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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마르지엘라 이야기 N° 01

Martin Margiela Talk, Part One.

 

Text  Hong Sukwoo

In associates with  Magazine B CAST Episode 7 Maison Margiela

 

    메종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의 설립자, 마르탱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1989년 브랜드를 설립 후 은퇴를 선언한 2009년까지,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패션계를 넘어 문화예술계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유지를 따르던 충실한 디자인팀에 이어서 현재는 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가 이끄는 어엿한 패션 하우스가 되었습니다만(이름을 빼고 성만 남겼습니다), 존 갈리아노 시대 이전,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남긴 유산에 여러 일화와 생각이 있습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토크’를 부제로 단 이번 글에서는 말 그대로 마르지엘라 이야기를 다룹니다. 2017년 3월 매거진 비 Magazine B의 팟캐스트 podcasts, 비 캐스트 B CAST ‘메종 마르지엘라’편 대화를 위해 준비한 질문과 답변으로 실제 방송에 들어가지 않은 내용을 전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과 서상영, 마르지엘라의 오래된 서적과 지금의 패션을 이야기했습니다.

© Maison Martin Margiela x H&H Re-edition Blazer, Maison Martin Margiela 13 Pocket ashtray, Hermès Pocket square. Photographed by The NAVY Magazine.

매거진 B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하셨지만, 마르지엘라가 패션 fashion을 업으로 다루는 이들에겐 어떤 브랜드로 자리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위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는 이야기를 형용사처럼 씁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그런 사람입니다. 심지어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정정하게 살아 계시죠(사람들이 그의 흔적을 볼 수 없을 뿐). 그만큼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패션이 단지 탐욕과 유행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지엘라 외에 개인의 패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 질문을 미리 받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저에게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 서상영 Suh Sangyoung입니다.

    2003년 처음 데뷔 후, 현재는 아쉽게도 잠정 은퇴하셨는데요. 저를 비롯한 2000년대 패션 키즈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어요. 아직 사람들이 다니지 않던, 정말로 가로수밖에 없던 신사동 가로수길에 새하얀 매장을 열고, 개인의 경험들이 들어간 협업과 컬렉션을 선보이고, 화려한 이탈리아 스타일이 득세를 이루던 당시 패션계에 조용한 발걸음으로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요즘도 패션 쪽 사람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나누면 서상영 실장님 얘기를 하곤 합니다. 저도 그분의 예전 작업들 – 포스터, 옷, 기타 소품…. – 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 패션계가 그의 작업을 주목한 이유 중 마르지엘라와 비교한 기사도 많았어요. 세계적으로 그런 현상이 새로운 건 아니었을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 비상업적 노선을 견지한 – 패션 작업이 다시 서울에 나타나진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2003년 3월에 처음 마르지엘라 바지를 구매했다고 했는데,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뉴스를 본 때”였다고 하셨어요. 처음 구매한 특정 브랜드 옷을 기억할 정도면 엄청난 애착이 있다고 봐도 되겠죠? 당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9·11 테러는 2년이 지나고도 세계를 뒤덮고 있었어요.

    처음 마르탱 마르지엘라 작업을 본 건 한 프리챌 커뮤니티의 ‘청바지’ 사진이었습니다. 당시 청바지 하면 생각나는 건,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과 리바이스 Levi’s뿐이었거든요. 그런데 둘처럼 스티치 장식이나 브랜드 이름을 박은 탭이 없는데도, 이 청바지가 뇌리에 남았어요. 하지만 한국에 매장이 없었고, 지식인 서비스로 한창 뜨거웠던 네이버 검색창에 쳐도 정말로 글이 여섯 개인가 밖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마르지엘라를 다룬 단행본이 있더라고요. 이번 인터뷰 때도 가져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스트리트’ 볼륨 1 앤 2 MAISON MARTIN MARGIELA ‘STREET’ Vol 1 & 2였습니다. 데뷔 시절부터 1999년 컬렉션까지의 비공개 자료와 전시를 총망라한 책이었어요. 유럽 거대 패션 하우스 브랜드들이 고급 기성복, 즉 하이패션 high fashion의 주류라고 생각한 제게는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그 책을 보고 나니, 뭔가 하나라도 마르지엘라 옷을 소유하고 싶었죠. 대체 어디서 구하나 생각하다가 이베이 eBay 경매를 시작한 기억이 나네요. 사실 치수도 맞지 않는 큰 드레스 팬츠였는데요. 집에 도착했다는 배송 전화를 받았는데, 그때 막 지나가다 본 TV에서 뉴스 속보로 ‘이라크 침공’이 뜨더라고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계셨는지도 궁금한데요. 주로 어디서 사셨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에는 이베이 경매를 이용했습니다. 돈이 없는 학생이라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모았어요. 이후 처음 일본 여행을 가고, 여행과 출장으로 외국을 드나들면서, 메종 마르지엘라 플래그십 매장 flahship store에 처음 방문하고, 여러 디자이너 브랜드를 파는 중고 매장 second-hand store을 방문하며 틈틈이 샀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패션 브랜드 중에는 ‘작업을 보는 걸 좋아하는’ 브랜드와 ‘실제로 입고 싶은’ 브랜드가 나누어져 있는데, 메종 마르지엘라는 저에게 ‘전자’에 가깝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지금도 출판물 publication이나 오브제 objet처럼 직접 입을 수 없는 것들에 더 끌리네요.

