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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양품 Nº 01 — 비즈빔

Visvim by Nakamura Hiroki; Courage to Traveling into the Historical Garments.

 

Text  Lee Kang il, Creative Director of ISOFLX

Edit  Hong Sukwoo

Photography  Visvim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의 목요일 Thursday, 스타일 Style 챕터는 비정기적으로 외부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그 첫 번째는 기능성 기성복 아이소플럭스 ISOFLX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강일 Lee Kang il의 유인양품 有印입니다. 사람이 만드는 패션, 즉 사려 깊고 진중하게 만드는 ‘디자이너 브랜드 designer brand‘를 다루는 연재 칼럼입니다.

© Visvim flagship store, Omotesando, Tokyo, Japan. Image courtesy of F.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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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비즈빔 Visvim은 나에게 아주 비싼 이스트팩 Eastpak, 즉 가방 전문 브랜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즈빔이란 브랜드 이름을 조금씩 알게 된 건 2000년대 중반 일본 우라하라 Ura-Harajuku; 도쿄 하라주쿠 거리 샛길로 스트리트웨어 streetwear 브랜드 매장이 많았다. – 필자 주 계열의 유명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협업 collaboration한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제 막 ‘디자이너 브랜드 designer brand’가 어떤 힘이 있는지 깨닫기 시작한 새내기 newbie에 불과했고, 신출내기의 특성상 밋밋한 것보다 강렬하고 비상식적인 – 저걸 어떻게 입나 생각이 절로 드는 – 디자인에 열광했다. 특히 벗 뷰티풀 But Beautiful…. 시리즈로 단숨에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한 언더커버 Undercover®에 빠져있었는데, 정상적인 비례를 한참 벗어난 큰 치수 oversized 메신저백 messenger bag에 눈길이 갔다. 그 기괴한 비율 proportion에 역시 언더커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가방들과는 달리 단순한 외형적 신선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나일론 nylon 원단과 가죽이라는 이질적 질감의 완벽한 조화, 최적의 비례와 바늘땀 stitch 선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 쓴 꼼꼼한 세부항목 detail. 게다가 사용자의 몸과 가방 사이 조금의 틈도 남기지 않고 밀착하도록 설계한 어깨끈 위치,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고 다시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을 집요하고 끈기 있게 관찰한 후 고안했을 것이 분명한 적재적소의 주머니 pocket와 가방 덮개 flap 디자인 등, 아주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제품이었다. 곧 이 메신저 백은 비즈빔이란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이 브랜드의 배낭 backpack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언더커버와 만든 메신저 백도 배낭 구조를 응용한 디자인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비즈빔의 백팩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비례, 균형, 소재감, 색상 배합, 수납공간, 쿠셔닝, 인체공학 설계 등 모든 측면이 그랬다. 단 하나, 자비 없는 가격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정도의 집요한 연구는 가방 전문 브랜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지닌 짧은 생각이었고, 그들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단순한 디자인과 색상 배합 덕분에 비즈빔을 ‘최소주의 minimalism을 지향하는 기술적 technical 배낭 브랜드의 끝판왕’으로 단정 지었다.

    선입견이 깨진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본격적으로 패션 공부를 시작한 런던 London은 과거 전통이 단절되고 급작스럽게 외국 문물이 유입되어 흐름 자체가 뒤집힌 한국 복식 문화와 달리, 수백 년 전 의상이 자연스럽게 현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10파운드 GBP 정도면 전성기 시절 버버리 Burberry, 랑방 Lanvin, 발렌시아가 Balenciaga 재킷을 구할 수 있는 기적의 도시였으니 빈티지 vintage 아이템에 관심 두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빈티지 아이템과 빈티지에 기반을 둔 브랜드에 관심이 커지면서, 비즈빔은 막연히 단정 지었던 그런 부류의 브랜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쌀 rice’까지 포장해서 출시한 괴이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제품 폭 spectrum이 넓은 종합 기성복 브랜드였다. 최소주의와 단순성 simplicity을 지향하는 브랜드(이를테면 코스 COS 같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의 초기 대표작은 FBT라는, 북미 원주민 native American 전통 신발인 모카신 moccasin을 모티브로 제작한 스니커즈 sneakers인 데다, 의류 대부분은 20세기 초 빈티지에 근간을 둔 아메카지 アメカジ; 아메리칸 캐주얼 American Casual의 일본식 약자로, 일본에서 유행하는 미국 스타일 캐주얼 웨어. – 편집자 주 브랜드에 가까워 보였다. 거기에 기모노 きもの 재킷 같은 일본 전통문화 혹은 북미 원주민처럼 민족성 ethnicity을 한 방울 섞어 혼합한 분위기가 비로소 ‘온전한’ 비즈빔을 향한 첫인상이었다.

