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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진의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Sophie An

 

    메종 스테디스테이트 Maison steady-state의 디자이너 안은진 Sophie An은 용산구 소월길 아틀리에에서 비스포크 셔츠 bespoke shirt를 짓는다. 그가 영감을 얻은 사람 people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 198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Argentina. 수트를 입은 안은진의 아버지 안봉선 Left. 그리고 안은진의 외할아버지 고 故 김영현 Top-right

    외할아버지는 멋쟁이셨다. 자개장 장인이셨는데, 모험심 가득한 분이라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가셨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익숙하지 않을 무렵부터 유럽을 비롯한 곳곳을 다니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걸 소유하길 좋아하셨다. 남미에 계실 때, 한 번은 한국에 들르는 인도양행 여객선을 타셨다. 항구 체류 시간 동안 짐을 찾아서 내려야 하는데, 가구만큼 커다란 ‘모자 보관장’을 챙기느라 정작 살림살이는 모두 잃어버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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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아름다움을 좇는 아버지의 성향을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평생 남편에게 멋진 옷을 입히셨다. 아버지는 쌀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일할 때를 빼면 항상 양복 차림이었다. 엄마는 소공동 양복점에서 가장 좋은 원단으로 양복을 지으셨다. 체형 변화에 맞춰 잘 만든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분이라, 자주 수선한 기억도 난다.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부유하지 않았을 때도 우리 집 5남매 외출복은 항상 좋은 옷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집이 어려워졌는데, 보통 교복을 크게 사주시지 않나. 그래도 항상 조금만 줄이도록 딱 맞는 치수를 고르셨다.

  친척 집에 갈 때도, 학교에 오실 때도 아버지는 항상 양복, 즉 수트로 갈아입고 오셨다. ‘쌀가게 아저씨’였지만, 초등학교 부녀회를 ‘아버지회’로 바꾸셨을 정도로 자식들 학교 생활에 적극적인 분이었다. 엄마는 그럴 때 ‘사람들이 옷을 멋 부리는 거로 생각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당시 신촌 근방 웬만한 대학교 식당들에 납품하실 정도로 영업을 잘 하셨다. “넥타이를 하면 좀 더 신경 썼다는 생각이 들잖니.” 여전히 엄마는 사람들을 만날 때, 아버지가 항상 말끔하게 입으셨기 때문이라고 종종 얘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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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아버지는 무척 털털한 분으로 혼자 계실 때 운동복만 입으신다. 한번은 어떤 나이 지긋한 신사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아버지와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때도 좋은 수트를 입고 계셨는데,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는데도 ‘이 정도면 집에 걸어갈 수 있다’고 그냥 오신 분이다(어머니는 양복값이라도 받아야지, 하셨다). 아버지는 멋 부리길 싫어하시는 전형적인 기성세대였지만, 항상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대로 입고 다니셨다. 조금 모순이지만, 아내나 자식들에게는 쓰라고 하면서 본인을 위해 돈을 쓴다는 데 죄책감이 있는, 전형적인 기성세대 가장이셨다.

  지금은 은퇴하고 소소한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요즘도 수트를 입으신다. 아들 필립이를 데리고 나갈 때도,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항상 수트 차림이다. 엄마도 여전히 타이 매는 법이며 아버지 옷차림을 챙기시고, 호주에서 유학 중인 막내 남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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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딸로 자란 ‘여자’이면서 ‘남자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건, 항상 멋진 옷을 입은 아버지보다 사실 엄마의 영향이 컸다. 그렇게 남편과 자식들 옷차림에 신경 쓴 엄마는 정작 본인 꾸미길 즐긴 분은 아니었다.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으셨고, 사진 찍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신 분이다. 결국, 엄마가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항상 멋진 기억으로 남았다. 옷을 입는 주체보다, 입혀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었다.

    메종 스테디스테이트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이 함께 만든 책 메종 스테디스테이트 — 후일담 Maison steady-state — Recollections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책과 함께, 셔츠 옷깃에 넣는 자개와 셔츠 원단을 재단하여 만든 책갈피 bookmark메종 스테디스테이트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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