기를 진행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데님 denim 모피 fur 소재를 섞어 쓰는 작업이었어요. 처음으로 조금, 기존 방식과 다르게 작업했어요. 사람들이 조금 쉽게 다가갈 있는 방식으로 생각했는데, 혼자 쉽게 느껴졌는지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어렵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 어렵게 가려고 해요.” 변칙처럼 벨트 위에 넣은 무수한 주황색 실선과 실크 스크린의 즉흥성을 담은 검정 후드 파카 위의 프린트는 더 스톨른 가먼트의 재치이자 정신이다. 예상과 기대를 보기 좋게 빗나간 대답처럼 말이다. 

    홀로 세계관을 표현해내는 예술가 타입의 디자이너에게, 최종적으로 옷을 만나는 소비자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팝업 세일은 도움이 될까? 번째 (팝업 판매) 경험은 3 , 을지로의호텔 수선화에서 행사였어요.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직접 판매한 경험이었고요. 소비자들을 직접 보니까, 기분이 묘했어요. 돈을 주고, 제가 만든 가치를 구매한다는 자체가 말이에요.” ‘팝업’ 경험은 친구나 지인에게 옷을 주거나 팔 때와 달리, 조금 감동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번 팝업 세일에 참여한 계기도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어요. (옷이)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죠. (제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다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좋다는 의견은 받아들이고 말이죠. (웃음)” 그럴 때 그는 조금 멀리서 떨어져서 보고, 귀만 열고 듣다가, 가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어떤 분이 여기 있는 스커트를 보면서, ’이건 누가 입어? 어디에 입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얘기를 들으니, (사람들이) 못 입을 옷은 아예 조금 더 나가야겠구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2020년도 봄/여름 시즌은 이제 막 조금씩 시제품이 나오는 중이다. 이번에는 ‘꽃’에 관한 프로젝트이다. 주변에 친한 플로리스트와 꽃집 아들 그리고 꽃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총 세 명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재미있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옷을 짓고, 디테일을 변경하거나 추가하는 식이다. 피사체이자 이미지로서의 꽃을 그저 옷의 도안이나 무늬로 표현한 게 아니라, 꽃을 싫어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옷의 일부가 되어 들어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 스톨른 가먼트의 옷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 박정우의 손길을 거친다. 어제 판매한 벌은 졸업 작품의 크롭탑 시리즈 하나였어요. 판매하고 나니까 조금 우울해지더라고요.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 말썽이 많았던 아이템을 누군가 사가시면, 아무래도 기억에 남죠. 디자인한 아이디어를특히 공장에서 만들기 어렵다고 것을완성할 때도 뭉클한 기분이 드는데요. 판매하고 나면, 묘한 기분이네요.”

    박정우는 ‘꾸준히 해나가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멈추지 않는 것.” 지금의 더 스톨른 가먼트가 내놓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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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00 Spring/Summ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00000.

영오, 서영호 Suh Youngho, 00000

    학교 다닐 때부터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향한 동경이 있었어요. 졸업 작품을 만들 , 실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워보고 싶었어요. 고태용 디자이너의 비욘드클로젯 Beyond Closet 지원했습니다. 면접 때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5 정도 일한 다음, 실장님께서 이제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서 영오 00000 만들었습니다. 2017 퇴사 1 정도 준비한 다음, 같은 12월에 2018년도 /여름 컬렉션으로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지원하며,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옷이나 브랜드를 자세하게 알지 못해도, 종종 우연히 본 ‘하나’가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이번 팝업 세일 첫날, 오프닝 파티에서 본 영오 00000 그래픽 티셔츠가 그랬다(지금도 단순하게 파란 숫자 ‘0’ 다섯 개가 늘어선 하얀 반소매 티셔츠가 아른거린다). ‘영오’라는 이름은 한국 사람들이 읽기 쉽게, ‘영 0’이 다섯 개라는 언어유희와 그의 이름 서영호 Suh Youngho의 별명을 합쳤다. 다섯 개의 영 – ‘00000’ – 이  티셔츠 위에 자수와 프린트로 놓이니 신선한 조형미와 균형이 느껴졌다. 영오의 컬렉션에는 남성 맞춤복에 기반을 둔 점잖고 화려한 의복과 좀 더 활동적인 스포츠웨어 분위기가 함께 녹아 있다. 이제 갓 시작한 디자이너가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기술적인 꼼꼼함도 눈에 띈다. 일당백으로 일하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아래서, 실무를 겪은 느낌이 야무지게 묻어난다.