     한동안 나는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지 막막했다. 대부분 이런 분위기의 브랜드는 가방조차도 복각 replica에 기초한 디자인을 내기 마련이다. 빈티지 캔버스 바탕에 가죽 등을 덧대고 가죽끈 strap으로 여미는, 더블알엘 RRL; 랄프 로렌 Ralph Lauren에서 전개하는 정통 미국식 빈티지 의복 브랜드. – 필자 주에서 나올 것 같은 가방들 말이다. 하지만 비즈빔 가방은 소재부터 코듀라 발리스틱 Cordura Ballistic이라는 번쩍거리는 방탄 나일론 원단인 데다 형태마저 대단히 현대적 modern이었다. 게다가 파카 parka 부류의 원단은 무려 고어텍스 Gore-Tex®; 등산복에서 주로 사용되는 완벽한 방수, 투습력의 고기능성 소재. – 필자 주였으니, 이는 마치 조선 시대에 아이폰 iPhone 들고 양복 차려입은 회사원을 떨어뜨린 것 같은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사실, 저번 시즌엔 20세기 초반 빈티지에서 영감을, 이번엔 미래주의 futurism를 주제 theme로 정하는 브랜드란 패션계에서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는 거대한 흐름 mega trend을 쫓으며 일정한 스타일을 보이기 마련인데, 분명 비즈빔의 행보는 이런 얄팍한 꼼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기묘한 불협화음이었다. 다만 나름의 질서와 이론적 근거가 있을 것이 분명한 매력적인 위화감이 느껴졌다.

 

© Visvim Dissertations Survey: Kanro shoyu at Yamaguchi, Japan. Image courtesy of F.I.L.

    ‘More than a single style, visvim embodies a singleminded methodology.’ 

     비즈빔 공식 홈페이지에 스스로 소개한 위 문장처럼 다양한 모습과 성격으로 결과물을 도출했지만, 그 디자인 방법론은 한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빈티지에 관한 헌정 hommage’으로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나치게 뻔한 테마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특정 시점 과거 유산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시즌 주제를 잡기도 하거니와, ‘오마주’란 미명은 자칫 창조적인 디자인을 고민하지 않는 편리한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즈빔이 특별한 이유는, 저 뻔한 문장이 내포한 무한한 깊이를 진심으로 마주하고 실천하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즉, 진정성의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당신이 외국 여행 중에 어떤 레스토랑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에 그럴듯한 각도로 사진을 찍어 올려, ‘좋아요’ 받고 흐뭇해하는 건 사실 음식이 진심으로 맛있든 아니든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해주기 위해, 들어간 재료와 조리법을 어렵게 묻고 현지 재료를 사는 노력을 한다면 당신은 정말 그 음식이 ‘인생 요리’에 들 만큼 좋았다는 얘기가 된다.

    나카무라 히로키 Nakamura Hiroki ·中村ヒロキ; 비즈빔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의 진정성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떤 것은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즉, 비즈빔이란 브랜드는 그의 ‘오지랖’을 위한 수단이다. 때로는 이게 얼마나 좋은지 설파하며 강권하기도 하고, 음료수에 약을 타서 애들한테 먹이듯 우회적으로 살짝 맛만 보여줄 때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지 그 밑바닥에 흐르는 정신이란 ‘빈티지는 정말 좋고 경이로워. 진심으로 네가 이걸 즐겼으면 좋겠어.’라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세 가지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낸다.

