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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엘라의 에르메스

Margiela, The Hermès Years.

 

Text  Hong Sukwoo

Images Courtesy of Martin Margiela, Hermès, MoMu

    과거의 작업이 패션의 역사가 된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들의 영향은 여전히 패션계 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고,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준다. 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가 이끄는 메종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의 최신 소식은 아니다. 9년 전 이미 은퇴를 선언한 디자이너이자 하우스 설립자, 마르탱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 얘기다.

©MARGIELA THE HERMÈS YEARSexhibition at MoMu Fashion Museum Antwerp. Image courtesy of MoMu, WWD.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만든 에르메스

    벨기에 앤트워프(안트베르펜) 안트베르펜 패션 박물관 Mode Museum Provincie Antwerpen에서는 2017년 3월 30일부터8월 27일까지, 장장5개월에 달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마르지엘라, 에르메스의 시간 MARGIELA, THE HERMÈS YEARS이라는 전시이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동안 마르지엘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전개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 Hermè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했다. 무슈 마르지엘라가 자신의 레이블을 선보인 게1989년이니, 브랜드 설립 10년이 채 되지 않은 디자이너에게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하우스 브랜드가 전권을 준 셈이다. 그가 안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 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를 졸업하고 프리랜스 디자이너를 거쳐 처음 일한 직장이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인데, 마르지엘라가 떠난 에르메스를 장 폴 고티에가 이끌었다는 점(2003년부터2010년)도 흥미롭다.

    전시 서문은 마르지엘라와 에르메스의 만남을 ‘지금’ 돌아보는 이유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 아직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브랜드를 이끌 때의 이름와 에르메스라는, ‘획기적인 탈구축과 영원한 럭셔리 groundbreaking deconstruction and timeless luxury’ 사이의 관계가 출발점이라고 말이다.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물론 장 폴 고티에와 1980년대 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전성기를 연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가 브랜드를 이끈 20여년 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던 브랜드가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컬렉션을 열고, 순백색으로 칠한 아틀리에와 컬렉션을 만들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소통과 협업에 인색하지 않은 채 창조의 접점을 모색했다. 이는 당시 기성 패션 브랜드가 지니지 못한 장점들이었다. 훗날 그가 시각적으로 보여준 파격적인 형식미는2010년대를 사는 지금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숱하게 모방하거나 재해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HERMÈS Autumn/Winter 1998 image of the advertising campaign over-painted by Martin Margiela(Cape Cod watch designed by Henri d’Orignyand double-tour strap bracelet created by Martin Margiela). Photograph by Thierry Le Goues, Graphic design by Jelle Jespers, 2017.

© MARGIELA, THE HERMÈS YEARS book, 2017. Images courtesy of HermèsMaison Margiela, Lannoo Publishers.

    전시는 이미 막을 내렸지만, 전시의 정수를 한 권 가득 채운 책이 남았다. 벨기에 란누 출판사 Lannoo Publishers가2017년5월31일 공식 출간한 MARGIELA, THE HERMÈS YEARS는 총 256쪽에 달하는 정장본이다.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에르메스를 지휘한 시대를 다양한 시각 자료와 사료, 사진과 관계자 인터뷰로 재구성한다. 지금껏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사진과 이미지부터 기존 출판물에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마르지엘라 본인이 직접 골랐다. 아마존닷컴이나 국내 외국 서적 취급 전문점, 벨기에 서점 카피라이트 북숍 Copyright Bookshop에서45유로에 구매할 수 있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와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의 상호 작용은 물론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아카이브가 함께 녹아 있어서, 두 브랜드의 팬이라면 한 권 소장할 가치가 있다.

    해체주의 대가와 고급 기성복·가죽 전문 하우스의 만남을 결정한 에르메스 전  회장 장 루이 뒤마 Jean-Louis Dumas, 1938-2006는 담대했다. 시기적으로1997년은 노쇄한 패션 브랜드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안착하며, 자신의 입맛대로 브랜드를 일신한 정점으로 향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마르지엘라의 영향을 받습니다 Anybody who’s aware of what life is in a contemporary world is influenced by Margiela.”

    동시대 루이비통 Louis Vuitto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한 미국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Marc Jacobs는 훗날 자신의 컬렉션을 비판한 평론가를 향해 저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디자이너들이 과거의 패션 디자이너 혹은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일은 비교적 흔하지만, 여전히 생존해 있는 동시대 경쟁자들에게 칭찬을 건내는 일은 드물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도 은둔자 이미지가 강했던 패션 디자이너를 향한 최고의 헌사가 아닐 수 없다.

    마르지엘라가 에르메스에서 선보인 열두 번의 컬렉션은 자신과 에르메스의 장점을 하나로 결합한 탁월한 협업 collaboration이었다. 2015년 발매한 애플워치 에르메스 Apple Watch Hermès의 더블 투어 Double Tour시곗줄 디자인부터 1999년 에르메스 기성복 컬렉션 무대의 ‘소년처럼’ 보이는 흰 셔츠와 회색 티셔츠 그리고 피에르 하디 Pierre Hardy가 디자인한 검정 가죽 스니커즈는 영원한 고전 classsic 그 자체다. 등이 깊게 패인 실크 상의와 여행 가방에 달린 이름표를 목걸이처럼 변형한 가죽 액세서리 또한 에르메스의 대표작이 되었다.

© MARGIELA, THE HERMÈS YEARS book, 2017. Images courtesy of HermèsMaison Margiela, Lannoo Publishers.

    마지막으로 마르지엘라의 작업이 지금 이 시점에 굳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뎀나 바살리아 Demna Gvasalia의 베트멍 Vetements과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 황경록 Rok Hwang로크 Rokh를 비롯한 후대 패션 디자이너들과 세계 각국 유명인사들의 패션에서, 우리는 여전히 ‘마르지엘라’의 그늘을 발견한다. 커다란 치수의 코트, 해체하고 재결합한 청바지, 그리고 록 rock 음악에 기반을 둔 전위적인 티셔츠들은 사실 십수년 전 마르지엘라가 선보인 영역이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에르메스와 조우한 시간 동안,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동시대 여성상을 재정립했다는 점 또한 지금 봐도 흥미롭다. 마르지엘라는 에르메스에 있는 동안, 편안한 착용감의 옷을 최고급 소재로 짓고 탁월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기존 패션 브랜드가 내세우지 않은 방식을 일관되게 선보였다. 마르지엘라의 에르메스가 당시 슈퍼 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구찌 Gucci톰 포드 Tom Ford나(이제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수장이 된) 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존 갈리아노,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비통– 이 이끌던 경쟁 브랜드들만큼 당대 대중에게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협업은 어떤 면에서 대단히 도전적으로 평가받았지만, 오랜 세월 유지한 브랜드 철학이 번뜩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동시대 패션에 관심 있거나, 한발이라도 걸쳐 일하고 있다면, 마르지엘라가 패션 하우스를 이끌며 행한 도전과 헌정을 차곡차곡 담은 이야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의 과거가 현재와 미래가 되는 지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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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02-06
조엘 메이어로위츠, 케이프 라이트
2018-04-24
서울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 — Nº2 LIJNS, 안솔·윤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