    쇼룸이 없으니까 직접 옷을 보여줄 기회가 아무래도 부족하죠. 2018년도 /여름 시즌 제품을 비롯한 지난 시즌 아이템은 샘플 세일 sample sale 개념으로 놔두었어요. 2019년도 /여름 시즌은 제품으로 생산한 옷을 걸어두었고요. 판매도 중요하지만, 오프라인 공간에서 지금까지 만든 컬렉션을 한데 모아서 보여주는 의의를 두고 참여했습니다.” 

    팝업 세일에는 지인과 친구부터 불특정 다수의 손님이 오가는 만큼, 오프라인에서 보여주는 기회가 아직 적은 신진 디자이너에게 일종의 연구 조사 기회도 마련해준다. 어떤 취향의 사람들이 영오의 옷을 좋아하는지 아직 정확한 판단은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이런 분들이 옷에 관심 보이고, 입어보고, 관심 두는구나알아보는 계기가 돼요. 이곳을 찾은 외국 손님들도 구매하시고요. 생각보다 여성분들의 문의도 많았어요.” 실제로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는 어느 때보다 흐릿해지고 있다. 서영호가 입은 티셔츠 역시, 목선에 주름을 잡고 불규칙한 곡선을 강조한 디자인이었다. 

    서영호는 영오에 관한 대부분을 혼자 진행한다. 직접 가봉을 본 후, 봉제와 패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한 벌의 옷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오의 컬렉션은 그가 요즘 관심 있는 것들에 관한 모음이다. 예를 들면, 2019년도 봄/여름 시즌을 만들 때 서영호는 권투를 배우고 있었다. 과거 여성들이 권투를 처음 접한 시절의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권투’하면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느낌이 들죠. 여기에 좀 더 테일러링 요소를 접목하고, 대상을 향한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반대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서 그는 여러 시도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원래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면 미리 시즌을 기획하고, 도매 wholesale로 사입하는 쇼룸 비즈니스 일정을 맞춰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지도가 아직 높지 않은 브랜드로서, 그리고 홀세일 비즈니스가 정착하기 어려운 대한민국 패션 환경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했다. 그래서 이번 가을/겨울 시즌부터 한국 계절 흐름과 동일하게 재정비할 예정이다. 다가올 시즌의 주제는 밀리터리 military와 에스닉 ethnic의 조화라고 했다. 아트피스 art piece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손맛이 들어간 옷과 편안하게 접근할 있는 옷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래 주문 제작과 홀세일 비즈니스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지 제품을 생산하여 영오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매장들에 연락해볼 생각입니다.”

    그와 나눈 대화에서 ‘브랜드’란 곧 영호, 아니 영오가 편애하는 것을 취합하고 다듬는 과정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얻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의) 윗 기수 디자이너들과는 ‘물망초’라는 축구팀도 만들었어요. 지난 주에는 축구 엠티로 양평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습니다.” 구성원들의 출석률이 100%라면서 축구 이야기를 꺼낼 때, 아직 풋풋한 인상의 디자이너는 마치 소년처럼 말을 이었다. 직접 경험하고 관심 있는 것을 고민하고 옷으로 만드는 서영호는 응원차 놀러 온 축구팀 ‘구단주’ 선배 디자이너와 인사를 나누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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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zer Spring/Summ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Poszer.

포저, 곽준서 Kwak Junseo, Poszer

    2018년 3월, 유니섹스 패션 브랜드 포저 Poszer를 만든 곽준서 Kwak Junseo 디자이너는 인생의 3년 반을 런던에서 보냈다. 런던컬리지오브패션 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졸업 작품을 준비하며 떠올린 주제는 도시와 나라 전반에 깔린 ‘계급 class’ 사회 이야기였다. 노동 계급과 중산층, 상류층과 왕족으로 나뉘는 영국의 서로 다른 계급이 표출하는 모방 욕구가 재미있다고 했다. 그 속에 있는 어설픈 미숙함을 옷으로 표현해서 졸업 작품을 만든 이래, 포저는 계급이라는 커다란 큰 주제에서 뻗어 나온 줄기를 매 시즌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 시즌은감옥 prison에서 영감받았습니다. 영국에 있을 조사를 많이 해두었거든요. 죄수와 간수, 성직자처럼 안에도 계급이 나뉘는데, 그들의 유니폼에서 출발한 컬렉션입니다.” 포저는 시즌마다 상업적인 옷과 개념적 conceptualistic 옷을 섞는다. 비율로 치면 6대 4 정도이다. 곽준서는 좀 더 실험적인 옷을 ‘아트 오브제’로 두고, 반대로 실제 판매하기 좋은 아이템을 함께 전개한다. 이번 팝업 세일에는 대중이 소화하기 조금 어려운 옷들은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포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어 보여준 룩북에서, 오버사이즈 재킷과 입체 재단을 십분 활용한 여성용 원피스를 가리키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편집매장과 미팅할 , 사실 (스타일이) 너무 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하지만 벌씩 보면 상업적인 옷도 동시에 있어요. 브랜드 콘셉트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지금의 균형을 맞춰서 꾸준히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이제 막 브랜드를 시작한 디자이너들이 보여주는 도전과 패기를 접할 때 나는 이 직업의 즐거움을 생각한다. 좋은 창조는 종종 모두가 좋아하는 것의 반대편에서 나오고는 했다.