© Visvim garments that inspired Japanese traditional clothes. Image courtesy of F.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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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는 과거 제조법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는 방법이다. 이는 빈티지 제법 製法·manufacturing process이나 디자인을 현대에 적용할 때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리얼 맥코이 The Real McCoy’s 같은 복각 브랜드 replica brand; 빈티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브랜드. – 필자 주가 추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리얼 맥코이가 주로 20세기 초중반 군복 military uniform이나 스포츠웨어 sportswear; 오늘날 기준 평상복 casual wear 등을 중심으로 빈티지 의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반해, 비즈빔의 관심 범위는 훨씬 넓다.

    예를 들어 ‘도테라 どてら(縕袍); 솜을 넣은 일본 전통 잠옷을 뜻하는 카이마키(かいまき)의 방언. – 편집자 주 코트 Dotera Coat’라는 기모노 형식 겨울용 코트는 방한 충전재로 거위 털 goose down·구스다운이나 3M 신슐레이트 Thinsulate™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마와타 真綿(まわた)라는, 일본 전통 충전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와타는 무려 ‘실크 silk·명주’로 만들어진 솜이다. 실크 섬유 fiber를 손으로 일일이 넓히고 뭉쳐내 솜처럼 만든, 정말 최악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충전재이다.

    비싼 만큼 거위 털보다 면적 대비로 따뜻한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다만, 수백 년간 겨울용 기모노를 만드는 데 사용한 전통 방식인 만큼 기모노에 어울리는 가장 아름다운 실루엣과 조형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즈빔에선 수제작 handmade 마와타 제조 기술 장인 artisan을 찾아내 본래 original 겨울용 기모노 코트를 재현해 출시했다. 이처럼 그의 관심 범위는 특정 시대 복식을 뛰어넘는다. 일본 에도 江戸 시대 전통 제법이나 염색법이 되기도 하고, 북미 원주민이나 핀란드 Finland 수오미 Suomi족의 화려한 전통 문양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대량으로 물건을 팔기 시작한 이전 시대, 가족과 지인을 위해 손수 만들어 내던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든 애정을 지닌 채 지켜보는 듯하다.

    두 번째는 ‘빈티지’의 부분적 요소를 현대 의상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영감의 대상이 되는 빈티지 원형 original form이 현대인이 즐기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형태일 때 사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디자인한 대표작으로, 팔꿈치와 앞가슴 혹은 밑단에 다양한 전통 원단을 덧대어 결합한 셔츠와 티셔츠가 있다. 북미 원주민이나 아미시파 Amish;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 생활을 하는 미국 종교 집단, 수오미 족 전통 문양은 히로키가 애용하는 디자인 원형 중 일부이다. 대단히 화려한 무늬와 색감이라 큰 면적으로 옷을 지어 입거나 전통 의상 그대로 복각할 경우, 현대 일상복으로 입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작은 면적으로 셔츠의 팔꿈치나 가슴, 허리, 밑단 등에 부분적으로 적용하면 대부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셔츠나 티셔츠는 디자인 차별점이 뚜렷하고, 제법 상업성도 있기에 때때로 자가상표부착제 유통방식 SPA·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의 ‘참고’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그런 브랜드는 비슷하게 흉내 낸 디지털 프린트 문양을 값싸게 찍어내지만, 비즈빔은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 수 있는 ‘진짜’ 장인들을 찾아내 조각 patch에 쓰일 원단을 제작한다.

© Visvim FBT sneakers that inspired by native American moccasins. Image courtesy of F.I.L.

    세 번째는 그가 존중하는 ‘빈티지’ 원형에 현재까지 체득한 노하우와 기술력을 적용해 한 단계 진화하는 방식이다. 신발이나 배낭처럼 실용적 기능이 매우 중요한 제품군을 디자인할 때 적용한다. 그의 초기 대표작 FBT를 예로 들어보자. ‘FBT’는 ‘펀 보이 쓰리 Fun Boy Three’라는 영국 밴드 리더가 앨범 표지 촬영 때 착용한 모카신에서 영감 받아 제작한 스니커즈이다. 모카신은 북미 원주민이 풀밭이나 진흙 위를 뛰어다니기 위해 만들었던 신발인 만큼 아스팔트 위를 걸어 다니기엔 턱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밑창을 갖고 있다. 때문에 히로키는 모카신의 매력을 현대인이 즐길 수 있도록 아스팔트 위를 뛰어놀 수 있는 튼튼한 비브람 Vivram; 이탈리아 고급 밑창 outsole 전문 제조 브랜드 밑창을 적용해 신발을 완성한다.