실제로 입었을 때 장단점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성격이 강한 디자이너일수록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편이잖아요.

    이 점에 관해서 반대로 생각합니다. 메종 마르지엘라를 사람들은 ‘전위적’, 즉 아방가르드 패션의 끝판왕처럼 여기지만, 실제 옷 중에는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 무척 많습니다.

    가장 최근 출시한 기성복 라인 ‘4’번과 ‘14’번은 일상복으로 입기 좋은 티셔츠와 셔츠부터 코트나 재킷들이 있거든요. 이 옷들을 보면, 특별히 마르지엘라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옷장에 걸린 다른 옷들과 잘 섞여 들어가요. 하지만 자기만 알 수 있는 섬세함이 숨어 있죠. 가령 셔츠의 가슴 부분에 턱시도 셔츠 그래픽을 코팅해두었다든지, 스웨트셔츠 팔꿈치에 가죽 조각을 달았다든지….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장점으로 생각해요.

  요즘 메종 마르지엘라 옷을 보며 좀 아쉬운 점은, 그들의 대표적인 하얀 바늘땀 stitches를 너무 온갖 아이템에 남발(?)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스티치가 ‘꼭 들어가야지 예쁜’ 아이템에서만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나 마르지엘라 입었어!’라고 대놓고 말하는 기분도 들어요.

마르지엘라를 다룬 여러 잡지와 아트북 등을 수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마니아들과 비교하면 ‘수집’이라기엔 송구스러운 수준입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스트리트와 함께 제가 아끼는 책은 벨기에 어 매거진 큐레이티드 바이 A Magazine Curated by가 발행한 어 매거진 큐레이티드 바이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A Magazine Curated by Maison Martin Margiela입니다.

2004년 발행한 잡지인데, 잡지보다는 한 권의 디자이너 단행본으로 봐야 합니다. 이 잡지는 한 명의 패션 디자이너를 골라서 그 디자이너가 한 권의 게스트 큐레이터 guest curator, 즉 편집장 역할로 참여합니다. 책 내용을 어떻게 만들지도 자유예요.

마르지엘라는 이번 호를 만들면서 데뷔 컬렉션부터 2004년까지 벌인 수많은 ‘협업 collaboration’에 주목했어요. 협업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부자나 외부 회사들과의 협업만이 아니라, 메종의 보조 assistant와 수습 디자이너들, 모델과 사진가, 예술가,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게 해석합니다.

마르지엘라가 첫 컬렉션을 구매한 독일 패션 디자이너 듀오 블레스 Bless의 유명한 토끼털 모자도 들어 있고, 일본 저널리스트이자 사진가 쿄이치 츠즈키 Kyoich Tsuzuki가 찍은 해피 빅팀스 Happy Victims 연작 작업도 들어 있습니다. 흔히 편견처럼 ‘예술 작품’ 같은 내용만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꼼꼼하게 프레젠테이션 날짜와 연도, 판매 시점과 쇼룸 주소, 컬렉션 설명 등이 전 시즌에 걸쳐 쓰여 있어요. 이런 걸 보면, ‘아카이브 archive’를 생각하는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죠.

    팬으로서 이 책을 보면, 아무런 설명 없이 흰색 white으로 뇌리에 박힌 그의 작업이 왜 ‘흰색’에 몰두하는가 힌트를 엿볼 수도 있고, 또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협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 수 있어요. 여전히 무언가 ‘설명’하는 데 인색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이런 출판물이 남아 있다는 건 소중합니다.

매거진 B도 마르지엘라를 다룬 잡지가 된 셈인데요.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저에게 매거진 B는 ‘패션’보다 ‘라이프스타일 lifestyle’ 브랜드에 더 집중하는 이미지였거든요. 마르지엘라는 패션 안에서도, 물론 지금은 대기업 소속이긴 하지만, 더 소수를 지향하는 브랜드였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연결 고리는 있어 보였지만, 좀 신기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아주 기뻤습니다.