    브랜드로서 ‘포저’는 유니섹스 레이블를 표방하지만, 실제 구매자 중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너무 어린 여성보다는 20대 중반에서 30대까지, 좀 더 여성성을 가미한 옷을 선호하는 이들의 선택을 받는다. 남성 잡지에 협찬한 옷이 나온 화보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여성이 구매한 적도 있다. 그는 이번 팝업 세일이 세 번째 오프라인 판매 경험이라면서, 서울창작스튜디오 팝업 세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디자이너로서 오프라인에서 고객을 만나는 것은 역시 새롭다. 

    예상과 달리 티셔츠보다 셔츠와 바지가  많이 판매되었네요. 이번 팝업 세일에서 판매한 옷의 비중을 보니, 웹에 공개한 룩북에서 보여주지 못한 많다는 생각도 들어요. 디테일이나 옷이 많이 묻혀 보인다는 말도 듣고, 실제로 보면 괜찮다는 반응도 들었어요. 오프라인에서 팝업 매장을 열며 듣는 의견은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아직 팝업 매장 판매를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요. 브랜드와 맞는 팝업 행사에 참여할 , 판매 자체만큼 좋은 피드백을 받거나, 구매자들의 실제 연령층을 파악할 수도 있는 부분도 장점입니다.”

    포저는 남성복과 여성복을 나누어 전개하는 유니섹스 브랜드는 아니다. 대신 하나의 옷 안에 다른 성별을 하나로 녹여낸다. 그래서 디자인할 때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생각하며 더욱 신경 쓰게 된다. 가령 티셔츠처럼 입기 쉬운 옷에는 과한 디테일을 조금 줄인다. 반대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입을 수 있는 재킷을 만들기 위하여, 가봉과 시제품 제작만 대여섯 번을 거칠 때도 있다.남성복 패턴과 실루엣에 기반을 두고, 여성 모델이 입는 룩북 작업도 가을/겨울 시즌에 고려하고 있습니다. 8 즈음 촬영할 예정인데, 이번 시즌은 콘셉트가 없는 것이 콘셉트라고 있겠네요. 티셔츠 다섯 종류, 셔츠 , 스웨트셔츠와 두세 가지 외투, 니트 스웨터와 바지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저의 첫 번째 목표는 좀 더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브랜드가 조금 더 안정되면 – 아직 런웨이 컬렉션은 아니더라도 – 오프라인 공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 계획도 이야기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의 옷을 입은 여성들을 떠올렸다. 어쩐지 포저의 옷을 입은 여성들은 남성복을 입는 데도 거리낌이 없을 것만 같다. 프레젠테이션을 열면, 꼭 초대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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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ch Spring/Summer 2019 Collection. Image courtesy of Etch.

에취, 최지훈 Choi Jihoon, Etch

    에취 Etch의 옷을 표현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단어는 ‘중성 neutral’이다. 디자이너 최지훈 Choi Jihoon은 여성복을 만들지만, 몸에 달라붙는 전형적인 실루엣 대신 인체 곡선을 가리는 직선의 표현을 선호한다. 밑단을 날카롭게 자른 연한 민트색의 통 넓은 바지와 허리를 조이는 대신 옷깃을 비대칭으로 재단한 푸른색 줄무늬 셔츠를 입은 여성은 거대한 현대 건축물 사이를 오가는 미지의 인물일 것만 같다. 2019년도 봄/여름 시즌, 에취가 영감으로 삼은 벨기에 출신 사진가, 프레드릭 버르크루이스 Frederik Vercruysse의 작업처럼,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나 지나치기 쉬운 순간을 옷 안에 담아낸다. 

