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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패션 하우스

The Creative Directors in Fashion Houses 2018

 

Text  Hong Sukwoo

Images Courtesy of Helmut Lang, Jil Sander

    패션계만큼 새로운 사람이 주목받는 분야는 드물다. 대체로 어떠한 최종 ‘결과물’ – 옷과 액세서리처럼 – 이 주목을 받는 게 인지상정인데, 패션은 어떤 ‘사람’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또 변화를 주도하는지가 종종 업계 판도를 좌지우지한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패션 하우스가 그 시스템 아래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디올 옴므의 에디 슬리먼과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최근에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살리아가 좋은 예일 것이다.

© Burberry Spring/Summer 2018 Campaign. Photographed by Juergen Teller. Images Courtesy of Burberry.

    2018년도 봄/여름 시즌에도 수많은 인사이동(?)이 있다. 패션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는 드물게 타임 TIME 지가 선정한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 TIME 100‘에 선정된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는 자신이 이룩한 2010년대 뉴 미니멀리즘을 내려놓고 셀린 Céline을 나왔다. 그보다 약 한 달 앞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내려놓은 버버리 Burberry의 크리스토퍼 베일리 Christopher Bailey 자리가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추측도 난무한다. 버버리의 신임 CEO가 셀린을 총괄한 마르코 고베티 Marco Gobbetti라는 점에서 추측은 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2018년 3월 초순 버버리는 지방시 Givenchy의 전임 아티스틱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 Riccardo Tisci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스트리트웨어와 고급 기성복의 접점을 찾아내고, 소위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의 단초를 제공한 브랜드가 지방시였다. 지방시는 발렌시아가와 베트멍, 오프화이트 같은 브랜드가 나오기 전부터 그는 오래된 패션 하우스에 거리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여성복은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을 뽐냈지만, 남성복의 강렬한 로트와일러 그래픽과 힙합 문화에 강한 영향을 받은 컬레션으로 젊고 영향력 높은 유명인사들을 고객 명단에 넣은 선구적인 브랜드였다. 그는 2018년 9월부터 새로운 버버리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며, 과거 지방시의 작업이나 나이키랩 NikeLab과의 협업이 새로운 버버리에 관한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 Helmut Lang FANS SEEN by Exactitude® Campaign, 2018. Images Courtesy of Helmut Lang.

    2018년 패션 트렌드 중 하나로 최소주의, 즉 미니멀리즘을 이끈 디자이너들의 고군분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2017년도 가을/겨울 런웨이 컬렉션과 동시다발적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으로 90년대 미니멀리즘의 상징 헬무트 랑 Helmut Lang을 부활시킨 셰인 올리버 Shayne Oliver가 먼저 눈에 띈다.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후드바이에어 Hood by Air로 밀레니얼 소비자에게 검증받은 그는 뉴욕 출신 패션 디자이너의 전형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길을 영리하게 걷고 있다. 헬무트 랑 리에디션 Re-Edition 컬렉션에는 펑크와 본디지, 밀리터리 디테일처럼 셰인 올리버와 오리지널 헬무트 랑의 ‘교집합’이 빛을 발한다. 그 유명한 헬무트 랑 뉴욕 택시 광고를 헌정한 캡슐 컬렉션을 기습 발표하고, 카니예 웨스트는 그저 오리지널 헬무트 랑 브랜드의 ‘팬’으로서 직접 소유한 아카이브 컬렉션과 새로운 헬무트 랑을 함께 입고 모델로 나선다.

    1년 전,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의 최고디자인책임자 CDO로 미국 나들이에 나선 라프 시몬스 Raf Simons가 본사 주소를 그대로 옮긴 새로운 고급 기성복 ‘캘빈 클라인 205W39NYC’로 본격 시동을 거는 시즌도 바로 이번 봄과 여름이다.

© Jil Sander Spring/Summer 2018 Campaign, photographed by Mario Sorrenti. Images Courtesy of Jil Sander.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브랜드는 바로 질 샌더 Jil Sander이다. 셰인 올리버가 헬무트 랑을 되살리고, 리카르도 티시가 버버리를 맡고, 라프 시몬스 Raf Simons가 미국식 미니멀리즘의 최전선 캘빈 클라인을 새롭게 이끄는 지금, 독일을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였던’ 질 샌더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리뉴얼 과정을 거치고 있다.

    파리에 기반을 둔 남성복 레이블 OAMC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크 마이어 Luke Meier와 라프 시몬스가 디올 Dior을 이끌던 시절 디자인 팀에서 일한 루시 마이어 Lucie Meier 부부는 새로운 질 샌더의 공동 주연이다. 모두 피렌체 Firenze 패션 학교 폴리모다 Polimoda  출신으로, 지금껏 따로 일했지만 2018년도 봄/여름 시즌 질 샌더를 위해 처음 함께 작업한다. 루시와 루크의 첫 번째 질 샌더 컬렉션은 지난 2017년 6월 공개되었다.

    그들이 오기 전의 질 샌더는 여전히 훌륭했지만, 동시대적인 움직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물론 과거란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가 지켜야 할 유산이다. 하지만 나아갈 방향이 새로워야 한다는 데서 마이어 부부 사이에 이견은 없었던 듯하다.

    새로운 질 샌더의 캐치프레이즈는 독일어 ‘노이 Neu’, 영어로 ‘뉴 New’를 뜻하는 단어다. 사진가 마리오 소렌티 Mario Sorrenti는 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의 섬에서 루시와 루크가 만든 ‘NEU JIL SANDER’ 2018년도 봄/여름 시즌 캠페인 사진을 찍었다. 바다 너머 슬며시 보이는 석양과 명암, 흑백 사진에 스며든 햇볕과 오래된 나무 위에 올라탄 모델 졸리 Jolie의 옆모습은 곧 질 샌더의 새 이미지가 되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빔 벤더스 Wim Wenders는 그 자체가 독일이자 베를린이며, 특별한 시선을 지닌 거장 영화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2018년도 봄/여름 질 샌더 캠페인 예고편은 일상과 환상이 뒤섞여 있다. 사회주의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리는 베를린 지하철 U-Bahn 로자 룩셈부르크역 Rosa-Luxemburg-Platz 근방, 서로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은 모델들이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영상은 흔한 패션 필름이라기보다는 벤더스 영화의 예고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질 샌더는 여느 패션 하우스보다 주목도와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과거 전임자들 – 그중에는 라프 시몬스도 있다! – 의 흔적을 ‘일단’ 전부 지웠다. 1990년대, 미니멀리즘 황금기 라이벌 헬무트 랑이 셰인 올리버를 등에 업고 스트리트웨어의 감각과 동시대적인 편집으로 재도약한 것과도 결이 다르다. 질 샌더 인스타그램이 서서히 공개하는 가죽 가방과 사진 프린트가 들어간 새하얀 반소매 티셔츠들을 보았다. 오랜만에 이 오래된 브랜드의 새 출발을 보기 위해 매장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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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0
2018년, 패션 이노베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