2006년 즈음 일본 도쿄의 마르지엘라 매장을 찾아 마르지엘라의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는 글도 봤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누신 건가요? 마치 음악가 musician의 팬들이 모여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지금은 ‘어렸구나’ 생각도 드는데요, 2006년 전후가 저에게는 ‘패션’과 ‘옷’을 순수하게 좋아했던 마지막 시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후로는, 뭐랄까 사회인이 되었으니까요. 일본어도 영어도 서툴렀기 때문에, 사실 뭔가 깊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고요. 서울에서 온 학생이고 마르지엘라를 정말 좋아한다고 그저 떠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 패션 씬 scene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서상영 같은 브랜드도 한국에서 나오고, 벨기에 안트워프 Antwerp 출신 디자이너들이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을 만들어내고, 일본 등지에서도 언더커버 Undercover나 넘버 나인 Number (N)ine처럼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 세대 이후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요.

    그때 한 달 정도, 도쿄 Tokyo에 머물며 여행했습니다. ‘패션 순례’에 가까웠네요. 벼르고 벼르다가 에비수 Ebisu에 있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igela 플래그십 매장에 갔습니다. 티셔츠였나 팔찌였나 뭔가 하나 산 것 같기도 해요. 뭔가를 소비했다는 기억보다, 매장 곳곳 하얀 인테리어, 예전에 찍은 패션 필름, 매장 스태프들의 흰 가운과 조용조용한 태도 같은 것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마르지엘라 마니아들만의 특징이 있나요? 마르지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어떤 코드 같은 것이요.

    ‘신규 유입’된 팬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이탑 스니커즈라든지,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가 입은 옷을 보고 브랜드를 알게 된 사람들은 왠지 화려한 면을 좇을 것 같거든요.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런데 주변 마르지엘라 마니아들의 교집합은, 유행하는 패션을 항상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싶어요. 패션의 유행은 흥미롭고, 또 종종 따르고 싶지만, 그런 와중에 자기 색이 뚜렷한 브랜드들을 보며 괜히 아빠 미소 비슷한 걸 내는…. 그런 느낌이에요.

마르지엘라는 패션쇼를 통해 독특한 콘셉트를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 있으신가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 개 꼽자면, 물론 직접 본 건 아니고 훗날 책으로 배웠습니다만, 1994년도 가을/겨울 시즌 소위 ‘인형의 옷장 Doll’s Wardrobe’ 컬렉션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 옷들은, 바비 인형처럼 인체 비례가 사람과 비슷해도 그 옷들까지 사람 옷처럼 만들 순 없잖아요. 그래서 단추가 몇 개만 달리거나, 여러모로 실제 사람 옷을 축약해서 보여주죠. 그런 옷들을 반대로 만들어본 컬렉션이 바로 이 시즌이었어요. 커다란 단추가 두 개만 달린 카디건과 코트가 이 시즌 처음 선보였습니다. 인형 옷을 사람 옷으로 재해석한다는 건 사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새로운 게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패션 매장과 구매자 buyer들을 이미 고객으로 둔, 브랜드 전개 6~7년 차 디자이너가 한 시즌을 통째로 하나의 콘셉트로 채운다는 건 지금 시점으로도 하나의 도박이죠. 그런 점에서 처음 그 컬렉션을 봤을 때,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패션쇼는 예전만큼 장대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일이 적어졌다고들 하는데, 어떠세요? 시즌 개념의 패션위크가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시 나우, 바이 나우 See Now Buy Now’처럼, 컬렉션을 선보이고 바로 판매에 들어가거나, 발달한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을 사용하거나, 무언가 실시간으로 패션을 보여주고 바로 소비하는 방식은 앞으로 더 많아질 거로 봅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 패션과 달리, 요즘은 한 브랜드가 1년에 두 번의 컬렉션이 아니라 최소 네 번에서 여덟 번의 컬렉션을 선보여요.

    그만큼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 브랜드의 공세가 강해졌고,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계절, 원하는 시점에 또 다른 새로운 옷과 장신구를 매장에서 보길 원해요. 무대가 있는 컬렉션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겁니다. 여전히 젊고 재능 있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선보이길 원하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시대가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현실입니다. 업계 최고 수준의 모델을 쓰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잡지들이 주목한 패션 디자이너가 수년 안에 사라지는 경우도 많아요.

