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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 The Bodyguard.

 

Text  Hong Sukwoo

Image Courtesy of Arista, BMG Entertainment

©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 The Bodyguard(Original Soundtrack Album), 1992.

    엑스엑스엑스텐타시온 XXXTENTACION이라는 이름의 래퍼가 강도 총격 사건에 휘말려 세상을 떴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님에도 사건 발생 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반드시 음악의 마성 魔性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종종 오래도록 음악을 해주었으면 하는 인물이 세상을 등지고 목소리만 남긴다. 젊은 래퍼의 죽음으로부터 꼬리를 물다가,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이 떠올랐다.

    흑인 여성 최초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후반은 물론 그 이전에도 수많은 흑인 여성 가수가 존재했다. 생전에 이미 전설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도 여럿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벽을 넘어 보편적인 사랑을 받은 흑인 여성 음악가는 드물었다. 차세대 흑인 디바를 넘보았으나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알리야 Aaliya부터 21세기 최고의 여성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비욘세 Beyoncé까지 모두 휘트니 휴스턴과 비교되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풍미한 팝 발라드와 댄스 음악, 리듬 앤드 블루스 R&B와 기독교 음악 CCM의 공식은 ‘초대형 흥행’을 노리는 후배 음악가와 프로듀서들에게 하나의 기준이었다.

    그의 말년은 초라했다. 영화 보디가드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후, 모두가 좋아하는 팝 넘버 대신 R&B 곡을 짙게 시도한 My Love is Your Love 1998 앨범이 전성기 끝자락이었다. 2012년 그래미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마약 과다 복용에 따른 질식사로 사망했을 때는 아름답게 빛나던 흔적 대신 타블로이드 가십을 장식한 과거의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 그를 잊지 않았다. 수많은 동료 음악가부터 대중까지 광범위한 추모 물결이 넘쳤다.

    지금 다시 보디가드 음반을 듣는다. 1992년의 휘트니 휴스턴은 누구보다 당당하고 아름답게, 높고 또 낮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랑을 말한다. 수많은 패러디가 넘친 ‘I Will Always Love You’도 좋지만, 더 활기찬 ‘I’m Every Woman’과 ‘Queen of the Night’를 반복했다.

    여왕은 잠들었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청명한 목소리만큼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This article has been contributed to Cine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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