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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패션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The NAVY Magazine

    영화 퓨처 Back to the Future 주인공들이 미래로 여기고 방문한 해가 2015년이었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스케이트보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자동으로 끈을 묶는마티 맥플라이 Marty McFly; 퓨처 주인공 나이키 Nike 운동화는 2016 특별 이벤트로 판매를 시작한다. 지난 5년만 놓고 봐도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스마트폰 smartphone 등장은 우리 삶을 많이 바꿨다. 지금으로부터 5 후인 2021년의 패션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엉뚱하지만, 묘하게 현실적일 있는 변화를 상상해봤다.

© Her, 2013. Directed by Spike Jonze. Image courtesy of Annapurna Pictures.

    A는 작은 패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한다. 2년 전 부동산이 크게 폭락한 덕분(?)에 아직 그나마 한적한 서울 강북 끄트머리에 작은 주택을 마련했다. 그는 간단한 식사와 운동을 위해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난다. 5년 전만 해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찾았지만, 요즘은 침대 옆 탁자에 둔 스마트워치를 먼저 손목에 찬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다양한 기업이 ‘인공지능 AI’ 비즈니스에 뛰어든 덕에 스마트워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똑똑한 비서가 됐다.

    “오늘 날씨는 어때?”, “안녕하세요 A님, 낮 기온은 16도 정도라 따뜻한 편이에요. 하지만 지금 감기에 걸리셨고 오늘은 밤까지 외부 일정이 있으시니까, 도톰한 카디건 한 벌 꼭 챙기세요. 참, 오후 1시에 브랜드 관계자 미팅 겸 점심 약속, 있지 않으셨죠?” 스파이크 존즈 Spike Jonze 감독의 명작 Her, 2013가 먼 미래의 일은 아니었다.

    기능만큼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시계까지 ‘디지털 digital’로 감쌀 마음은 없었다. 실제로 5년 전 쏟아진 스마트워치 smart watch들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스마트워치가 제법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얼마 전 열린 2022년도 가을/겨울 패션위크에도 이전까지 스마트워치를 찻잔 속 태풍으로 여기던 패션 하우스들의 협업 모델이 부쩍 눈에 띄게 늘었다. 그중 눈길을 끈 건 샤넬 Chanel의 ‘스마트 보이프렌드’ 시계였다. 스위스 제작 무브먼트와 악어가죽 시곗줄을 쓴 쓴 고전 디자인이었지만, 초소형 스마트센서를 달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A는 운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종종 자가용을 탄다. 요즘 들어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 또한 일반 자동차 수준으로 낮아졌다. 초기 전기 자동차 소유주들의 가장 큰 고민이던 충전 역시 길에 보이는 주유소 대부분이 갖췄다. 패션 잡지들에도 ‘전기 무인 자동차’ 시승기가 늘었다. 무인자동차가 상용화한 지 고작 1년 남짓한 시점이라 IT 분야뿐만 아니라 뉴스 사회면과 정치면에서도 관련 논의가 한창이다. 특히 술을 마시고 무인자동차를 타서 인명 사고가 난 유명 배우 C의 사건이 한창 논란이다. 누구를 처벌해야 하는지 아직도 실제 판례가 너무 적고, 그마저도 판결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탓이다. 편리해진 기술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발전 속도와 벌어지는 사람의 인식과 법리 문제는 여전히 기술이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직원들과 간단히 점심을 먹고, 미팅을 위해 H 브랜드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늘 주제는 2010년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만큼 커다란 충격을 몰고 온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이하 VR 패션’이다. 2016년 이래 매년 두 차례 열리는 패션위크를 거부한 디자이너들이 속출하면서, 지금 패션계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Captain America: Civil War, 2016처럼 문명의 충돌처럼 느낄 때가 있다. 파리 패션위크는 여전히 영향력이 큰 편이지만, 지난 출장 때 참석자들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여전히 ‘아날로그 analog’를 중요한 마케팅 요소로 삼은 패션 하우스들만이 명맥을 잇는 기분이랄까. 그 공백의 시작에 바로 ‘VR 패션위크’가 있었다. 삼성전자 Samsung Electronics와 구글 Google이 연합하여 세계 주요 패션위크 fashion week 중 런던과 서울의 공식 후원사가 된 이래, 파격적으로 컬렉션의 물리적 공간을 없앤 것이다. 대신 예전 스마트폰만큼 흔히 보급된 ‘VR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패션위크를 보도록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말 그대로 가상 화면 속 패션위크이지만, 소셜 미디어나 각 브랜드의 모바일 웹페이지와 연동하여 마음에 드는 옷의 소재와 섬세함까지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가상의 옷을 VR 쇼룸에서 치수별로 직접 입어보고, 스마트페이로 선주문하면 매장 출시 가격보다 10% 할인도 해준다. VR 기술의 발달은 곧 오프라인 매장 인테리어만큼 ‘가상 공간’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었다. 오늘 미팅 역시 H 브랜드가 내년 출시할 ‘VR 플래그십 매장’ 내용이다. ‘VR 모델’ 에이전시 담당자와 ‘VR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함께 참석한다(특히 디자이너 Y는 최근 1년 동안만 8개의 VR 매장 인테리어를 꾸몄다). 일반 선글라스처럼 작아져서 예전만큼 우스꽝스럽고 커다란 VR 기기를 머리에 두르지 않게 된 점은 지금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긴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스튜디오 근처 서점에 들렀다. 기술 발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종이 책 시장이 활성화되다니, 그래도 제법 ‘촉’이 좋다고 생각한 A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잡지 한 권을 집었다. VR-종이 잡지를 동시에 만드는 잡지사 기자 친구의 말로는, VR 시장 활성화 이후 VR 콘텐츠만큼 물리적인 편집과 질감을 편애하는 사람들이 ‘열성 고객’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수년 전 독립 출판물이 다양하게 생기고, 몇만 명의 수요가 몰린 것은 이러한 양극화의 전조였을까.

    A는 오늘도 한 손에 종이 잡지를 들고, 빳빳한 캔버스로 만든 토트백과 질 좋은 회색 가죽으로 만든 스니커즈를 신고 집으로 돌아간다.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그래도 균형을 이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 이른 저녁이었다.

    This article has been contributed to 1st Look magazine’s July 2017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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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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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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