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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크리스 그리고 버질

디올 옴므, 벨루티, 루이비통의 변화를 바라보다.

 

Text  Hong Sukwoo
Images Courtesy of Various Brands

    남성복 시장에서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느낀 한 달이다. ‘권력 이동’에 가까운 패션 하우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인사 시즌(?)은 럭셔리 패션과 연관 없어 보이는 곳까지 나비효과처럼 영향을 미친다.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가 없었다면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와 나이키 스니커즈의 부활은 없었을 것이며, 킴 존스 Kim Jones가 아니라면 슈프림 Supreme이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서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업계의 지각 변동은 모두 루이비통 모에헤네시 LVMH 그룹에서 나왔다. 루이비통 Louis Vuitton, 디올 옴므 Dior Homme, 벨루티 Berluti 얘기다.

© Kris Van Assche. Photographed by Willy Vanderperre.

    크리스 반 아쉐 Kris Van Assche는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경쟁사(?)로 떠난 에디 슬리먼 Hedi Slimane과 비슷한 디자이너는 아니다. 에디 슬리먼이 뿌리고 간 로큰롤의 흔적은 가느다란 실루엣과 청바지, 독일 군용 스니커즈에서 영감 얻은 디자인 일부를 빼면, 디올 옴므에 남아 있지 않았다. 크리스 반 아쉐는 디올 옴므를 좀 더 우아한 남성복으로 이해했다. 종종 우아하다는 표현은 현대 패션계에서 지루하다는 표현과 종이 한 장 차이로 쓰이는데, 그는 그 경계를 조율하는 탁월한 지휘자였다. 침착하고 아름다운 남성복은 에디 슬리먼과는 다른 바늘땀 자수, 영상 작업과 캠페인 그리고 테일러드 재킷으로 남았다. 크리스 반 아셰가 LVMH를 떠나지 않고 벨루티로 자리를 옮긴 데는 전임자 하이더 아커만 Haider Ackermann이 결국 실패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아커만의 드레이핑과 실루엣 플레이는 가죽 구두와 가방에 집중한 브랜드의 ‘기성복’ 라인을 살리는 데 잠시나마 유효해 보였지만, 관심을 넘어 지갑을 열기에는 힘이 부쳤다. 크리스 반 아쉐는 디올 옴므보다 더 성숙하고 보수적인 고객이 즐비한 벨루티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단정한 회색 캐시미어 후드 파카에 관능적으로 무두질한 초콜릿색 가죽 옥스포드 구두를 함께 사는 이들에게 말이다. 크리스 반 아셰의 벨루티는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더 젊고 능동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과제를 떠안았다.

© Kim Jones.

    킴 존스는 런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호사가들은 공석이던 버버리 Burberry에 그의 자리가 있지 않을까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틀렸다. 무려 디올 옴므다. 에디와 크리스는 전혀 다른 디자인 철학을 지녔지만, 둘이 유일하게 합의한 부분은 ‘실루엣’이었다. 크리스 반 아쉐가 자신의 이름을 건(이제는 접은) 기성복 첫 컬렉션에서 에디의 영향과는 정반대로 스포츠웨어와 넉넉한 실루엣의 수트를 시도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뜻밖이었다. 킴 존스는 전혀 다르다. 여행과 아웃도어, 이국 문화, 스트리트웨어와 펑크 음악 그리고 영국인의 정체성이 중심에 있다.

    아직 첫 컬렉션을 선보이려면 꽤 시간이 남았지만, 킴 존스의 인스타그램과 첫 번째 공식 행보를 보면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그는 디올의 과거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쉐-슬리먼 시대였던 2000년대 ‘이후’가 아니라, 무슈 크리스티앙 디올이 직접 맞추고 재단하던 20세기 첫 번째 전성기 시절을 말이다. 두 번째로 절친한 친구이자 앰부시 Ambush®의 디자이너 윤 안 Yoon Ahn을 수석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앰부시는 현재 기성복까지 범주를 넓혔지만, 윤의 특기는 언제나 화려한 고급 주얼리였다. 퀭한 눈빛으로 기타 줄을 튕기던 젊은 로커와 엘레강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서늘한 청년 대신, 힙합과 스트리트웨어에 가까운 전혀 다른 디올 옴므가 등장할까? 루이비통은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브랜드 DNA에 워낙 강력하게 각인된 브랜드였다. 그렇다면 디올 옴므는?

    킴 존스는 백지에 가까운 캔버스에 막 스케치를 시작했다. 전통적인 수트를 ‘킴 존스’답게 변형하고, 액세서리 컬렉션에 집중하여 일종의 ‘시그니처 아이템 signature item’을 만들고자 고심하지 않을까.

© Virgil Abloh.

    가장 극적인 소식은 항상 마지막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킴 존스의 후임으로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취임한 소식이 전해진 후, 소셜 미디어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주요 패션 하우스에(여전히) 거의 존재하지 않는 흑인 남성 디자인 책임자로서, 버질 아블로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높은 패션 하우스의 남성복을 지휘하게 되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은연중에 자리 잡은 유리천장은 무너지고 있다. 둘째, 슈프림과 벌인 협업과는 다른 결과물이 루이비통에 필요하다. 버질 아블로가 만들어갈 루이비통 남성복은 다른 두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아직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 DNA를 심는 데 만족하지는 않을 거다(LVMH 경영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며, 그게 가장 큰 강점이라면 버질 아블로가 아닌 후보는 무척 많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여성복이 고수하는 방향과 결을 달리하여, 새로운 루이비통은 온라인과 모바일, 그리고 갖은 종류의 온-오프라인 연계 경험을 제품과 컬렉션 사이 아직 알 수 없는 프로젝트들로 연결해나가지 않을까?

    버질 아블로는‘로고’를 내세우는 뻔한 힙스터라기보단 ‘활자화 typeset’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부여하고 설득해왔다. 오프화이트 Off-White® 컬렉션은 물론, 지금 그를 있게 한 나이키의 ‘더 텐 The Ten’ 프로젝트 역시, 문자로 먼저 제시하고 낯선 요소들을 섞은 다음,  공감각적으로 선보이는 작업이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과격한 변화에 요즘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어림없을 거다. 지금껏 준비한 작업 ‘다음 레벨’의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by Luel Magazine, May 2018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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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04-24
서울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 — Nº2 LIJNS, 안솔·윤대우
2018-05-15
‘버닝’을 보고, 이창동의 15년 전 글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