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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공간 — 카바, 라이프

 

 

Text and Photography  Hong Sukwoo

© CAVA LIFE Open Studio at Ilmin Museum of Art, 2018.

    오프라인이 점점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자본과 투자와 소비의 중심은 작고 검은 화면의 스마트폰 안에 있다. 종종 처음 패션과 옷을 좋아했을 때, 문화를 글이나 교과서가 아니라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공간들을 떠올린다. 어떤 작은 공연장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을 때, 만 원짜리 지폐를 내고 부클릿에 정성을 쏟은 CD를 샀을 때, 돈은 없어도 편집매장에 수시로 들러서 그곳 사람들과 친구 아닌 친구가 되었을 때가 있었다. 대체로 잊은 기억이 되었으나, 그 순간들은 때로는 작고 때로는 크게 켜켜이 모여서 어떠한 경험이 되었다. 작은 가게에서 가지런히 놓인 고운 물건들을 보며 느낀 제한된 기쁨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0.0001초 만에 알려주는 구글과 네이버 검색창보다 대체로 더 나았다, 항상. 여전히 ‘종이 잡지’와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미사여구처럼 쓰는 ‘큐레이션’ 아닌 ‘큐레이션’의 힘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운 좋게도 몇 곳의 도시에 드나들었다. 처음 가본 거대한 박물관의 압도적인 기록저장소를 보거나, 그 분관 계단에서 차가운 석재 마감과 오래된 나무 계단이 따로 예술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풍경에도 있어 보았다. 그러나 2018년의 ‘공간 space‘을 고른다면 종종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에서 이미 소개한 예술가와 창작자들의 온라인 편집매장, 카바ca-va.life가 만든 몇 곳의 팝업 매장 pop-up store을 고르겠다. 이 글을 쓰는 2018년 12월 30일에도 광화문 사거리의 터줏대감 일민미술관 1층에는 카바의 ‘오픈 스튜디오 open studio‘ 팝업 매장이 열리고 있다(2019년 1월 6일까지).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만드는 작업을 때로는 가까이서 친근하게, 때로는 거리감과 비례하는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종종 아쉬운 까닭은 그들의 작업을 실제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압도적인 부재였다. 카바가 이런 아쉬움의 완벽하게 해결한 단 하나뿐인 사례라고 말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 내가 모르거나 이미 알고 있던 – 창작자들이 그곳의 안목 있는 디렉터들과 참여자들과 함께, 잠시 문을 열고 아쉬울 때 문을 닫고 마는 공간에서 하나의 ‘장’을 만들어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음악과 컴퓨터 화면 속에서 대체로 존재할 뿐이던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주제로 삼은 지난 라이즈 호텔RYSE Hotel팝업 매장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엇비슷한 콘셉트로 선보이는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를 차치하고서도 눈에 띄게 탁월했다. ‘비싼’ 작가들의 나열이 아니라, 창작의 지금을 보여주고 비로소 궁금해지며 대화하고 싶은 이들의 작업이 그곳에 가면 있었다. 금액의 높고 낮음이 누군가에게, 또 비즈니스 측면에서 물론 중요하겠지만, 우연과 계산의 교집합에서 장소를 바꿔 가며 모인 ‘끊임없이 만들고, 이야기를 속삭이는’ 이들이 카바의 공간에 있었다. 덕분에 흔쾌히 몇 가지 물건들이 작업실과 집 곳곳에 놓였다.

    우리는 소비 시대에 산다. 돈을 벌고, 삶을 위한 모든 계산을 하고 나면 종종 가슴 한구석이 공허해진다. 그럴 때 예술 art은 사람을 조금 더 보듬는 역할을 한다. 예술가의 작업, 그 행위가 주는 다양한 감정이 무조건 따뜻하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삶과 삶 사이에 생각할 여지를 던지고, 그 안에서 영향받거나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또한 그 예술 일부를 생활 반경 안에 들여다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카바는 온라인 편집매장을 표방하지만 작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형식에는 오롯이 ‘모바일’ 기술의 힘을 빌었다. 두 가지는 여전히 상충하는 지점이 존재하나, 카바의 팝업 공간에서 퍽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멋진 건축가와 값비싼 자재들과 유명세를 등에 업은 대단한 기업들의 칵테일 파티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카바’가 만든 오프라인의 팝업 매장들, 그곳에서 영위한 경험의 기억들이 올해의 공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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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평일 오전, 정독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