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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을 샀다

 

 

Text and Photography  Hong Sukwoo

© RIDIBOOKS Paper Pro. Photographed by Hong Sukwoo.

    연말에 몇 번이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말았다 한 것은 12.9인치짜리 3세대 아이패드 프로 iPad Pro였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 처음 실물을 보고 ‘여전히 너무 크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미팅이라든지, 웬만한 일에 잘 쓸 것만 같았다. 실제로 구매해도 그리되긴 할 것이다.

    ​지금 책상 위의 ‘일’하는 기기들을 보았다. 아이패드 프로 2세대 10.5형, 2018년에 산 맥북 프로 MacBook Pro 15형. 주간 회의 때문에 집에서 갖고 온 12인치 맥북도 파우치에 들어 있다. 사실, 당분간 애플 Apple 제품을 새로 살 이유는 정당하지도, 적당하지도 못하다.

    ​대신, 하고 전자책 e-book을 떠올렸다.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내려갔다가 두 권의 책을 들고 올라온 태백 여행을 마친 후 첫 주말이 오기 전, 전자책 브랜드 몇 개를 검색했다. 상연이가 스웨덴에서 잠시 서울로 왔을 때, 찌는 듯한 작년 8월 작업실 앞 카페에서 슬쩍 보여준 아마존 Amazon.com의 보급형 제품도 생각해보았으나 한국어로 된 책을 읽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나마 쓰는 도서 앱이 리디북스 Ridibooks이니까 사실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빠른 의사 결정에는 디자인도 한몫했다. 최신형 크레마보다 리디북스 신제품이 그나마 나았다.

    ​정직하게 리디북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니, 이미 출시했던 두 개의 전자책 – 리디북스 페이퍼 Ridibooks Paper와 페이퍼 라이트 Paper Light는 이미 단종하였고 후속 기종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Ridibooks Paper Pro만 190권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과 묶어 팔고 있다. 190권과 기기를 합쳐서 249,000원. 30,000원짜리 플립 커버 케이스가 50% 할인하여 15,000원. 쓸까 싶지만 액정이 약하다고 하니, 스스로 동기 부여하며 저반사 지문방지 보호필름도 하나 주문했다(이것도 50% 할인에 10,000원). 총 274,000원이다. 목요일에 주문하니 토요일 오전에 우체국 소포가 왔다. 그 며칠이 꽤 길었다.

    ​간단하게 제품 사용법을 터득하고 – 안드로이드 기기를 얼마 만에 써보는 것인지, 아니 거의 처음 아닌가! – 소문의 전자종이 e-paper를 읽었다. 최신 기기에 익숙한 상태로 꽤 느린 전자책을 처음 써보니 90년대 휴대전화를 다시 사용하는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책만 읽을 거니까’하고 스스로 또 주문을 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책을 ‘사서’ 읽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넷플릭스 Netflix처럼 월정액 구독제 서비스 ‘리디 셀렉트 RIDISelect‘를 신청했다. 첫 달은 무료이고, 두 번째 달부터 매달 6,500원이 나간다. 솔직히 리디셀렉트의 서가는 아직 빈약한 수준이다. 책의 종류는 뻔할 정도이며 유행에 휩쓸리는 몇 가지 유행이 슬플 정도로 점철하고 있다(요즘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자기계발서가 대세인가, 타인의 밤을 위로하는 모든 수필집은 쳐다보기도 싫다). 그래도 이미 받은 고전들, 몇 가지 장르 소설들, 그리고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실용서와 인문서가 있다. 매일 한 권씩 읽을 기세도 아닌데 6,500원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하였다.

    ​삶의 부피를 조금 줄이자는 핑계로 전자책을 샀다. 루틴처럼 벌어지는 일과에서 쪼갠 시간 얼마 동안이라도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자는 것이다. 이미 전자책에 푹 빠진 사람들이 지적하는 7.8인치 기기의 ‘거대함’은 아직 큰 무리는 아니다(한 손으로 오래 잡기 어렵고, 주머니에 쏙 들어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원래 9.7인치에서 10.5인치를 넘나드는 아이패드를 썼고 아이폰으로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해가 창문을 통해 들어올 때, 조용히 음악만 맴도는 일요일의 방 안에서, 프론트 라이트를 켜지 않은 채 읽은 몇 쪽에 걸친 활자들은 오, 기대 이상이었다.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를 구매하고 좀 더 이 기기를 알고 싶어서 웹서핑하다가 어디서 본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대강 ‘전자책은 종이책의 보완재’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꾸준히 구매하는 종류의 잡지며 단행본은 국내에 정식 출간하지 않았다. 다음 장이 궁금한 선명하고 빳빳한 사진집처럼, 종이 특유의 물성과 편집의 묘미를 듬뿍 발휘하는 것들이다. 256GB 마이크로SD 카드를 장착했다고 해서 ‘그러한’ 서적들이 전자책 안으로 들어갈 리는 만무하다(그렇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말이다). 대신 일과 일 사이에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 시간이 서서히 습관이 되어 삶의 모양 중 하나로 정착한다면 좋겠다.

    ​‘기기를 사고 싶었을 뿐’이라는 친구들의 농도, 책 읽는 시간이 더 익숙해지면 혼자 만족하고는 씩, 웃어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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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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