    요즘에야 전통 조형을 지닌 몸통과 운동화 밑창을 결합한 이질적인 디자인을 흔하게 출시하지만, FBT가 처음 출시된 시점이 2001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모카신을 현대인에게 신기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는 한 이런 발상을 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방법론을 적용해 만든 또 하나의 대표작이 바로 비즈빔의 배낭이다.

© Visvim Ballistic 20L backpack. Image courtesy of Lee Kang il.

    위 사진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배낭은 오렌지 색의 발리스틱 Ballistic 원단 인비스타 코듀라 Invista Cordura 사에서 개발한 방탄용 원단으로 매우 강력한 내구성을 지닌 나일론 원단으로 만든 20L 용량 제품이다. 면과 코듀로이 등 다양한 원단을 사용하며, 용량에 따라 22L 혹은 25L 등의 치수 size가 존재한다. 사실 모든 비즈빔 가방에 배낭처럼 복잡한 기술력을 적용한 것은 아니다. 토트백 tote bag이나 가볍게 걸치는 숄더백 shoulder bag은 흔히 볼법한 단순한 구조 위에 비즈빔 특유의 빈티지 원단이나 핸드 프린팅을 강조한다. 다만, 배낭만큼은 당장 산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히로키는 판단했을 것이다. 배낭도 신발만큼이나 20세기 중반 이후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분야이며, 이는 사람들이 그만큼 편리한 기능성을 가진 배낭을 간절히 원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방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특정 배낭에 기반을 두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단순하지만 독창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다(앞서 언급했듯이 이 정도 완성도를 지닌 디자인을 가방 전문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가 만들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다른 가방 전문 브랜드의 특정 원형 디자인에서 시작했을 거로 추측하고 수차례 조사했지만 실패했다. 아마도 8년간 버튼 Burton에서 일한 히로키의 경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배낭을 제작 혹은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원형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했으리란 것이다). 더불어 등산용 배낭의 발전에 따라 축척한 노하우와 기술력을 응집하여 비즈빔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우선 몸체 밑부분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곡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물건을 집어넣었을 때 아래쪽으로 쳐지는 것을 방지한다. 무게 중심이 몸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어, 어깨와 등으로 가는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수납공간 배분도 적절하다. 노트북과 책을 넣는 공간, 부피 큰 도구나 옷가지를 넣는 공간, 휴대전화나 지갑처럼 빠르게 꺼내 쓰는 소지품 보관 공간 등으로 나뉘어 특성에 맞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보관이 가능하다. 가방 전면부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우산이나 옷가지 혹은 등산용 폴대 등을 걸어둘 수 있는 고리 두 개와 벨크로 velcro 주머니가 있다. 내부에 많은 분할 공간이 있지는 않지만, 두툼한 네오프렌 neoprene 원단으로 이루어진 노트북 칸막이 partition, 휴대용 음악 재생 기기를 보관할 수 있는 주머니와 이어폰용 구멍(사실 이 부분은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요즘에는 음악 재생 기능이 대부분 스마트폰 smartphone 안으로 흡수되었고, 스마트폰은 이렇게 뒤쪽에 보관할 수는 없는 기기이기 때문이다), 기타 잡다한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분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정도면 소지품을 혼란스럽지 않게 정리하기에 충분한 분할 공간이다. 

