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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의 시간

    수많은 로고 플레이가 거리를 휩쓸지만, 봄을 준비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과거를 조명한다. 바로 미니멀리즘 minimalism의 진화, 아니 변화이다.

 

Text  Hong Sukwoo

Images Courtesy of Various Brands

© Jil Sander Spring/Summer 2018 Collection.

© Céline Spring/Summer 2018 Collection.

© Joseph Spring/Summer 2018 Collection.

© Max Mara Spring/Summer 2018 Collection.

   패션은 항상 예술과 건축, 디자인과 문학처럼 외부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했다. 전설적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의 ‘레스 이즈 모어 Less is more’는 극단적인 단순함을 정의 내린 미니멀리즘의 상징이었다.

   도널드 주드 Donald Judd의 예술 작품과 안도 타다오 Tadao Ando의 건축 양식, 이브 클라인 Yves Klein의 회화 작업과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의 연극도 미니멀리즘이 패션에서 가장 흥미로운 트렌드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치장과 장식을 덜어내고 최소한으로 본질을 드러내는 데 미니멀리즘의 핵심 가치가 있다. 온갖 광고 문구와 화려한 색상에 지칠 때, 아무 무늬 없는 티셔츠와 로고 없는 가죽 가방에 손이 가는 심리가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2018년 기준으로 문화와 경제의 마지막 최대 호황기였던 1980년대, 넘쳐나는 석유 자본과 폭발적인 경제 성장으로 힘과 권력 지향적 패션- 파워 수트의 높이 솟은 어깨와 과장된 실루엣, 기하학무늬 스포츠웨어와 금박 장식- 이 득세한 이전10년의 반발이었다. 런던과 뉴욕의 건축가와 패션 디자이너들은 미니멀리스트 건축 minimalist architecture을 수용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부티크 boutique로 이러한 화려함에 저항했다.

    극도로 제한된 색상, 차가운 조명과 최소한의 물건, 빽빽하게 옷을 걸지 않은 넓은 매장은 본질과 상품을 강조하기 위해 장식을 배제했다. 우리가 아는 미니멀리즘 대가들, 헬무트 랑 Helmut Lang과 질 샌더 Jil Sander도 이때부터 패션계의 이목을 끌었다. 펑크와 밀리터리, 그리고 기성 고급 패션계가 이룩한 스타일의 장식을 제거하고 또 제거한 수트와 미니 드레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과거 의복의 ‘에센스 essence’만 남기고 나머지를 의식적으로 거부한 일종의 패션 무브먼트 fashion movement였다. 때마침 사람들은 일본 전통문화에서 온 젠 zen스타일, 즉 선 사상과 서양 미니멀리즘의 결합을 시도했다. 교토 료안지 龍安寺의 텅 빈 정원처럼, 한껏 과장한 맥시멀리즘 maximalism에 질린 사람들은 자신을 통제하고 본질에 다가서는 감각으로 이 트렌드에 푹 빠졌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모든 런웨이를 검정과 흰색, 회색으로 점철한 당대의 스타일은 패션의 화려한 겉모습과 향락주의를 향한 일종의 안티테제였다.

    훌쩍 시간을 넘어서 모든 문화가 뒤섞인 지금, 패션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한 새로운 미니멀리즘의 시간이 온다. 2018년 뉴 미니멀리즘의 특징은 경건한 의식처럼 받아들였던 흐름을 좀 더 편안한 스타일로 제안한다는 점이다. 수도승처럼 절제하고 탐구하는 옷이 아니라, 일과 여가 어느 때 입어도 자연스러운 ‘데일리웨어’를 지향한다. 패션 외에도 신경 쓸 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극이 적은 옷으로 개성을 표출하는 셈이다.

    질 샌더 Jil Sander를 리뉴얼한 루시 Lucie와 루크 마이어 Luke Meier 부부는 수년간 침체한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본질로 돌아왔다. 목선까지 옷깃을 추어올린 검정 수트와 발가락 끄트머리부터 묶는 새하얀 가죽 스니커즈, 손등을 덮는 치렁치렁한 셔츠 드레스는 강렬하면서도 편안하다. 2010년대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 셀린 Céline의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는 테일러드 재킷과 셔츠에 긴 주름치마와 트렌치코트를 겹친 유려한 곡선 장식으로 데일리 럭셔리 daily luxury를 재해석하며 자신의 마지막 봄/여름 컬렉션을 마무리했다. 광택이 빛나는 가죽 와이드 팬츠와 금장 장식 파우치처럼 키 아이템을 강조한 스타일링도 우아하다. 밝은 꽃무늬 패턴과 새빨간 셔츠처럼 경쾌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함께 섞으면 자칫 단조로운 분위기를 녹여낸다.

    막스 마라 Max Mara의 런웨이에 나온 여성복도2018년의 미니멀리즘을 흥미롭게 변주한다. 몸에 꼭 맞는 반투명 트렌치코트와 팬슬 팬츠, 캐시미어 울로 장식한 벨트 치마와 저지 소재 민소매 상의, 그리고 무릎까지 걷어 올린 데님 점프수트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은 ‘클래식’ 그 자체였다. 90년대 헬무트 랑 전성기가 문득 떠오르지만, 모델이 입은 옷이 그대로 매장에 걸려도 사람들의 손에 잡힐 만큼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담았다.고급스러운 테일러링 감각과 우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조셉 Joseph은 올 시즌 또 다른 키워드인 리트로 retro와 미니멀리즘을 섞어 젊은 고객들에게 생경한 두 스타일을 훌륭하게 섞었다. 라벤더색 밀리터리 재킷은 옷의 원형이 지녔던 요소만 남긴 채, 오버사이즈 실루엣으로 재해석했다. 커다란 흰색 셔츠 옷깃이 흰색 단추와 조화를 이루는 하프 코트와 롱 재킷에는 짧은 스커트와 원색 터틀넥 스웨터 같은 믹스앤매치도 어울릴 것이다.

   패션은 대체로 화려한 개성을 표출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이 패션계를 휩쓸던 시절에도, 오롯이 주류 영역에 발을 들인 적은 드물었다. 패스트 패션의 등장과 함께 쉽게 사고 금세 질리는 시대, 다시 미니멀리즘이 돌아온다는 징조는 그래서 반갑다. 맨발을 감싸는 검정 샌들과 연푸른색 버튼다운 셔츠, 낙타색 스프링코트와 실루엣이 드러나는 비대칭 치마는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옷과도 조화를 이루기 쉽다. 차가운 미니멀리즘을 넘어서, 차분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이 부드럽고 간결한 실루엣과 맞물려 손을 흔든다.

    This article has been contributed to Harper’s BAZAAR Kore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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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A Few Fashion Questions