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r Post

카테고리

글렌 오브라이언의 책

How To Be A Man.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The NAVY Magazine

6. Thu-171116_Glenn O'Brien_7w

Mr. Glenn O’Brien. Photographed by Peggy Sirota.

   리졸리 출판사 Rizzoli International Publications가 펴내고 2017년 4월 타계한 글렌 오브라이언 Glenn O’Brien, 1947-2017이 쓴 이 스타일 가이드 style guide는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히 유행을 좇아 만든 부류와 차원을 달리한다.

    책 이전에 먼저 작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는 굉장한 저술가 writer이자 여러 성공한 패션 캠페인을 도맡은 진정한 의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였다. 전설로 남은 앤디 워홀의 팩토리 Andy Warhol’s Factory 구성원이었고, 지금까지도 훌륭한 아트 디렉션과 심도 있는 대화 기사들로 유명한 인터뷰 매거진 Interview Magazine의 첫 번째 편집자였다(발행인이 앤디 워홀이었다). 이후 디테일스 매거진 Details Magazine에 자신의 경험을 녹이거나, 바니스 뉴욕 Barneys New York 광고 담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of advertising로 일하기도 하였다.

    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1966-1988가 살아 있을 때 주연을 맡은 독립 영화 뉴욕 비트 New York Beat의 각본을 쓰고, 이후 작가의 초기 작업을 저명한 갤러리와 박물관에 빌려주기도 하는 등 재능을 막 드러낸 예술가 친구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애호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했다. 젊음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잃지 않아, 작고하기 전까지 수많은 젊은이가 그에게 존경을 보냈다. 그는 진작부터 영역의 경계를 나누지 않았다. 항상 미국인 특유의 재치로, 글을 읽을 독자 불특정다수를 향한 열린 태도를 유지하였다. 바야흐로 나이가 들수록 멋이 깊어지는 고고한 남성이었다.

How To Be a Man: A Guide To Style and Behavior For The Modern Gentleman by Glenn O’Brien, Illustrated by Jean-Philippe Delhomme, 2011. Published by Rizzoli New York

    미국 지큐 GQ US스타일 가이 Style Guy 컬럼을 중심으로 풀어낸 이 책은 현대의 신사 gentleman가 입고, 생각하고, 생활하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이야기들을 매끄러운 글과 삽화로 담아낸다. 두꺼운 양장본 표지를 넘기면 재치 있게 다양한 남성을 그린 프랑스 삽화가 장-필립 델옴므 Jean-Philippe Delhomme의 그림이 먼저 반긴다. 손에 닿는 종이 촉감은 보통 소설책을 넘길 때와 비슷하지만, 책 세로 가장자리에 일부러 거칠게 재단한 종이를 사용했다.

    수트 suit와 셔츠 shirt, 모자 hat와 타이 tie, 보석 jewels과 속옷 underwear 등 남성 스타일을 친절하게 조언한 글이 책의 일정 지분을 차지하지만, 연륜과 감탄이 드러나는 시선을 함께 모아둔 점에서 스타일 팁이 아닌 삶의 가치를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가치이다.

    남성복의 ‘외양’을 단정하는 패션 잡지들의 규칙 대신, 사실 사람들이 잘 모르던 각 분야의 어원과 개인적 경험, 그리고 사견을 듬뿍 담은 인생의 조언과 철학을 함께 담아냈다. ‘남자 man’와 ‘신사’가 되는 법 바로 뒤에 ‘동물이 되는 법 How to be an Animal‘을 넣거나, 경쟁 How to Complete과 소통 How to Communicate을 말하고, 친구가 되거나 취향을 지니는 법을 말한다. ‘현대 신사의 스타일과 행동 지침 A Guide To Style and Behavior For The Modern Gentleman’이라는 부제는 그래서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부제가 된다.

How To Be a Man: A Guide To Style and Behavior For The Modern Gentleman by Glenn O’Brien, Illustrated by Jean-Philippe Delhomme, 2011. Published by Rizzoli New York

    만일 그가 패션계에 심취한 거리 패션 사진 street fashion photography 스타였다면 이 책을 고를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글과 조언이 설득력을 띄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저급과 고급으로 문화에 잣대를 두어 구분하지 않았다. 지역 문화 local culture와 사회 전반에 두루 경험과 지식이 있었다. 시대를 개척한 예술가들 – 워홀과 바스키아, 리차드 프린스 Richard Prince부터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슈프림 Supreme에 이르는 패션·문화적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그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 남성이었다.

    삽화를 그린 장 필립 델롬이 책 끄트머리에 쓴 이야기는 글렌 오브라이언이 작고한 시점, 마치 추도사처럼 느껴진다. 델롬이 글렌 오브라이언을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점선 무늬 pinstripe 맞춤 bespoke 수트에 타이를 맨, 1990년대 초반 어느날의 첫인상을 말이다.

    하우 투 비 어 맨 How To Be A Man은 잘 지은 울 코트 wool coat와 닮았다. 오래도록 입으며 이야기와 추억이 쌓이고, 어느 정도 격식 있으며, 셔츠와 터틀넥 스웨터를 함께 입기 좋아서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마초주의가 아닌) 남성성 manhood의 개인적인 상징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점이 책의 내용과 맞닿아 있다. 딱딱한 규칙 나열이 아니라, 재치와 경험이 그만큼 유연하고 고개 끄덕이게 한다. 아마존닷컴 Amazon.com에 올라온 독자 서평 중 공감한 문장을 덧붙이며 글을 마친다.

    “이 책은 좋은 읽을거리입니다. 저자의 아이러니와 유머 감각이 모든 페이지에 흘러나옵니다. 몇 가지 스타일 조언이 있지만, 이 책은 그 이상입니다. 삶에 관한 것이고, 스타일의 모든 면에서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더 네이비 매거진 북 클럽 The NAVY Magazine Book Club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은 장문이 들어간 책에 좀처럼 눈을 붙이지 못한다. 하지만 두툼한 종이로 된 책을 손에 쥐고, 한 장씩 손으로 넘기면서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무언가 적거나 떠올리는 행동은 무수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독서의 위기라는 시대, 한 권의 책을 읽는 행위는 놓지 말아야 하는 생활 양식이다.

    수많은 출판물이 사실 주위에 있다. 수필과 인문학 서적, 전문서와 잡지, 사진집과 교양서적 등을 본다. 책과 잡지, 특히 ‘종이 paper‘라는 물성을 지녀 넘기는 맛이 있으며 편집의 오롯한 결과물로 남은 보석 같은 책이 주변에 있다. 더 네이비 매거진 북 클럽 The NAVY Magazine Book Club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직접 읽은 출판물 중 일부를 직접 골라 정기적으로 추천한다.

구독과 기부 Donate to Subscription.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은 독립 모바일 매거진입니다. 독자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지역과 동시대 문화를 향한 적확한 비평과 따뜻한 시선, 좋은 취향과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기사를 작성하고 생산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는 시간과 재원이 필요합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더 네이비 매거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매달 커피 한 잔 금액으로, 구독 버튼을 눌러주세요.

2017-11-09
꼴레뜨, 20년
2017-11-23
유인양품 Nº 01 — 비즈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