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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레뜨, 20년

 2017년 12월이 지나면 편집매장 꼴레뜨가 문을 닫는다. ‘한 시대가 저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은 거인의 퇴장은 2017년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Colette, The NAVY Magazine

© Colette, 2016. Photographed by The NAVY Magazine.

    패션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기업과 매장의 흥망성쇠 뉴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어떤 패션 비즈니스를 접는 소식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청담동 명품 거리의 플래그십 매장들은 여전히 텅 빈 가게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꼴레뜨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특별한 반응을 보인다.

    매장을 방문한 경험과 독특한 향, ‘생수’에 가치를 부여했던 ‘워터바’와 실험적인 인테리어, 수많은 예술가의 산실이 된 전시와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냈다. 주기적으로 매장을 방문한 단골이든, 그저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든, 이제는 하나의 상징처럼 된 ‘세상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편집매장’이 사라진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을 표현한다.

    1997년 3월 20일, 프랑스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엘리제 궁을 둘러싼 1구 생토노레 Rue Saint-Honoré 거리에 꼴레뜨가 문을 열었다. 창업자이자 소유주 꼴레뜨 루소 Colette Rousseaux의 이름을 딴 편집매장이었다.

    당시 고급 기성복 업계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80년대부터 이어진 호황기는 오랫동안 패션 중심지 역할을 한 파리를 넘어 미국과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이 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자연스레 럭셔리 luxury 패션 산업을 지탱한 유럽 패션 거인들은 위기감과 환골탈태의 필요성을 동시에 느꼈다. 오래된 기성복 브랜드들은 저마다 젊은 피를 수혈하며 브랜드의 영속성을 단단히 만들고자 노력했다.

    구찌 Gucci가 미국 출신 디자이너 톰 포드 Tom Ford를 끌어들여 관능미를 자신의 DNA에 추가하고, 루이비통 Louis Vuitton마크 제이콥스 Marc Jacobs를 영입하여 모노그램 가방을 재해석하던 시절이었다.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처럼 이제는 전설의 반열에 오른 패션 디자이너들이 막 재능을 드러내던 시기도 그 당시였다. 넘치는 로고와 사치스러움 대신, 정체성을 혁신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지휘가 올라가며 새로운 영역으로 도약하던 시절이었다.

© Balenciaga x colette collaboration & pop-up store installation, 2017. Images courtesy of colette.

© Balenciaga x colette collaboration & pop-up store installation, 2017. Images courtesy of colette.

    ‘미스 꼴레뜨’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공동 창업자이자 루소의 딸 사라 앤덜먼 Sarah Andelman 은 바로 이 시기부터 ‘콘셉트 스토어 concept store’, 즉 지금 우리가 아는 편집매장의 원형을 시도했다. 바로 ‘고급 high-end’ 패션과 ‘거리 street’ 문화의 혼합이었다. 전통적으로 패션 문화란 비공개 살롱 문화와 예술처럼 높은 곳에서 소수의 사람이 주도했다. 고급 맞춤복으로 패션을 이끌던 이전 세대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공식을 철저히 따랐다. 업계를 주도하던 잡지들 역시, 값비싼 옷과 액세서리로 무장한 슈퍼 모델들과 저명한 패션 사진가들을 모아 작고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이미지를 창출했다.

    꼴레뜨가 착안한 방식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가격의 높고 낮음을 매장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루소와 앤덜먼에게 꼴레뜨는 다양한 취향을 공유하는 장터 market였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값비싼 기성복은 물론, 단돈 몇 프랑이면 구매할 수 있는 소품과 오래된 책, 음반을 한 곳에 섞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꼴레뜨를 ‘하이브리드 hybrid·혼합’를 패션과 접목한 최초의 편집매장 중 하나’로 평했다. 꼴레뜨는 고급 패션 업계가 지닌 문턱을 낮춘 최초의 편집매장이었다. 으리으리한 대접을 받으며 VIP처럼 깍듯한 대접을 받는 매장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순수한 패션 문화를 알고자 매장을 방문하기에 그들의 문턱은 예나 지금이나 높다. 하지만 꼴레뜨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었다.

    커다란 윈도 디스플레이가 반기는 꼴레뜨 매장 1층에는 이제 막 재능일 꽃 피우기 시작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설치 작업부터 대가의 반열에 오른 창작자들의 작품이 매주 바뀐다. 생토노레 거리를 걷다 보면, 꼴레뜨를 상징하는 두 개의 푸른색 원이 들어간 그래피티와 스티커를 골목 어딘가에서 높은 확률로 발견하게 된다.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다양한 뷰티 및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갖춘 지하, 한정판 스니커즈부터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필름 카메라, 그리고 동전 몇 잎으로 살 수 있는 기념품 라이터를 함께 파는 매장 1층만 돌아도 정신없이 쏟아지는 동시대 문화를 맛볼 수 있다. 2층에는 반대로 꼴레뜨의 핵심이자 정수인 ‘고급 기성복’ 패션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약속한 것처럼 꼴레뜨와 협업한 매장 속 매장 shop in shop을 꾸민다. 2004년의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이 그러했고, 2017년의 발렌시아가 Balenciaga가 그러했다. 어디에도 출시하지 않은 신제품을 가장 빠르게 접하고, 브랜드와 협업한 독자 제품을 선보이는 순환 구조는 지금의 꼴레뜨를 있게 한 최고의 마케팅이었다.