    배낭의 등판 backpiece, 어깨끈 shoulder straps, 허리띠 waist belt는 그야말로 현대 배낭이 이룩한 인터널 프레임 internal frame; 등판을 딱딱하게 고정하는 프레임이 배낭 안쪽에 숨어 있는 형태 노하우가 고스란히 집약된 결과물이다. 등에 밀착하는 내부 프레임 배낭 특성상 어깨와 등의 쿠셔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비즈빔 배낭은 적절한 강도와 탄성의 보강재를 내장하고 있다. 이를 감싼 네오프렌 원단은 매우 부드러워 착용자가 약한 재질의 옷을 입고 있어도 상하는 일이 없고, 땀 흡수 또한 우수한 편이다(전문 산악용 등산 가방은 땀을 흡수하고 빠르게 건조하는 기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다소 거친 재질의 망사를 사용하는데, 이런 재질은 울이나 면 옷감이 손상하는 원인이 된다). 어깨끈 생김새 또한 어깨와 등에 빈틈없이 밀착하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 어깨끈을 하나로 묶는 끈도 포함되어 있어 가방이 흘러내리는 현상을 방지한다. 허리 쪽에 있는 쿠션 벨트는 무게를 허리와 엉덩이 쪽으로 분산하면서 어깨로 가는 부담을 덜어주는데, 짐이 적을 경우를 대비해 탈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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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무게감이나 기타 자잘한 요소를 제외하면 전문 등산용 배낭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실용적인 원형 디자인을 기반으로, 히로키는 본격적인 자신의 장기를 살려낸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쓰인 군용 백팩부터 켈티 Kelty사의 데이팩 day pack; 당일치기 하이킹·캠프용 배낭에 이르는 20세기 초중반 무렵 빈티지 감성을 집어넣은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백팩 밑부분에 있는 가죽 조각 patch·패치이다. 사실 발리스틱 원단 가방에는 전혀 실용적인 의미가 없다. 면 캔버스 cotton canvas로 가방을 만들던 시절, 빨리 닳아 해지는 밑바닥 부분 혹은 배낭 뚜껑 가장자리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덧댄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면보다 열 배 이상 내구성이 강력한 발리스틱 나일론 원단은 가죽보다도 훨씬 튼튼한 재질이니 실용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면 캔버스 재질로 백팩을 만들던 수십 년간 가죽으로 덧댄 수많은 배낭이 탄생했고 사람들은 애용했다. 그 때문에 배낭 밑단에 가죽을 덧대는 조합은 그 자체로 그 시절 향수와 정서를 느끼는 매개체가 된다. 

    이런 배색 가죽 조합은 손잡이와 지퍼 풀러 puller·뽑개, ‘돼지코’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조각에도 적용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색상 균형 color balance를 이루어낸다(소장한 배낭에선 다이아몬드 조각이 플라스틱 소재이지만, 다른 버전에선 가죽인 경우도 많다). 특히 이 색상 조화를 위한 비즈빔의 노력과 집착은 대단한 수준이다. 끈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한 플라스틱 부자재, 개폐용 지퍼, 쿠션에 사용한 네오프렌, 안감과 주머니 소재, 안쪽 시접을 감싸는 폴리에스터 테이프 등 모든 부자재와 원단의 색채감을 통일하기 위해 특별 발주한 것이 보인다.

    특히 플라스틱 부품 parts는 발주를 위한 최소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은 전문 가방 브랜드에서도 검은색으로 통일하기 마련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생산량은 적고 색상 종류는 다양한 비즈빔이 하나하나 색상별로 발주했다는 것은, 그들의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능성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 정도로 색상 균형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최소주의를 지향했다면 이렇게 다양한 색채 팔레트는 과하다. 과거 향수와 정취를 현대인들이 온전히 그리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즈빔의 지향점이기에 다양한 색과 디자인 균형, 최적의 기술력을 모두 소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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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자면, 나카무라 히로키가 복각 수준으로 전통 방식의 수제작 제법을 고집하는 것이나, 발리스틱 혹은 고어텍스 와 같은 첨단 기능성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나 방식은 다를지언정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사랑하는 빈티지의 매력을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때문에 비즈빔의 옷은 매 시즌 거의 다르지 않은 분위기에, 부분적인 섬세함을 제외하면 도드라지는 차별점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옷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주목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패셔니스타’ 뿐 아니라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한다.

    이는 비즈빔의 가격대가 매우 고가임을 고려하면 그리 안전한 선택은 되지 못한다. 매 시즌 늘 똑같다는, 혹은 유니클로 UNIQLO 같은 기본 의복 브랜드와 다를 바 없는 ‘감성 브랜드’라는 비아냥 역시 감내해야만 한다. 이런 고행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작게나마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거의 같은 모습으로 컬렉션을 발표하겠지만, 비즈빔이라는 브랜드 라벨을 보는 순간 나는 확신할 것이다. 반드시 최고의 원단을 사용해 최적의 디자인으로 담아냈을 것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중한 과거 유산과 최신 기술을 결합한 ‘완벽한’ 제품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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