    ‘시즌 season’을 나누는 패션쇼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디자이너들은 협업 디자이너와 브랜드 중에도 의견이 갈립니다만, 저는 유지에 한 표를 겁니다. 잡지 같은 거예요. 새로운 플랫폼이 생길 수는 있지만, 공룡처럼 멸종하지 않는다는 거죠.

마르지엘라가 은퇴를 선언한 당시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은퇴 루머가 나온 건 2008년 9월이었습니다. 거의 1년 후 사임하며 은퇴합니다. 이미 청바지 브랜드 디젤 Diesel 창업자 렌조 로소 Renzo Rosso가 설립한 오티비  Only The Brave 그룹이 메종 마르지엘라의 최대 주주가 된 게 2002년이었지만, 저는 렌조 로소가 다른 패션 경영자들처럼 실적으로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압박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그러면 더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 컬렉션이나 매장에 보여야 했는데, 여전히 소수 minority 감성을 지니고 있었거든요. 외국 기사를 보면 여러 압박도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지금은 누구도 정확히 모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마르지엘라 은퇴 후 브랜드에 생긴 공백은 그가 패션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요즘 다시 이야기되는 ‘마르지엘라스러움’, 소위 ‘마르지엘라이즘 Marigela-ism은 어떤 거로 생각하세요?  

    보통 패션 브랜드가 수장을 교체하면 곧바로 다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발표하는 게 관례인데, 메종 마르지엘라는 2009년 이후 2014년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팀 design team’이 컬렉션을 이끌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말하자면 혁신적인 변화 없이 기존에 만든 것들을 견고하게 선보이는 느낌이라 쇼를 보는 재미가 좀 적었죠.

존 갈리아노가 들어온 이후,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름 ‘마르탱 Martin’을 떼어냈죠. 개인이 세운 브랜드라는 느낌보다, 하나의 패션 하우스로 변모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꼈어요. 갈리아노의 마르지엘라 작업은 비판보다 호평이 많은 편인데, 사실 요즘은 처음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행한 것처럼 둔탁하고 거친 느낌이 사라져서 오랜 팬으로서 좀 아쉽긴 합니다. 여전히 좋아하지만요.

그만큼 요즘 패션 씬이 별다른 재미가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 소비자들을 위한 마케팅으로만 돌아간다고 말하는데, 이런 의견에 동의하시나요?

    아무것도 적지 않은 마르지엘라 특유의 바늘땀은 사실 로고와 화려한 그래픽으로 점철한 1980년대 주류 패션계의 반동이었잖아요. 하지만 지금 인스타그램 Instagram에 들어가 보세요. 마르지엘라의 흰 스티치 라벨을 찍은 게시물이 세계적으로 판을 치고 있을 겁니다. 그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어요. 브랜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고객들은 자신이 산 제품을 드러내고 싶어하죠. 하지만 마르지엘라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컬렉션을 생산한다는 의견에 100%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수익이 저조할 ‘고급 맞춤복’, 즉 오트 쿠튀르 haute-couture 컬렉션부터 없애야 하거든요. 존 갈리아노가 디올 Dior 시절 인종 차별 논쟁 이후 다시 메종 마르지엘라를 맡은 가장 큰 이유도 그가 주문 제작 방식 고급 맞춤복에 특화한 재능과 거대한 기성복 패션 하우스를 동시에 이끈 경력을 지닌 디자이너라는 점 아닐까요.

그런데도 요즘 패션 신에서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무언가가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는 브랜드나 현상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베트멍 Vetements고샤 루브친스키 Gosha Rubchinskiy가 대표하는 스트리트웨어 streetwear와 거리 패션 street fashion의 득세입니다. 베트멍은 헐렁한 후드 파카와 스웨트셔츠로 몸에 꼭 맞는 맞춤 셔츠를 대체했고, 고샤는 러시아 청년 문화 Russian youth culture라는 생소한 무기를 들고나와 좀 지루했던 시장에 활기를 채웠습니다.

특히 뎀나 바살리아 Demna Gvasalia는 컬트 cult 브랜드로 끝날 수 있는 베트멍을 넘어 유럽 패션 하우스 발렌시아가 Balenciag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가 되었죠. 주류 패션계 중심으로 진입하고서도, 그가 선보인 컬렉션은 지금도 매장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뎀나를 보면 지난 미국 대선의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가 떠올라요. 둘은 각자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인 인물이었죠. 물론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뎀나는 자신의 작업을 주류 패션계에 당당히 올렸어요.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뎀나와 고샤가 선보인 룩을 모방하고 있고요. 말하자면 조용한 혁명입니다.

* 2017년 12월 7일 목요일,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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