© Art Paris: Henzel Studio collaborations & Heritage Exhibition at colette, 2015. Images courtesy of Henzel Studio.
© Art Paris: Henzel Studio collaborations & Heritage Exhibition at colette, 2015. Images courtesy of Henzel Studio.

© Art Paris; Henzel Studio collaborations & Heritage Exhibition at colette, 2015. Images courtesy of Henzel Studio.

    파리의 매장들은 빠르게 변하는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보다 한참 ‘느리게’ 돌아간다. 사라 앤덜먼은 업계 전문지 비즈니스 오브 패션 Business of Fashio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리는 (유행의) 레이더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어요. 여기(파리)서 찾을 수 없는 제품을 발견하고 여행할 기회를 (꼴레뜨를 통해) 가졌습니다. ‘스타일, 디자인, 예술과 음식’이라는 모토 아래 모든 제품을 모으고 싶었어요. 갤러리와 레스토랑을 접목한 온종일 문을 연 가게였죠. 당시 파리에선 오후 3시에 점심을 먹기란 불가능했어요. 그걸 바꾸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실행에 옮겼다. 알다시피 이제 전 세계 모든 편집매장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접목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꼴레뜨의 발자취 덕분이었다.

    혹자는 지금의 꼴레뜨를 ‘단지 관광객들(특히 아시아)을 위한, 이미 관광 명소로 변한 가게’로 말한다. 지난해 열린 파리 패션위크에서 꼴레뜨를 위시한 몇몇 새로운 편집매장을 방문했을 때 느낀 감상은 이러한 주장을 일부 뒷받침하는 게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제는 명품 거리가 된 생토노레 지역보다 다소 한산하고 예술의 기운이 넘치는 3구 마레 Le Marais 지역에 둥지를 튼 신진 편집매장 더 브로큰 암 The Broken Arm은 2010년대의 꼴레뜨처럼 보인다. 꼴레뜨보다 훨씬 작지만, 베트멍 Vetements준지 Juun.J부터 꼼데가르송이 발행한 1980년대 서적까지 꼼꼼하게 들어찼다. 윈도에는 기성복보다 맞춤복에 가까운 화려한 드레스가 걸려 있고, 이제 막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가죽 장인의 소품이 무신경하게 널려 있다. 하지만 문화의 경계를 탐험하고, 그 정수를 섞어서 보여주며, 가치 판단의 기준을 오롯이 ‘고객’에게 돌린 첫 번째 편집매장이 꼴레뜨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꼴레뜨는 고급 기성복과 럭셔리 제품만을 취급하는 상점이 아니다. 동시대 흐름을 누구보다 발 빠르게 파악하여, 그 흐름의 기조를 편집매장 안에 녹여냈다. 그래서 그들은 동시대 문화와 하나가 되었다. 파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패션과 문화계 사람들은 지금의 ‘최전선’을 보기 위해 꼴레뜨를 방문했다.

© The Shelby Window at colette, 2016. Images courtesy of The Shelby.

© The Shelby Window at colette, 2016. Images courtesy of The Shelby.

© Balenciaga x colette collaboration & pop-up store installation campaign, 2017. Images courtesy of colette.

© Balenciaga x colette collaboration & pop-up store installation campaign, 2017. Images courtesy of colette.

© colette x Courrèges collaborated T-Shirt, 2016. Images courtesy of colette & Courrèges.

© colette x Courrèges collaborated T-Shirt, 2016. Images courtesy of colette & Courrèges.

    수년 전 서울 패션계에는 어느 대기업이 ‘꼴레뜨’의 서울 지점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나 도버 스트리트 마켓처럼 거대한 편집매장들이 주요 도시에 몇 개의 매장을 낸 현실을 보면, 허튼 소문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꼴레뜨가 서울에 생기는 일은 없었다.

    패스트 패션과 SPA 브랜드,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전 세계 무료 배송과 반품을 강조하는 모바일 편집매장들과 ‘지역성’의 경계를 흐리는 모호한 콘텐츠들…. 모든 문화가 섞이고 또 섞이며 새로운 창조가 없다고 느껴지는 시대가 왔다. 꼴레뜨 매장에 방문하여 유심히 그곳을 둘러보고 있자면, 업계의 유명인사이자 상징이 된 사라 ‘꼴레뜨’ 앤덜먼을 마주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는 예의 짧은 커트머리와 부드러운 미소로 직원들과 대화하며, 계산대에서 직접 고객들을 위해 포장한다. 3층짜리 8천 제곱미터 매장에서, 꼴레뜨 루소와 그의 딸 사라가 손대지 않은 부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매일 방문하여 토론하며 관여하지 않은 편집매장을 꼴레뜨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2017년 7월 12일, 꼴레뜨가 올해 12월 20일 문을 닫는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남긴 문장에는 그래서 여운이 맴돈다. “모든 좋은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꼴레뜨 (루소) 없는 꼴레뜨(매장)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As 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Colette cannot exist without Colette.” 거대한 산업 일부가 되어 명맥을 유지하는 선택지는 차고 넘치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은 택하지 않았다. 연말이면 문을 닫는다는 초읽기에 들어선 2017년 여름의 꼴레뜨 매장에 여전히 순례자들이 북적대는 이유다.

    This article has been contributed to 1st Look magazine’s July 2017 issue.

© colette logo by Melinda Gloss x colette x Heritage Paris, 2013. Images courtesy of colette.

© colette logo by Melinda Gloss x colette x Heritage Paris, 2013. Images courtesy of col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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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6
글렌 오브라이언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