    “‘etch’라는 단어에는 마음에 아로새기다, 혹은 어떠한 감정을 역력히 드러낸다는 뜻이 있어요. 에취의 옷으로 좀 더 많은 이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2017년도 봄/여름 시즌 데뷔 이래, 에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색채 color’ 그 자체에 있다. 보통 영감을 받는다고 표현할 , 그것이 마음속 무언가를 움직이고, 자기 안에 스며들면서 파동을 일으키잖아요. 항상 영감을 주는 가지는이에요. 시즌 다른 주제를 정해도, 항상 각기 다른색의 흐름 color flow 염두에 두고 있죠. 사람들이 에취를 인식할 , 각각의 디자인이나 아이템뿐만 아니라 색으로 받아들이고, 보였으면 합니다.” 

    최지훈은 아직 에취가 특정한 아이템이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는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2년여 간 에취의 컬렉션을 보면, 디자이너가 편애하는 몇 가지 아이템이 확연히 눈에 드러난다. 편안한 차림의 청바지와 어울리는 과장한 퍼프 소매 상의, 깊은 V넥 목선을 강조한 셔츠, 그리고 남자도 입을 정도로 커다란 황갈색 가죽 재킷처럼 말이다. 만인의 옷장에 놓인 기본 아이템에서 요즘은 꽤 멀어진 ‘셔츠’는 에취가 가장 즐겨 선보이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 2019년도 봄/여름 시즌의 아름다운 베이지색 줄무늬 롱 셔츠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에취는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팝업 세일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오프라인 팝업 매장에 참여했다. 최지훈은 이곳에 오는 이들이 생각보다 꽤 다양하다고 했다. “특정한 연령이나 선호하는 스타일의 고객들이 방문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옷을 직접 보고 사려는 분들과 이곳을 지나다가 방문하는 분들, 그리고 외국 관광객들도 있네요. 2019년도 봄/여름 컬렉션은 지난 가을/겨울 시즌의 연장선에서 진행했어요. 채도를 낮춘 파스텔 색상의 파우더 블루를 좀 더 가볍게 푸는 식이죠.” 에취의 옷은 ‘큰 치수 oversized’의 실루엣을 편애하는 디자이너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남성복에서 오는 패턴이나 line 자주 써요. 곡선적이고 일반적인 여성미를 드러내는 옷은 반대로 별로 없죠. 종종 크고 마른 사람들만 어울린다는 얘기도 들어서, 점차적으로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입을 있는 옷을 만들려고 해요.”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이래 에취는 능동적으로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런웨이 컬렉션도 여러 차례 선보였다. 하지만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으레 그렇듯이 브랜드를 알리는 일과 너무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업 예술이니까요. 판매를 비롯하여 지속해서 이끌어 나갈 있는 부분을 놓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어디에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독특한 옷들로 마니아층이 생길 있지 않을까요. 물론 쉽지는 않죠. 정체성을 잃지 않고, 버티면서 열심히 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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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공간 제공과 온라인 홍보 등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의 다양한 지원 사업 중, 디자이너들이 항상 목말라 하는 고객을 향한 직접 ‘홍보’와 ‘판매’, 그리고 ‘재고’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팝업 세일은 의미가 있다. 특히 소규모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대부분은 이번 행사에서 직접 판매에 참여하여 손님을 맞이했다. 실제로 며칠 팝업 세일 현장을 방문하여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예상했던 인력 절감 차원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성심성의껏 만든 옷을 매개체로 고객과 직접 만나고,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컬렉션을 만드는 데 반영한다고 했다. 

    팝업 세일에 참여한 스물네 개의 브랜드 중 다섯 개의 브랜드 디자이너와 만난 대화를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 한산할 거로 지레짐작한 6월 30일 일요일, 팝업 세일 마지막 날 오후에도 끊이지 않고 방문객이 드나들었다. 문득 방송으로 유명한 어느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쓴 책의 제목인 ‘버티는 삶에 관하여’가 떠올랐다. 패션은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자기 브랜드를 이제 막 만들어가는 디자이너들의 생존이 녹록지만은 않다. 대화를 나누고 팝업 세일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다음 행사가 열리면,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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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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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VY Magazine x SFCS Article 04. Brand Story — After Pray
2019-08-06
The NAVY Magazine x SFCS Article 06. The Designers Talks Vol.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